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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유방암 의심 판정 받은 날, 그녀가 내게 전화를 했다

등록 2016-06-30 10:34수정 2016-06-30 14:32

[김양중 종합병원] 여자의 가슴앓이
유방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유방촬영검사를 받고 있는 모습.
유방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유방촬영검사를 받고 있는 모습.

어느 유방암 환자와의 상담기/

<한겨레> 의료전문기자가 돼 환자를 진료하지 않은 지 벌써 15년가량 됐지만 그래도 의사 면허를 가졌다고 주변에서 진료 상담을 해 오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은 물론 각종 사회 모임에서도 적지 않게 시달리는데요. ‘이럴 때에라도 다른 삶에 도움이 돼야지’ 하는 생각으로 능력 되는 대로 상담에 응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상당히 난감한 사례도 많은데요. 바로 유방암과 같은 경우입니다. 남성이 아예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 대부분이 여성인데다가 민감한 얘기들이 오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위암이나 폐암의 경우 초기에 발견하면 수술로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가장 나은 치료법인데, 유방암은 초기라도 유방에 칼을 대 일부 또는 전체를 잘라내는 것이 쉬운 결정만은 아닙니다.

유방암 검사에서 유방암 의심 판정을 받은 이아무개(42)씨는 저에게 두 번 도움을 요청한 경우인데요. 이씨는 지난해 11월쯤 건강검진을 받다가 유방암 검진을 위한 유방촬영검사에서 유방암 의심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4년 전에도 건강검진을 받을 때 같은 검사에서 ‘유방암 의심’ 판정을 받아 ‘암에 걸렸다’는 공포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의심 판정이 나오던 날 밤에 곧 죽을 사람처럼 불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 오던 기억이 납니다.

“한밤중이라 미안한데, 혼자 고민하다가 이제 전화드려요. 이제 30대 후반인데 벌써 암에 걸려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아직 의심일 뿐이에요. 또 암이라고 해도 유방암은 워낙 생존율이 높아 그렇게 겁낼 것까지는 없어요.”

“가슴에 가는 주삿바늘 같은 관을 찔러 넣어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이 검사는 해야 하겠죠?”

“유방촬영검사에서 유방암 의심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암이 아니니 너무 걱정 마세요. 조직검사는 암이 의심되는 부위를 떼어내어 암세포인지 확인하는 검사인데요. 여기에서 양성으로 나와야 암으로 진단하기 때문에 그 검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유방암 검진에서 하는 유방촬영검사는 정확성이 높은 검사는 아닙니다. 2011년 5월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 등이 주최한 ‘암정복포럼’에서 박은철 연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1999년부터 유방촬영검사로 유방암 의심 판정을 받은 이들 가운데 실제 암 환자는 0.6%뿐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유방촬영검사에서 암이 의심된다고 나온 1000명 가운데 6명 정도만 진짜 암이지, 나머지 994명은 유방암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거의 대부분은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 암세포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받고 결국엔 암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유방암 진단과 검사 과정. 자료 국립암센터
유방암 진단과 검사 과정. 자료 국립암센터

의심판정 받고 공포에 떨던 그녀
100여만원짜리 정밀검사에서
다행히 ‘안도의 한숨’
4년뒤 또다시 의심 판정
이번엔 암세포 나왔지만 담담했다

유방조직 떼내고 보형물 삽입
상실감이나 충격을 줄였다
인생 밑바닥 갔다온 기분이긴 하지만
5년 생존율 91.5%, 10년은 85.4%
충분히 이겨낼수 있는 병이기에…

이는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유방암 조기 발견을 위해 여성 2000명이 10년 동안 유방촬영검사를 받으면 1명이 유방암을 조기에 발견해 사망 위험을 낮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00명 가운데 10명은 유방암이 없는데도 유방암 의심 판정을 받은 뒤 이후 추가 검사에서도 유방암이 있는 것으로 나와 수술, 항암제, 방사선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 2000명의 10%인 200명은 유방촬영검사에서 유방암 의심 판정을 받은 뒤, 이후 추가 검사에서 암이 아니라고 밝혀지기까지 검사비를 들인 것은 물론 암이라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너무 걱정 말라고 설명을 했지만, 이씨는 암이라는 불안감에 그날 밤을 거의 새웠다고 나중에 고백했습니다. 이씨는 결국 며칠 뒤 한 종합병원을 찾아 암세포인지 확진하는 맘모톰 검사를 받았고, 일주일쯤 지나 암이 아닌 것으로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이제 살았구나’ 하고 안도하더니, 나중에는 괜한 검사를 받은 것에 대해 후회했습니다. 맘모톰 검사에 100만원 넘는 돈을 들여야 했기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4년 전 유방암이 아닌데도 의심 판정으로 시달렸던 이씨는 지난해 11월에는 그리 놀라지도 않았고, 추가 검사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걱정이 되었는지 며칠 뒤 또다시 저에게 연락을 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또 아닌 것으로 나올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검사를 받아야겠죠?”

“유방암 의심이라는 결과에서 받을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다면 확진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물론 최종 결정은 이씨가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이씨는 4년 사이에 가까운 친구를 비롯해 직장에서도 유방암을 진단받은 사람이 있어 유방암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며, 맘모톰 검사를 받기로 결정했다고 알려 왔습니다.

