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지난 약 속여 수억원대 부당이득
의사끼고 15년간 불법 건강검진 일당 적발
유효기간이 지나 약효가 전혀 없는 독감 백신을 백화점과 기업체 직원 등 800여명에게 접종하고, 무자격으로 수천명에게 건강검진을 해온 조직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18일 유효기간을 넘겨 약효가 없는 이른바 ‘독감 물백신’을 효과가 있는 것처럼 속여 수백명에게 접종해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등)로 이아무개(59)씨를 구속했다. 또 이씨와 함께 범행에 가담한 ㄷ보건협회 김아무개(56)국장과 의사 8명 등 일당 27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관련자 15명을 불러 조사 중이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지난달 25일 경기도 일산의 한 백화점 직원 250여명에게 유효기간이 한 달 지난 독감 백신을 접종하는 등 800여명에 이르는 기업체 직원들에게 ‘물백신’을 접종한 것으로 드러났다. 독감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당해연도 발생할 독감 바이러스 유형을 예측해 해당 국가에 알리면 이에 맞춰 생산되며 유통기한은 1년이지만 대개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6개월간만 예방 효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퇴직한 고령의 의사들과 의료기관에 소속하지 않은 간호사를 고용한 뒤 5개조의 의료팀을 편성해 서울·경기·충청 지역의 산업체 등에 뇌염과 독감 예방 접종을 하는 등 1990년부터 15년 동안 조직적으로 활동해왔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은 직접 왕진을 나가는 등 편의를 봐주고 백신접종 비용을 절반 이하로 깎아주는 방법으로 단체 접종 대상자를 끌어 모았다.
이씨 등은 또 지난해 3월 경기도 의정부 ㅎ초등학교 등에 보건협회가 만든 것처럼 꾸민 건강검진 안내문을 보내 학생 350여명을 상대로 암 검사와 비만검사를 하는 등 1만7000여명의 학생들에게 건강검진을 해 주고 2억5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이들은 서울과 경기 지역 의료도매업체 등 명의로 유명 제약업체에서 만든 독감백신 3600여명분을 사재기 한 뒤 23개 업체에 판매하거나 공급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씨 등이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과 지난해 독감이 유행하면서 백신 우선접종 대상범위가 확대된 것을 알고 이를 사재기 한 뒤 유통기한이 지난 백신을 투약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가 사재기했던 유통기한이 지난 8000여명분의 백신을 압수하고, 백신구입과 예방접종 안내문 위조 과정에서 의약품도매회사, 병원 관계자 등과 공모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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