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에이즈 환자의 요양병원 입원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령을 고치기로 하자 요양병원 쪽은 ‘국가가 할 일을 민간 병원에 떠맡긴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는 일상생활의 신체접촉이나 의료행위를 통해 감염될 확률이 낮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요양병원들은 자신들은 “관리·감독 능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HIV 감염확률 낮다”…의료법 개정 방침
요양병원 “관리 역부족…정부 책임 떠넘겨”
전문가 “공공병원 확대 등 근본 대안 필요”
요양병원 “관리 역부족…정부 책임 떠넘겨”
전문가 “공공병원 확대 등 근본 대안 필요”
정부가 에이즈 환자의 요양병원 입원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령을 고치기로 하자 요양병원 쪽은 ‘국가가 할 일을 민간 병원에 떠맡긴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 단체는 갈 곳 없는 에이즈 환자를 위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부가 전문 국립요양병원 설립 같은 근본적 대안이 아닌 손쉬운 해법만 내놓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9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및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도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요양병원의 환자군 분류 기준을 개정하기로 의결했다. 그동안 대다수 요양병원은 ‘전염성 질환을 앓는 환자는 입원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의료법 시행규칙(제36조 제2항)을 근거로 에이즈 환자의 입원을 거절해왔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보면 에이즈는 결핵, 말라리아 등과 함께 제3군 감염병(간헐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있어 계속 그 발생을 감시하고 방역 대책의 수립이 필요한 감염병)에 포함된다.
이에 복지부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는 일상생활의 신체접촉이나 의료행위를 통해 감염될 확률이 낮은데도, 현재의 환자군 분류 기준 아래에서는 감염에 따른 합병증을 앓는 환자의 요양병원 입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었다”며 “에이즈 환자를 입원 가능 환자군에 추가해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했다”고 밝혔다. 실제 주삿바늘로 인한 감염 확률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0.3%)가 B형 간염(6~30%)이나 C형 간염(1.8%)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정부의 이런 방침에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쪽에서는 “시설과 의료인력의 수준이 낮은 요양병원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 중이다. 우봉식 요양병원협회 홍보이사는 21일 “요양병원은 대체로 노약자가 입원하는 곳으로 특별한 관리감독이 필요한 에이즈 환자가 입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며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에이즈 환자라면 의료적 처치와 검사를 필요로 할 텐데, 대다수 요양병원의 낮은 시설 및 (의료)인력 수준으로는 이들에 대한 적절한 관리·감독이 사실상 힘들다”고 주장했다. 우 이사는 “에이즈 전문병원 등 관리체계를 갖춰야 할 정부가 그럴 만한 능력이 안되는 요양병원에 에이즈 환자를 떠맡기는 건 초등학생한테 미적분 문제를 풀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김대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에이즈 환자가 입원할 마땅한 병·의원이 없는 현실에 비춰보면, 정부의 이번 조처는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공공요양병원 확대 등 더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라 요양병원에 에이즈 환자를 맡기고 그에 따른 건강보험 수가(진료비)를 지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짚었다.
최성진 박수지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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