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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물집이 허리띠 두른 듯…진통제를 먹어도 욱신욱신

등록 2017-01-12 08:39수정 2017-01-12 09:08

[김양중 종합병원] 대상포진
“옆구리와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이었습니다. 과거에도 허리가 아팠던 적이 있어서 척추 어딘가가 단단히 고장났다고 생각해, 예전에 다니던 정형외과를 찾아갔는데, 결과적으로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비만 낭비한 꼴이 됐습니다.”

지난해 1월 조아무개(69·여)씨는 마치 칼이나 바늘로 찌르는 듯이 날카로운 통증이 왼쪽 옆구리 뒤편부터 허리까지 나타났습니다. 10여년 전부터 허리가 종종 아팠고, 5년 전쯤에는 허리 디스크 질환을 진단받아 약물 치료를 받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디스크 질환이 악화된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틀쯤 예전에 처방받았던 진통소염제 등을 챙겨 먹었지만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통증이 나타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조씨는 평소 다니던 정형외과 병원을 찾아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통증이 너무 심하다고 의사에게 얘기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혹시 척추의 디스크가 파열됐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몇 가지 신체 검진을 하더니 엠아르아이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10여년 전 100만원 가까이를 들여 엠아르아이 검사를 받았을 때에도 크게 이상이 없었던 조씨는 검사를 받고 싶지 않았지만, 예전 허리 통증과는 양상도 다르고 강도가 셌기 때문에 검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씨는 “검사비가 50만원가량 들었던 것 같은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척추 디스크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파열된 디스크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정형외과 병원에서 좀더 효과가 센 진통소염제 등을 처방받고 집에 돌아와 약을 먹었는데도 극심한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눕거나 앉는 등 자세를 바꿔도 통증의 세기나 양상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씨는 잠을 설칠 만큼 통증에 시달리다가 어떻게 하다 보니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구리 뒤편부터 등의 중앙선까지 물집이 잡혀 있었습니다. 무슨 큰 질병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고 조씨는 크게 놀랐고, 주변 여러 사람에게 연락을 하다가 아는 의사에게서 대상포진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조씨는 “옆구리와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한데, 피부과를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하니 다소 황당했습니다. 하지만 피부에 물집이 수십개 잡혀 있는 것을 보니 피부과를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놀란 마음에 종합병원을 찾았는데, 그곳 피부과 전문의는 통증의 양상을 듣고 옆구리와 등에 있는 물집을 보더니 대상포진이 의심된다고 얘기했습니다. 대상포진은 말 그대로 물집 양상이 마치 허리띠를 옆구리에 두른 것처럼 나타납니다. 이민걸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는 “대상포진은 수두 바이러스가 원인인데 어렸을 때 감염된 뒤 바이러스가 신경에 잠복하고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다시 활성화돼 주로 40대부터 많이 발생한다”며 “심한 통증, 피부 발진과 물집이 주요 증상인데, 피부 증상이 나타나기 전 최소 사흘에서 최대 열흘 동안은 통증만 나타나기 때문에 다른 질환과 구별하기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상포진인줄 몰랐던 60대 여성
허리 통증에 디스크 의심했지만
며칠뒤 물집 보고서야 피부과 진단
약효도 없어 결국 신경치료 받아

어릴 때 잠복한 수두 바이러스
심한 스트레스·과로때 재번식
40대이상 여성들 특히 많이 앓아

“면역력 높이려고 규칙적 운동에
혹시 재발 될까봐 백신 접종도
산통처럼 아파 기억조차 하기싫어”

조씨의 경우 과거에 디스크 질환을 앓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의심했지만, 다른 대상포진 환자들은 물집이 잡히기 전에는 옆구리 통증 때문에 종종 요로결석이나 담석 등을 의심해 검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로결석은 신장에서 만들어진 소변이 방광으로 모이는 통로에 돌이 생겨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고, 담석 역시 쓸개즙이 모이는 담낭에 돌이 생겨 마찬가지로 극심한 통증이 옆구리나 배의 위쪽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조씨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대상포진이 나타났다는 말에 다소 겁이 났지만, “통증이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는 피부과 의사의 설명에 안심했습니다. 또 바이러스 감염이기 때문에 주변에 옮기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들었지만 피부과 전문의는 주변에 전염시키는 일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씨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만한 잘못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아 피부과 전문의에게 감염의 원인에 대해 물었습니다. 피부과 전문의는 최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과로 등이 있는지 물었고, 조씨는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평소 고혈압과 허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디스크 질환을 앓고 있어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가량 집 근처 산책길을 걷는 등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항바이러스제와 진통소염제 등 몇 가지 약물을 처방받고 돌아온 뒤 그는 돌이켜 보니 두세달 전쯤부터 아들이 갑자기 직장을 그만둔 것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조씨는 “40대 초반인 아들이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직장을 그만뒀는데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라 무척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며 “아들과도 말싸움을 심하게 하는 등 며칠 끙끙 앓았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며칠 식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런 영향이 대상포진을 나타나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강연승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심하게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대상포진은 잘 생기는데, 특히 나이가 많고 면역력이 떨어질수록 대상포진 뒤 신경통도 잘 생긴다”며 “많은 연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발생한다고 보고돼 있으나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스트레스에 민감해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약화를 더 많이 겪기 때문에 대상포진도 더 많이 걸린다는 설명도 있지만, 통증에 더 예민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병원을 찾기 때문이라는 추정도 있습니다.

