[토요판/몸]기획을 시작하며-몸이란 무엇인가
▶ 몸은 두뇌가 지배하는 기계이자, 미생물이 사는 서식처입니다. 세균과 소독제가 싸우는 전쟁터이고 늙은이의 탄식을 불러오는 유한성의 상징입니다. 뇌과학자부터 다이어트 전도사까지 사람들에게 몸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당신에게 몸은 무엇을 은유하나요? 거울 앞에서 몸을 바라보세요. 몸이 내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팔굽혀펴기를 해보세요. 당신의 몸의 역사를 써보세요.
삶이 시작하면서 죽음도 출발합니다. 생명의 유한성 속에 인간의 몸 또한 결박되어 있습니다. 몸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공간. 죽음이라는 시한폭탄 안에서 몸은 욕망하기도 하고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사랑과 질투도 몸이 조종하며, 지식과 문명도 몸이 건설했습니다. 의학과 의술은 몸이라는 전쟁터에서 병과 싸워왔습니다.
몸은 사회와도 긴밀한 연관을 맺습니다. 노동의 형태가 육체노동에서 지식노동으로 변하면서 우리 몸의 쓰임새도 혁명적인 변화를 맞았습니다. 현대 사회의 생산물은 근육과 전신에 기대지 않고 있으며,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과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리는 자동차를 보조하는 기능적인 수단으로 전락했고, 허리는 가끔씩 통증을 유발하는 골칫덩어리가 됐습니다. 얼굴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작물이 되어가고 있고, 몸은 대중매체에서 다양하게 소비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몸 면을 새로 시작합니다. 우리 몸의 기능과 질병, 몸을 치료하는 의료기술, 몸을 소비하는 사회 등 ‘몸’을 키워드로 몸과 사회를 탐구할 예정입니다. 몸 안에만 머물지 않고 몸의 안과 밖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도 인문학적 시선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몸 면 첫 회를 맞이해 각계 전문가로부터 몸에 대한 정의를 들어봤습니다. 몸에 대한 풍부한 담론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다음주부터는 몸에 대해 특별한 애증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 눈, 코, 다리 등 한 기관을 집중 해부하는 ‘당신의 몸’ 시리즈가 격주로 연재됩니다. 다른 한 주는 △몸과 사람 △몸과 질병 △몸과 기술을 다룬 기사와 전문가 칼럼이 실릴 예정입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람에서 넋을 뺀 것
해부학자가 보기에 사람은 몸(육체)과 넋(정신)으로 이뤄져 있다. 몸이 없고 넋만 있으면 귀신이고, 몸만 있고 넋이 없으면 시신이다. 귀신과 시신은 둘 다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귀신은 심심풀이로 지어낸 것이기 때문에 더 다루지 않겠다.
의과대학에서는 학생이 시신을 해부하면서 소중한 지식을 얻는다. 물론 자기 몸을 기증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고 소중하게 다룬다. 그렇다고 시신이 사람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학생은 시신을 해부하면서 사람이라고 생각할 틈도 없다. 학생이 두려워하는 것은 시신이 아니라 시험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해부하느라고 바쁜 학생한테 죽음과 삶에 관한 철학을 물으면, 철학이 금속공학이냐고, 해부 도구가 어떤 금속인지 알고 싶냐고 되묻는다. 역시 우스갯소리이다.
나중에 의사가 되어서 환자를 따뜻하게 볼 필요도 있지만 차갑게 볼 필요도 있다. 환자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눈으로 차갑게 볼 필요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시신을 차갑게 보는 것은 의사가 되기 위한 훈련 중 하나이다. 몸만 있고 넋이 없는 시신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좇는 그림, 사진에서 벗은 사람은 중요한 밑감이다. 그러나 넋이 없는 몸, 즉 사람이 아닌 시신은 아름답지 않다. 이것은 해부사진 책을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죽음을 보면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값진지 깨닫게 된다. 사람보다 값진 것이 있겠는가? 해부학자가 보기에 몸은 사람에서 넋을 뺀 것이다. 다른 말로 몸 더하기 넋이 사람이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내가 아닌 것들의 공동체
몸은 타자들의 공동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몸은 내경과 외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경은 몸 안의 풍경, 외형은 몸 바깥의 형태다. 외형이야 그렇다 치고 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기/신/혈, 몽/성음/언어, 진액/담음, 오장육부/포(자궁), 충, 소변/대변 등이 그것이다. 참으로 다이내믹하다. 정/기/신과 혈, 진액/담음, 또 오장육부와 포까지는 대충 이해가 되는데, 소변/대변은 좀 뜻밖이다. 똥오줌이 내 몸의 풍경이라고?
그렇다. 우리는 늘 똥오줌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또 충은 세균을 비롯하여 각종 벌레들을 의미한다. 일종의 침입자 혹은 이주민인 셈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 몸의 많은 부분은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우리의 삶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헉! 그렇다면 내 생각과 감정, 행동의 은밀한 배후조종자는 벌레라는 뜻? 더 의아한 것이 몽(꿈), 성음(목소리), 언어다. 이것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안에 있기도 하고 바깥에 있기도 하다. 즉, 안과 밖의 ‘사이’에 있다.
