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안전상비약의 품목 확대를 반대하는 대한약사회 전국 임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효자동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상비약(안전상비의약품) 품목 수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할까, 아니면 좀더 안전한 약품 사용체계를 만드는 것이 나을까?
4일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복지부는 조만간 제6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열어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상비약 종류 확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에 일부 약사 단체와 보건의료 시민단체는 상비약 오남용 우려 등을 제기하며 상비약 품목 확대에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인다. 이 위원회에서 편의점 판매 상비약 품목을 늘리도록 결정한 뒤 이를 복지부에 전달하면, 복지부는 장관 고시를 통해 품목 수를 늘릴 수 있다. 지난해 열린 다섯 차례 회의에서는 설사를 멎게 하는 지사제(스맥타)와 위산 분비를 줄이는 제산제(겔포스) 등이 논의 대상에 올랐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공눈물, 화상연고, 알러지약 등에 대한 편의점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상비약의 종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은 ‘접근성 확대’다.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에서 약을 살 수 있으면 시민으로서는 그만큼 편리하다는 것이다. 감기약, 소화제, 두통약, 상처치료제 등의 편의점 판매가 허용된 뒤 약품 판매량이 늘고 있으며, 추가로 소비자들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상은 고려대 산학협력단 교수팀이 복지부의 의뢰로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편의점에서 판매된 상비약 총액은 2013년 154억원에서 2015년 239억원으로 2년 만에 1.5배가량 늘었다. 판매된 시간대를 살피면, 밤 10시~새벽 2시에 전체의 43%가 팔렸다. 일요일이나 토요일 등 휴일의 판매량도 전체의 39%를 차지했다. 윤병철 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주로 휴일이나 심야 시간대에 약이 판매되면서 제도 자체의 원래 목적대로 운영된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안전성이 확보돼 부작용 염려가 덜한 약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있으면 판매 품목에 추가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태도다.
반면 약사 단체 등은 정부가 약품의 안전한 사용에 정책 방향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5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1~2015년 6월 기준 편의점에서 팔리는 13개 품목 상비약의 부작용 신고 건수는 1000여건에 이른다. 물론 이들 부작용이 약국에서 팔렸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편의점 판매로 접근성이 좋아져 오남용한다면 그만큼 부작용을 겪을 가능성은 커짐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약사들이 중심이 돼 만든 단체인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의 임진형 회장은 “약사의 복약 지도 없이 자가진단으로 편의점에서 약을 구입하다 보면 약물 부작용이나 오남용 사고를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현재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약준모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공공심야약국’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경기, 대구, 제주 등에서 운영되는 공공심야약국은 밤 10시부터 자정 또는 아침 6시까지 문을 연다. 약국 직원의 인건비는 약준모나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있다. 김재천 건강세상네트워크 운영위원은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안전상비약 가운데 어린이 해열제 등의 부작용 보고 건수가 최근 5년 동안 440건에 이른다”며 “정부는 제약사나 유통업체의 이윤 증대를 위한 무분별한 품목 확대 계획을 철회하고 지금껏 논의된 품목 확대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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