조씨는 처음 통증이 생기기 시작한 날부터 일주일가량 지났을 때부터 피부의 물집은 딱지가 생기면서 낫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통증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최은주 분당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물집은 통증이 시작된 지 보통 3~5일이 지난 뒤 나타나 1~2주일이 지나면 딱지가 생기면서 낫는다. 통증은 환자 10명 가운데 1~2명 정도는 한달 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대상포진으로 통증이 지속되는 기간에 대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특히 60살 이상의 환자 10명 가운데 7명가량이 두달이 지나도록 통증이 계속된 것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통증 자체를 참기도 힘들지만, 통증 때문에 만성피로, 수면장애, 식욕부진, 우울증까지 생기기도 합니다.

조씨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나타나다가 나중에는 옷깃만 스쳐도 통증이 생기는 양상으로 변하면서 통증의 강도도 더 심해졌습니다. 약물의 효과도 더 이상 없는 것 같아 다시 피부과를 찾았습니다. 피부과에서는 대상포진 뒤 신경통이 의심된다며 마취통증의학과에서 진찰을 받아보도록 권유했습니다. 그곳 전문의는 신경치료를 권했습니다. 조씨는 “통증이 심해 무슨 치료라도 받을 생각이었지만 신경을 차단하는 치료를 한다고 해서 다소 놀랐다. 하지만 당장 죽을 것 같은 통증을 줄일 수 있다니 어쩔 수 없이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최은주 교수는 “대상포진의 통증에 대하여 진통소염제, 항바이러스제 등을 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경치료를 하면 신경통으로 진행되는 것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대상포진이 나타난 뒤 한달가량 지나 신경통이 나타나면 진통제나 신경치료를 해도 만족할 만한 효과를 보지 못하게 돼 고통스런 나날들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수두 바이러스는 어렸을 때 수두를 일으킨 뒤 이후에는 신경다발이 모인 신경절에 침투해 이곳에서 잠복해 있다가 중장년층 이후 면역력이 떨어지면 다시 번식해 대상포진을 일으키기 때문에 해당 신경절을 차단하는 등 직접 신경을 치료하는 것이 바로 신경치료입니다. 조씨는 신경치료를 받은 뒤에는 다행히 통증이 크게 줄었습니다. 이후 가끔 통증이 나타날 때 진통소염제 등을 쓰면 통증이 조절되기도 했습니다.

조씨의 경우 옆구리나 등 쪽에 대상포진이 나타났지만, 대상포진을 앓는 환자 가운데 10~25%는 합병증으로 얼굴에 대상포진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얼굴에 나타난 경우 증상이 훨씬 더 심한 편입니다. 이 경우에는 3명 가운데 2명에서 눈의 각막에도 염증이 생기고, 절반가량에서는 시력 감퇴를 겪기도 합니다. 또 뇌졸중 발병 위험이 얼굴 대상포진이 없는 사람에 견줘 4배가량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습니다. 다행히 조씨는 얼굴에 대상포진이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지난해 말 조씨는 자녀들의 권유에 따라 종합건강검진을 받았지만, 평소 앓고 있던 고혈압이나 허리 통증 그리고 비만 이외에는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암이 의심될 만한 소견도 나오지 않았고, 다소 비만하다는 얘기만 있었습니다. 조씨는 “젊었을 때에는 괜찮더니 40대 이후에 몸무게가 늘고 폐경 뒤로는 몸이 훨씬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며 “폐경 시기부터는 건강관리가 매우 필요하다는 말을 대상포진을 앓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평소 하던 걷기나 산책 시간을 다소 늘렸습니다. 젊었을 적에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집에서 음악 듣는 시간도 늘렸다고 했습니다.

조씨는 올해 여름에 주변 친구들이 대상포진을 예방하는 백신을 맞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조씨는 대상포진이 얼마나 괴로운지를 자세히 설명했다고 합니다. 조씨도 혹시 몰라 접종을 맞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상포진은 한번 나타나면 재발하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럼에도 조씨는 예방접종을 받기로 했습니다. 조씨는 “한번 당해 보면 얼마나 아픈지 알게 된다. 충치로 치통이 심할 때나 아이 낳을 때 통증처럼 심하기 때문에 기억하기도 싫어 몇 만원 드는 것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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