이처럼 우리 몸은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이 득시글거리는 타자들의 공동체다. 이 가운데 내가 조율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결국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그래서 슬프냐고? 아니, 그 반대다! 그것은 앎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을 무한히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극에 이끌리다 보면 아주 놀라운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현장이 능동적으로 교차하는!
고미숙 고전평론가
두개골 뚫고 나온 확장된 뇌
지적인 외계생명체가 지구를 방문해 인간의 몸을 관찰했다면, 그들이 내린 결론은 아마도 ‘몸이란 두개골을 뚫고 나온 확장된 뇌’일 듯싶다. 눈과 코, 귀, 혀 같은 감각기관과 피부의 다양한 수용체를 통해 몸은 끊임없이 세상에 관한 정보를 뇌로 전한다. 뇌는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고 결정한다. ‘뇌’는 자신의 결정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몸을 통해 ‘행동’으로 옮긴다.
어려운 부탁이라도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여준다면 부탁을 들어줄 확률은 두 배 높아지고, 반 고흐처럼 귀울림 증세의 메니에르병을 앓게 되면 청각적 왜곡은 곧바로 우울증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몸의 변화가 뇌의 화학작용을 유발해 마음을 바꾸니, ‘확장된 마음’이란 개념(embedded mind, ‘뇌가 곧 마음이다’라는 주장에 반대해 마음 형성에 있어 몸의 역할을 강조한 개념)이 요즈음 학계에서 화제가 되는 것도 당연하다.
투시력이 있는 외계인들에게 인간은 16만㎞에 달하는 혈관과 그 네 배가 넘는 신경다발들이 심장과 뇌에서 내려와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는 생존기계다.(당신 몸에 있는 혈관으로 지구를 네 바퀴나 감을 수 있다!) 사람들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 뇌가 기능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인간이라는 생존기계의 중앙처리장치(CPU)는 단연 뇌이며 몸은 그저 단말기일 뿐이다.
뇌와 몸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말고 뇌도 ‘몸의 일부’라 생각하라고?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라서 몸을 그저 ‘뇌의 일부’로 폄하하는 거 아니냐고? 맞다! 그렇다! 인정.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하지만 생각해보시라. 몸을 바꾼다고 당신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뇌가 바뀌면 당신이 바뀐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 육체가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풍자시 한 구절인 이 말은 근육질 몸매를 키우는 데에만 혈안이 돼, 정신을 풍성하게 하는 데 소홀했던 고대 로마인들을 조롱했던 표현이다. 신경과학적으로 해석하자면, 모니터와 키보드를 바꾸는 데에만 열 올리지 말고 중앙처리장치 업그레이드에도 신경쓰라는 얘기.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유용한 조언이다.
미생물 100조개의 생태계
몸은 또 하나의 생태계다. 우리가 ‘한 사람’을 지칭할 때 그중 정말 ‘사람’인 부분은 얼마나 될까. 최근 10여년 동안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는 미생물(공생, 기생 관계를 막론하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 결과 인간 본래의 세포가 약 10조개라면 우리 몸 위에 살고 있는 미생물은 100조개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이 이 미생물과 공존 없이는 생존할 수 없으며 건강을 지킬 수 없다는 것도 알려졌다. 세포 수로 따져보면 ‘한 사람’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부분은 10%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태까지 인지하지도 못하던 90%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인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또 우리가 미생물들 없이 살아갈 수 없고 미생물들을 통해 건강과 안녕이라는 이득을 취하고 있다면, 미생물이 인간에게 기생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미생물에 기생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근대적 ‘인간 중심적’ 고정관념을 허물고 우리 몸들 안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 아닐까.
정준호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창-봉투-작가’라는 은유
20세기 서양의학이 알게 모르게 전제하는 몸에 대한 세 가지 은유가 있다. 우리는 고장난 몸을 ‘고치고’, 병과 ‘싸워’ 이겨야 하며, 몸을 고치고 병을 이기기 위해 다양한 의약품과 의료서비스를 ‘소비’한다. 이 모든 일이 우리의 몸속에서 일어난다. 몸은 기계이고 전쟁터며 시장이다. 이 은유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현대의학의 덕으로 우리가 지금처럼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믿음으로 인해 우리들 속에 깊이 뿌리박게 되었다.
20세기 의학의 성공은 주로 세균학과 유전학의 성과에 힘입은 것이다. 몸은 유전자라는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진 기계이고 세균이라는 적의 침입으로 인해 생긴 전쟁은 소독제와 항생제라는 신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기계-전쟁-시장이라는 틀에 갇혀 생명의 다양하고 복잡한 모습을 놓치게 됐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뇌과학, 면역학, 진화생물학 같은 새로운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몸과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새로운 은유의 구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데칼코마니’라는 작품에서 몸은 세상이 보이는,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투영된 창(窓)이다. 이 은유는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 몸은 ‘나’이지만 또한 나 아닌 존재와의 경계이기도 하고 나 아닌 것을 받아들이는 창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세상을 담는 봉투로 몸을 표현하기도 한다. 나를 투영하고 세상을 보는 매개의 역할을 넘어, 몸은 적극적으로 세상을 내 속에 담는 도구라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세상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면역과 신경계의 작용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세상을 새로 쓰는 작가로 몸을 비유할 수도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살아갈 자연적,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그 환경은 다시 나의 행동가능성을 규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계-전쟁-시장을 넘는 새로운 몸의 은유는 창(窓)-봉투-작가(作家)다.
