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24일 오후 서울 신림동 서울대 수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구원의 난자 사용 문제 등과 관련한 입장과 세계줄기세포허브 소장 등 모든 겸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뒤 곤혹스런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분석] ‘국익론’에 휩쓸리는 인터넷 민주주의의 빛과 그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불법적인 난자를 사용했는지를 놓고 촉발된 황우석 교수 연구 윤리논란이 ‘국익론’을 둘러싼 논쟁으로 치닫고 있다. 황 교수팀의 난자 채취 문제 등을 보도했던 <피디수첩>에 대해 마녀사냥식 공격이 벌어지고, 광고가 모두 중단되는 방송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 피디수첩에 대한 여론의 뭇매가 지나치다”고 자제를 당부하고, 비이성적·감정적 애국주의로 호도되고 있다는 비난도 일었다. 그러나 황 교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여론은 여전히 90%가 넘는다. 이런 ‘국익’의 모양을 띤 ‘황교수 옹호론’은 가히 ‘황우석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진원지는 인터넷이었다. 누리꾼들은 온라인 카페를 기반으로 국익론을 확산시켰고, 피디수첩에 대한 광고중단 압력과 촛불시위를 통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여론압박전을 펼쳤다. 신문·방송 등 주류언론은 인터넷 여론을 비판하기는커녕 이에 편승해 국익론을 눈덩이처럼 키웠다. 독재정권시절의 ‘백지광고’ 사태가 참여 민주주의를 표방한 정권에서 누리꾼들에 의해 ‘광고 없는 방송’으로 재현되었다. 대통령이 광고중단을 에둘러 비판했으나 광고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리꾼의 여론압박이 대통령의 권위를 능가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엇이 누리꾼을 막강한 권력으로 키웠는가?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도구’인가? 아니면 위협하는 ‘수단’인가? 인터넷 여론에 대해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때다. “집단적 광기, 혼수상태 공포감을 느낀다”
“황우석은 2002년 월드컵 전사와 다르지 않아”
황우석과 월드컵 4강. 세계에 내세울 국민적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둘은 닮았고 애국주의를 부추기며 상품화 되었다.
90% 이상 ‘절대 여론’ 민족주의 주장에 몰려
포털사이트 등이 올해 실시한 라이브폴을 분석해보면 찬성이건, 반대이건 90%이상을 넘어서는 ‘절대 여론’이 형성되는 사안의 대부분은 민족적 감수성에 뿌리를 박고 있다. 네이버 라이브폴
“제로섬의 정치게임과 가치 논쟁은 다르다”
26일 오후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황우석 교수 인터넷 팬클럽 카페 회원들이 PD 수첩 방송과 관련,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익론의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있다. 국익론은 여러 논쟁을 삼켜버린 블랙홀 효과를 내면서 폭력적 방식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피디수첩의 담당 피디 가족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았고, 윤리와 인권을 운운하는 글에는 “매국노”라는 댓글이 붙었다. 피디수첩 광고주들에게 광고중단 압력을 넣은 것은 다수의 폭력이 보여준 극단적인 사례다. 송 강사는 “여중생 장갑차 희생사건 때처럼 사실에 대한 진위 여부를 검증한 뒤 잘못되면 집단으로 항의하는 것이 정상인데 최근에는 현상에 대해서만 단죄하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감정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며 “이런 경우 여론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민 교수는 “절대 다수가 국익론에 경도돼 ‘광고를 빼라’는 등 집단적인 공포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을 연상시킨다”며 “아무리 정당한 주장이라도 표출하는 방식이 폭력적이면 정당성을 보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 때도 인터넷 여론은 탄핵 반대가 압도적이었고, 촛불집회 등을 통해 여론의 압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본질이 다르지 않다고 반론할 수 있다. 당시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던 정치세력은 누리꾼을 향해 “노무현 홍위병”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 교수는 “제로섬의 정치게임과 가치를 둘러싼 논쟁은 다르다”고 반박한다. “탄핵은 대통령 탄핵세력과 대통령을 지키려는 세력간의 제로섬 게임이었다. 즉 자신들의 정치적 뜻을 관철하기 위해 반대 쪽을 반드시 패배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황 교수 사안은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국익과 윤리, 국익과 언론의 자유가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함께 가야할 문제라는 것이다. 폭력적인 방식의 관철이 아니라 토론이 필요한 사안이다.” 왜 인터넷이 진원지가 되었나?
‘디지털 포퓰리즘’ 여론 선동에 악용될 수도 이제 누리꾼들의 행위가 아니라 누리꾼들의 집단행동의 마당이 된 인터넷의 매체적 속성으로 논의를 옮겨보자.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없었다면 황우석을 둘러싼 국익론이 폭발적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었을까? 민 교수는 “인터넷은 이슈를 빠르게 확산시키고, 그런 것이 집단적으로 표출되기에 쉬운 매체”라며 “특히, 상당히 단순하고 명료하고 극단적인 논리가 잘 어필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국익론의 진원지가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이다. 황 교수는 “인터넷의 속성상 여론형성이 네트워크 효과로 생산되기 때문에 폭발력이 크고 확산 속도가 빨라 걷잡을 수 없다”며 “처음부터 윤리를 우선시하는 주장이 소수의 의견으로, 반국익적인 것으로 비춰지다 보니까 균형적인 토론이 힘들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인터넷은 익명성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행동을 이끌어내는 행동적 커뮤니티로 역할을 할 수 있으나 합의와 이성적 담론을 이끌어 내는 것에는 한계를 가진다”며 “이런 것이 인터넷에 매체적 특성이자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이 대중선동의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경제 강사는 “사실관계(팩트)가 잘못되면 집단으로 항의하는 것이 정상인데,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 탓에 사이버상에서 디지털 포퓰리즘이 나타날 수 있다”며 “특정 세력이 디지털 포퓰리즘을 의도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인터넷 담론은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시 마녀사냥? 시민사법권 확장인가?
피디수첩’ 홈페이지 메인화면.
“디지털 자연상태는 진화를 멈추지 않을 것” 인터넷이 발달과 함께 정치에 끼칠 긍정적인 측면으로 참여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 확산을 꼽았다. 그러나 황우석 논란에서 보여지듯 인터넷이 되려 다수의 폭력과 소수의 배제를 심화시키는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진씨는 “황우석을 옹호하는 세력들이 토론을 통해 논리적인 비판이나 설득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익명성에 숨어 다수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 강사는 “인터넷 공간은 여전히 법과 제도가 형성되지 않은 디지털 자연상태로 진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섣부른 판단보다 인터넷을 통한 민주주의의 훈련과정을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송 강사는 “한국 경제가 압축성장을 한 것처럼 인터넷 공간도 10년 만에 3200만명의 누리꾼을 보유할 정도로 압축성장을 했다”며 “이 과정에서 민주적인 의사표출의 방법이나 누리꾼을 상대로 한 재교육 등은 거의 무시돼 왔다”고 말했다. 특히 송 강사는 “한국 시민단체들이 국가권력의 감시자 역할에는 충실했으나 시민사회 자체를 감시하고 비판하거나 민주시민을 양성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게을리했다”며 “인터넷 공간에 대한 시민사회의 건전한 감시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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