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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나이롱 보험 환자’로 먹고사는 병원들

등록 2014-10-29 21:31수정 2014-10-29 21:40

“교통사고 합의금 많이 받으려면 오래 입원하라” X레이 찍고 또 찍어
진료 많이 할수록 이득인 구조…의사가 직접 전화로 ‘과잉 진료’ 권유
보험 사기 중 11%가 허위·과다 입원…경찰, 5억 챙긴 병원 이사 구속
보험사에서 받는 진료비를 부풀리기 위해 교통사고 환자들을 상대로 허위·과잉 진료를 해온 병원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한겨레 자료 사진
보험사에서 받는 진료비를 부풀리기 위해 교통사고 환자들을 상대로 허위·과잉 진료를 해온 병원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한겨레 자료 사진
“○○○님, 주사 맞으세요.”

‘교통사고 전문’인 서울 ㅁ정형외과의원 병실. 최근 교통사고 환자 6명이 입원한 이 병실의 아침은 주사로 시작한다. 손목에 붕대를 감고 전날 입원한 20대 중반 남성은 별다른 설명 없이 대뜸 ‘바지를 내리라’는 간호사의 요구에 난감해했다. 간호사가 몸을 흔들어 잠에서 깬 ㄱ(30)씨는 수액을 맞았다. ㄱ씨는 “무슨 주사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놔주니까 맞는다”고 했다. 나흘째 입원중이라는 ㅂ(32)씨도 엉덩이에 주사를 맞았다. ㅂ씨는 “이게 무슨 주사냐. 꼭 맞아야 하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아침엔 근육이완제, 저녁엔 진통제다. 아프면서 왜 안 맞으려고 하냐”고 되물었다.

ㅂ씨는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손가락 하나가 부러졌다. 어깨·목·팔 타박상 진단도 나왔다. 수술을 받았지만 통증이 심해 입원을 결정했다고 한다. 입원 전날 이 병원 원무과장은 “병실이 있으니 상대방(가해차량) 보험사 접수번호만 알면 입원할 수 있다”고 했다. 원무과장은 ㅂ씨에게 “합의금을 많이 받으려면 아무래도 오래 입원하는 게 낫다”고 귀띔했다. 의사는 입원 전 ㅂ씨의 온몸 엑스레이 사진 10여장을 찍었다. 매일 두 차례씩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는 처방전도 작성했다.

같은 병실 환자 ㄴ(36)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신호위반 차량에 치였다. 어깨뼈가 부러져 철심 박는 수술을 받고 8주째 입원중이었다. 영업직인 ㄴ씨는 사고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상대방 보험사의 합의금이 절실했지만, 보험사가 제시하는 금액은 턱없이 적었다고 했다. 그만큼 퇴원은 미뤄졌다. ㄴ씨는 “병원에서 허리 자기공명촬영(MRI)을 한 뒤 진단을 더 받아보자고 권했다”고 했다. 병원은 그만큼 진료비를 더 챙길 수 있고, 환자는 보험사에 합의금을 더 요구할 근거가 생기는 셈이다.

몸상태가 그다지 나쁘진 않지만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치료를 받는 ‘나이롱환자’의 치료비는 모두 가해차량이 가입한 보험사에서 부담한다. 보험사가 병원에 진료비 지급보증을 하고, 병원은 나중에 이를 청구한다. 사고를 당한 사람 처지에서는 ‘만약’에 대비해 꼼꼼하게 더 많은 치료를 받으려고 한다. 병원 역시 치료를 하면 할수록 보험사에서 받는 진료비가 늘어난다. 환자와 병원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과잉진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엑스레이 촬영 등 진단비, 주사비·물리치료비 등의 처치비까지 병원이 손쉽게 벌 수 있는 돈은 많다.

ㅂ씨는 ‘당당한 허위 진료’에 불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ㅁ정형외과의원을 퇴원한 ㅂ씨는 한의원에서도 보험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 근처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은 뒤로, 이 한의원은 집요하게 이런저런 치료를 권했다. ㅂ씨는 “몇 번 치료를 받았는데 효과도 크지 않고 시간도 없어 가지 않았다. 4~5차례나 전화를 걸어 와서는 ‘합의가 안 끝났으면 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나중에는 한의사가 직접 전화해서 ‘보험사에 진료비 청구를 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치료받은 것으로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참 황당했다”고 말했다. 하지도 않은 치료를 보험사에 청구하겠다는 얘기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런 자동차보험 환자의 과잉진료가 큰 골칫거리다. 지난달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상반기에 보험사기로 지급된 2869억원 가운데 11.2%인 320억원이 허위·과다 입원에 의한 것으로 판명됐다. 허위·과다 진료로 손실을 입은 보험사는 다른 손해보험에서 손실을 메울 수밖에 없다. 결국 손해보험 전반의 보험료가 올라가고, 이는 일반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으로 돌아간다.

정부는 병원들의 진료비 과잉 청구를 막기 위해 자동차보험사들이 자체적으로 하던 진료비 심사를 지난해 7월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심평원 관계자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청구액 1조2926억원 가운데 심평원 심사를 거쳐 약 430억원을 조정(삭감)했다. 제도를 시행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심평원 심사로 바뀐 뒤 진료비 청구액이 10%가량 준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허위·과다 진료는 병원은 물론 환자도 형사처벌을 받는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환자 모집책까지 고용해 교통사고 환자 등을 입원시킨 뒤 요양급여 5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로 서울 강동구 ㄱ병원 이사 이아무개(54)씨를 구속하고, 의사 등 병원 관계자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9일 밝혔다. 또 통원치료가 가능한데도 입원하거나 입원자 명단에 이름만 올려놓고 보험금을 타낸 혐의(사기)로 문아무개(44)씨 등 3명을 구속하고 24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나이롱환자’ 중에는 프로축구 2군 선수와 국립대 교수, 초등학교 교사 등도 포함됐다. 경찰은 “입원 기간 중 외출·외박일이 입원일의 30% 이상인 환자들을 입건했다”고 설명했다. 201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보험사기로 경찰에 검거된 5710명 가운데 허위 입원 사례가 2552명(44.7%)으로 가장 많았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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