강신익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장
내 개성을 표현하는 옷
예전에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상형은 긴 생머리에 흰 티,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성이었다. 청순한 이미지를 떠올리겠지만, 몸매가 되지 않으면 소화할 수 없는 패션이다.
진정한 패션의 시작은 몸에 있다. 옷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듯 몸에서 풍기는 아우라로 자신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나 또한 캐나다 유학 시절 왜소한 몸집으로 ‘인종차별’을 당했다. 농구를 할 때에는 동료들은 나에게 패스를 안 했고, 어떤 친구들은 나를 ‘옐로 스키니 보이’(마른 동양인을 빗대는 표현)라고 비아냥댔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내 몸을 유심히 바라볼 기회가 생겼고 내 몸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늘어났다. 점차 자신감이 붙었다. 나는 더는 멋진 옷이 어울리지 않는 왜소한 남자가 아니었다. 나의 모습은 옷이 아니라 몸에서 출발한다. 몸은 패션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옷이다.
숀 리 ‘숀리바디스쿨’ 대표
속절없이 늙어버린 연인
내 몸이 고목이다. 여린 싹으로 돋아나 자라면서 무성해지더니 이제는 늙어가는 나무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내 몸은 세상 많이 살아낸 고목인데 내 마음은 아직도 철이 덜 든 철부지다. 내 마음의 나와 내가 깃들어 있는 이 내 몸이 요즈음 생각으로는 서로 별개의 존재이다. 별개의 존재이지만 내 몸은 나와 떼어낼 수 없는 동반자로, 가족으로, 살아서는 헤어지지 못하는 이미 잘 길들여져버린 연인이다.
나의 연인이 이제 속절없이 늙어버렸다. 그동안 나는 나의 연인을 진정으로 사랑해왔던가. 아니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나 했던가. 사랑한다 되뇌고 노래 불러왔지만 그것이 사랑이었던가. 항상 같이 있다는 핑계로 얼마나 소홀히 했던가.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시간이 얼마나 되었던가. 고맙다고 어여쁘다고 진심으로 말한 적이 있었던가. 있는 그대로의 내 연인에게, 내 몸에게 진정 감사해하고 또 그를 자랑스럽게 여긴 적이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고목의 몸통에 평생둥지를 튼 작은 텃새처럼 내가 해질녘이 되어서야 뒤늦게 구슬피 운다.
돌이켜보면 내가 내 멋대로 시간을 쓰며 살아오는 동안 나의 연인은 묵묵히 참고 견디면서 순리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 인내와 정직과 순응의 힘은 약해 빠진 나와 달리 한 치도 흔들림 없이 강했다. 때때로 병들어 아파했고 세월 따라 늙어가고 있었어도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자신의 그 원칙을 1㎜도 어기지 않았다.
요즈음에는 푸른 우주를 바라볼 때가 많다. 한결같고 변함없는 것이 내 연인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나해철 시인·성형외과 진료의
공짜로 이용하는 정직한 멘토
몸은 최고의 멘토입니다. 멘토는 가르침을 주는 스승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멘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피아노선으로 마술을 부리는 이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표피적인 만족을 주지만 결코 피아노선이라는 영업비밀까지 말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멘토를 만나기 위해선 도서 구입비와 강연 참가비 등 비용이 듭니다. 하지만 ‘당신의 몸’이란 멘토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그럼 멘토의 가르침을 직접 들어볼까요?
먼저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십시오. 단단하게 알이 박여 못하게 됐을 때, 눈 딱 감고 다섯 번만 더 하세요. 엄청난 고통이 몰려올 겁니다. 근육은 수축하면서 힘을 발휘합니다. 근육이 계속 움직이며 에너지를 전부 소비하고 젖산이 축적됩니다. 고통 때문에 더는 수축하지 못하는 상태를 근육실패점이라고 합니다. 이 상태에서 48시간 휴식을 취하고 단백질 같은 영양분을 섭취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지쳐서 너덜너덜해진 근육들이 시간의 함수에 따라 재생을 시도하면서 영양분을 들이켜고 확장을 시도합니다. 근섬유 한 가닥이 두 가닥으로 늘어나고 두 가닥이 다시 세 가닥으로 늘어납니다. 땀내 나는 과정이 끝나면 더 크고 단단한, 더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더 강하게 수축할 수 있는 근육이 탄생합니다. 시간과 노력은 부정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드는 법. 멘토가 바로 당신에게 해주는 말입니다.
김남훈 프로레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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