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 교수.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짬] ‘우리 신화 전도사’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교수
마고신화 분석해 융분석가 자격
우리 신화 23편 풀어쓴 신간 펴내 “신화 봐야 무의식 이해할 수 있어
‘바리데기’ 아픔 느낄때 진짜 어른”
‘다산의 작가’ 비결은 호기심·공부 융 심리학의 중심 개념 가운데 하나가 집단 무의식이다. 선조들의 경험이 쌓여 형성되는 이 집단 무의식은 꿈이나 환상, 신화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융 심리학은 본다. “민담이나 신화가 융 분석심리학의 에센스(핵심)입니다. 이걸 봐야 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1992년부터 8년 동안 정신과 개원의로 일했다. 2000년 융 심리분석가 자격을 얻기 위해 뉴욕 유학을 떠났다. 만 40살이었다. “시어머니가 무당을 만난 뒤 남편(법조인)이 출세하려면 제가 남편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14년 시가살이의 안식년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뉴욕에 갔었죠.”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옛이야기를 좋아했다. 중학생 때 귀신 이야기가 많은 <삼국유사>에 빠졌다. 그가 대학에서 융 심리학의 대가인 이부영 교수를 학문 멘토로 받아들인 것도 이런 기질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현재 서울대에서 외래 강의를 하면서 이부영 교수가 원장인 한국융연구원의 교수직도 맡고 있다. 2005년부턴 개인 상담실(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을 열어 주 5~6일 ‘내담자’를 맞고 있다. 임상에서 신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곰과 호랑이가 깜깜한 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는 고통을 견뎌 짐승에서 사람으로 변한다는 게 단군신화죠. 이 이야기를 통해 터널이나 동굴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죠.” 내담자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미래가 어찌될지 상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신화 읽기’를 통해 얻게 된다는 것이다. “신화 주인공은 대부분 버려지거나 구박받거나 불공평한 상황에 있어요. 하지만 이들은 자기 존엄을 잃지 않고 홀로 있는 상황을 이겨냅니다.” 그의 책을 보면, 바리데기, 당금애기, 자청비와 같은 우리 신화 주인공들이 ‘운명이나 신이 그들에게 안겨준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그는 바리데기 이야기에서 ‘버림받은 아이’란 원형(archetype, 융 심리학에서 집단 무의식과 연결되는 태곳적 이미지)을 본다. 그는 임상에서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버림받은 아이의 기분을 느끼고, 고아 원형을 만나야 진짜 어른이 된다.’ 그는 천지왕본풀이나 성주풀이 등 그 자체로 책 한 권 분량이 되는 옛이야기들을 10쪽 이내로 압축해놓았다.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융 심리학의 매력은? “융 심리학은 모든 환자 안에 정상과 비정상이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외상 때문에 지금의 고통이 있다는, 그런 인과적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같은 상처인데 그 결과는 사람마다 다르지요. 융 심리학은 네가 아픈 것은 네가 크게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미래 지향적이죠.” 그는 고통이야말로 큰 스승이라고 했다. “고통을 증상으로만 이해하면 최면을 걸거나 약이나 전기충격요법에 의존하겠죠. 고통을 피하지 말고 네 것으로 만들라는 게 융 심리학이죠.” 그래서 혹부리 영감 얘기는 이런 해석을 얻는다. ‘가짜 혹부리 영감도 내 안의 일부다. 내 안에 있는 두 얼굴, 그리고 이 두 얼굴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넉넉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 내 안의 두 가지 모습을 인정하는 일은 결국은 나를 알고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레드콤플렉스와 돈콤플렉스가 그것이다. “북유럽사회주의를 종북이라고 하는 것처럼 비합리적 비논리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집단 무의식이 작용한 것이죠. 전쟁과 일제시대의 경험이 간접적으로 무의식에 들어간 것이죠. 수백년 동안 도와 덕을 앞세운 조선 유교사회가 뒤늦은 근대화를 경험하면서 ‘돈이 종교가 되는’ 반동이 일어난 거죠.” 지난 11년간 내담자에게서 관찰되는 변화를 물었다. “훨씬 뻔뻔해졌죠. 10년 전엔 돈이 인생의 목표라고 선언하진 않았죠. 요즘은 외모를 고쳐 세속적 성공을 하고, 배우자도 그런 기준에서 고른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더 우울해집니다. 어차피 90%는 부자가 될 수 없어요. 과거엔 성욕이 있어도 말하기 남세스럽다고 했는데, 요즘은 ‘지금 성욕이 넘쳐 누군가 픽업해야겠다’고 합니다.” 긍정적 변화는 없을까. “매스컴 탓도 있겠지만, 요리사, 연예인 되겠다는 애들이 많지요. 과거 획일주의적 선택과는 다르죠. ‘3디’란 말도 잘 쓰지 않는 것 같죠.” 요즘의 10대, 20대가 현실 적응 측면에선 경제성장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앞선 세대보다 더 나은 것 같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자녀교육에서 자존과 독립성 키우기를 강조했다. “나이 든 세대가 젊은 세대를 잘 부려먹을 수 있도록 키우는 게 요즘 교육이지요. 엄마 아빠가 모든 걸 컨트롤하고 있어요. 팀워크를 키우는 스포츠는 아예 하지 않지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뭔가 자율적으로 해보려면 싹을 밟지요. 금수저라는 것도, 결국 금수저를 받고 부모한테 컨트롤당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걸 수동적으로 부러워만 하면 희망이 없어요.” 그는 다산의 작가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궁금해서 공부합니다. 이 과정이 재밌어요. <오십후애사전>이란 책도 제가 나이 50이 되면서 이 시기가 궁금해 공부해서 쓴 것이죠.” 그가 다음에 내놓을 책의 주제는 죽음이다. 다른 사람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자기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자기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내가 모르는 곳이 있어요. 공부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사람의 마음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겸손해지지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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