“검사비는 암이 아니라는 안도를 위한 비용으로 여기기로 했어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검사 결과에서 이번에는 정말 암인 것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씨는 “4년 전에 겪었던 ‘가짜 유방암’에 놀란 탓인지, 정작 유방암 판정을 받았는데 그리 겁나지 않았어요. 주변의 유방암 환자들이 수술이나 항암제 치료 등을 받고 회사도 잘 다니고 있어 크게 겁이 나지는 않네요”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유방암의 경우 유방이나 겨드랑이에서 멍울이 만져지거나, 유두가 함몰되거나, 유두에서 분비물이 나오는 증상으로 발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씨처럼 유방암 검진에서 찾습니다.

이씨는 이후 몇 가지 검사를 더 한 결과 유방암 1기로 진단됐고, 의사는 수술을 권했습니다. 국립암센터와 중앙암등록본부의 최근 자료를 보면 유방암의 경우 진단 뒤 5년 이상 살 가능성이 91.5%에 이를 정도이고, 10년 이상 생존할 가능성 역시 85.4%나 돼 생존율이 매우 높은 암입니다. 게다가 유방암 1기는 5년 이상 생존율이 98%에 이릅니다. 폐암이나 췌장암의 경우 진단 및 치료 뒤 5년 이상 생존할 가능성이 각각 23.5%, 9.4%밖에 되지 않는 것에 견줘보면 유방암의 생존율은 엄청나게 높은 셈입니다.

다만 이씨의 경우 암세포가 확인된 암 덩어리가 크지 않았지만, 암이 의심되는 매우 작은 혹이 몇 개 더 있어 수술 범위가 커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칫 한쪽 유방 전체가 수술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이씨는 인터넷 등에서 암세포가 저절로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글을 보고 몇달 관찰해볼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인 앤절리나 졸리 사례를 보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씨는 “예방을 위해 수술까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미 발견된 유방암에 대해 치료는 하고 봐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참고로 유전적으로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았던 앤절리나 졸리는 2013년 5월 유방암 예방을 위해 유방을 절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많은 여성들이 유방 절제술에 관심을 가졌는데, 손병호 서울아산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모든 여성이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해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앤절리나 졸리는 유전자 이상으로 유방암 발생 위험이 60% 이상으로 아주 높아서 수술을 고려할 수 있었으나, 단순히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있다고 해서 유방을 절제하는 것은 과한 치료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씨의 경우 항암제 치료로 암의 크기를 줄여 수술을 하거나, 수술 뒤 항암제 치료를 받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또 유방 조직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이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씨는 유방 조직이 남아 있으면 유방암 검진도 받아야 하고, 유방암이 다시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한쪽 유방 전체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로 결정했습니다.

“유방암 수술 뒤에도 유방촬영검사 등에서 자꾸 유방암 의심이라는 판정이 나오면 귀찮으니 유방 조직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면서 동시에 유방의 모양을 갖추도록 하는 유방재건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유방암 수술을 하면서 유방을 전부 제거한 뒤 동시에 유방재건술을 하는 비율은 10%를 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 대중목욕탕 등을 가기도 꺼려지는 등 여성으로서 삶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유방암 수술 뒤 곧바로 유방재건술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는데요. 서울아산병원의 이택종 성형외과 교수팀의 조사 자료를 보면 2010~2013년에 유방암 수술 뒤 곧바로 유방재건술까지 받은 환자 비율은 36.8%에 이르렀습니다. 유방암 수술 뒤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유방 절제로 인한 상실감이나 심리적 충격을 아예 겪지 않도록 차단하는 셈입니다. 이택종 교수는 “유방암 수술을 받으면서 곧바로 유방재건술을 받는 경우, 암이 나중에 혹시라도 재발할 때 발견이 늦어지거나 생존율이 낮아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조사 결과 생존율이 낮아지지 않았고, 유방재건술의 안정성과 유효성 또한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유방재건술의 경우 자기 배의 근육 등을 떼어내어 활용하는 자가조직 재건술이나 보형물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자가조직 재건술을 받아도 수술 뒤 임신이나 분만이 가능합니다. 이씨는 보형물을 넣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씨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에 이전보다 조금 더 커진 유방의 모습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된다”며 “수술로 인한 심리적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유방 보형물이 자연스럽지 못한 점에는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습니다. 또 다른 쪽 유방에도 암이 생길 가능성이 다른 사람보다 크게 높다는 점도 걱정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우선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유방 전체 제거술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재건술까지 받으니 암 수술로 인한 상처는 크지 않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암까지 걸려 봤다는 생각에 인생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온 기분이기는 합니다.”

이전에는 술을 즐겨 마셨던 이씨는 앞으로는 술을 마시지 않을 생각이라며 금주를 선언했습니다. 술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핏속 농도를 높여 유방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며 헬스장에 등록해 걷기와 자전거 타기 등을 하고 있습니다.

이씨는 “처음에는 왜 잘못도 없는 나에게 유방암이라는 악재가 생겼는지 원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암과 같이 중증질환을 이겨내면서 오히려 긍정의 힘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씨가 이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쪽 유방에는 암이 생기지 않아 더 이상 상담해줄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사를 맺었습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흔히 걸리거나 평소 궁금했던 질환을 가리지 않고 다뤄 보자는 의미에서 ‘종합병원’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환자들이 진단과 치료를 받는 과정을 밀착취재하고 환자들이 느꼈던 아픔에도 귀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격주마다 2개면에 걸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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