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국내 첫 생체 폐이식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서울아산병원은 살아 있는 사람의 폐를 일부 잘라서 다른 환자에게 이식한 이른바 ‘생체 폐이식 수술’이 국내에서 지난달 21일 처음으로 시행됐다고 15일 밝혔다. 기증자와 이식을 받은 환자 모두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현행 법상 생체 폐이식은 허용되지 않아 법적 문제가 남았다. 보건당국은 생체 폐 이식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산병원에서 이뤄진 생체 폐 이식 수술은 말기 폐부전으로 폐의 기능을 모두 잃은 20대 여성이 받았다. 그의 부모가 폐의 일부를 기증했으며, 이식 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 집중치료를 받은 환자는 수술 뒤 6일 만에 인공호흡기를 떼고 현재는 일반병동에서 입원 중이다. 딸을 위해 폐의 일부를 기증했던 환자의 부모도 퇴원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폐는 오른쪽이 세 개, 왼쪽은 두 개로 나눠져 있으며, 생체 폐 이식은 기증자 두 명에게서 폐 일부를 각각 떼어 폐부전 환자에게 이식한다. 폐암 환자들의 경우 폐의 일부를 절제하고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폐 기증자도 일상에는 문제가 없다.
폐 기증을 받은 환자는 2014년 폐 기능에 심각한 이상이 진단됐고, 지난해 7월에는 심장이 정지되기도 했다. 그 뒤 뇌사자의 폐를 기증받기 위해 신청했으나, 기증을 받지 못해 사망 위기에 몰렸다. 참고로 국립장기이식센터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에서 뇌사자의 폐를 기증받기 위해 대기하는 평균적인 기간은 1456일에 이른다.
현행 장기이식법에서는 생체 폐 이식을 할 수 없게 돼 있어 이 환자의 부모는 지난 8월 청와대 국민 신문고에 생체 폐 이식을 허락해 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지난 10년 동안 일본 등에서 생체 폐 이식 수술법을 익혀 온 아산병원 폐이식팀은 지난 8월 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와 의료윤리위원회에 안건을 논의해 승인을 받았고, 관련 학회인 대한흉부외과학회, 대한이식학회에 의료윤리적 검토를 의뢰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또 복지부와 국회,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등에도 해당 사례를 보고해 설득해 갔다. 수술을 집도한 박승일 흉부외과 교수는 “생체 폐이식은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다 상태가 악화돼 사망하는 환자들, 특히 소아환자들에게 또 다른 치료방법을 제시한 중요한 수술”이라며 “기증자의 폐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은 폐암 절제 수술 때 흔히 시행되는 수술로 안정성이 보장돼 있다”고 강조했다. 생체 폐이식은 1993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 뒤 201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400례 이상 보고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 시행된 생체 폐 이식의 경우 현재 장기이식법에서는 허용돼 있지 않다. 형사고발이 돼 해당 의료진의 죄가 인정되면 무기징역이나 2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장기이식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생체 이식에는 폐가 빠져 있다”며 “생체 폐 이식이 기증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관련 법률의 개정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의학 및 윤리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위원회 등에서 논의해 생체 이식이 가능한 장기의 범위 등을 정하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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