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오른쪽부터),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가 지난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불평등은 사회를 어떻게 병들게 할까.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기대수명이 낮아지고, 우울증과 정신질환 유병률이 높아진다. 감옥 수감률과 교도관 등 감시노동자의 비중이 높다. 불평등한 사회에 사는 부유층일수록 자기도취에 빠져 과시적인 소비행태를 보이고, 빈곤층은 좌절감과 절망감이 커져서 사회를 더욱 증오한다. 이는 사회통합과 사회의 계층 간 이동성을 저해한다.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사회역학)의 이러한 주장은 세계에 큰 울림을 줬다. 그와 부인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공공보건역학)가 함께 펴낸 <더 스피릿 레벨>, <더 이너 레벨> 등의 저서는 건강불평등 문제를 다룬 역작이다. 윌킨슨 교수 부부는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9회 아시아미래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윌킨슨 교수 부부를 만나 ‘불평등’을 주제로 대담했다. 영국에서 보건학을 공부하고 서울대 의과대 교수를 지낸 김용익 이사장은 유학 당시 경험했던 마거릿 대처 정부의 탄광노조 탄압, 대표적인 건강불평등 보고서로 꼽히는 ‘블랙리포트’,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학문적인 동지이자 “아내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남편은 먹는 걸 좋아하는” 부부인 윌킨슨과 피킷 교수는 사이좋게 나눠서 답변을 했다. 대담은 건보공단 주최로 열린 윌킨슨 교수의 강연회에 앞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김용익(이하 김)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불평등’이 금기어였다. 독재정권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이야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 문제는 조금 낯선 주제다. 왜 우리가 불평등을 생각하고 토론해야 하는가?
케이트 피킷(이하 피킷) 영국에서도 굉장히 오랜 기간 불평등이 정치적 의제에 포함되지 못했다. 1990년대 토니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 집권 체제에서도 ‘빈곤’은 이야기했지만 ‘불평등’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리처드 윌킨슨(이하 윌킨슨) 불평등은 오랫동안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토니 블레어는 불평등이 1930년대의 일이라고 치부했다. 1990년대에는 하위계층도 텔레비전을 소유하고, 중앙난방이 되는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불평등은 우리에게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지위’는 불평등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변수다. 지배·종속 관계가 심리적·사회적으로 불평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
김 한국에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불평등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금은 소득 상위 10%가 전체 부의 절반을 점유하는 등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당신은 불평등이 취약계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이나 상위계층에도 해롭다고 주장한다.
윌킨슨 하위 10%뿐만 아니라 상위 10%도 다 영향을 받는다. 하위계층으로 내려갈수록 영향이 더 크지만, 그렇다고 상위계층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보다 평등한 사회라면 (중산층이거나 부유층인) 내 수명이 더 길어지고, 자녀의 성취도가 더 올라갈 수 있다. 폭력의 피해도 줄어든다.
피킷 미국 하버드대의 한 동료는 “불평등은 마치 사회적인 오염 같다”고 말했다. 대기오염과 비슷하다. 부유층이 근사한 집과 차를 가졌다 하더라도, 바깥에 나가면 대기오염 물질을 흡수할 수밖에 없다. 불평등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철조망을 치고 격리된 좋은 공간에 살면서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낼 수는 있겠지만, 결국 (불평등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김 불평등한 사회가 일으키는 병적인 사회현상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피킷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 격차가 더 커진다. 그 결과 사회관계가 저하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시민 참여도가 낮아져 투표율이 떨어지고 조직 참여 수준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노인이나 장애인 등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고, 아이들 사이에 왕따가 늘어난다. 상호존중이 없기 때문에 폭력 성향도 증가한다.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사회역학). 신소영 기자
윌킨슨 선진국에서는 민주주의의 문제로 나타나지만, 멕시코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에서는 심지어 (국민들이) 서로를 두려워하게 된다. 집에 방범창과 방범문을 설치하고, 교도관·경찰 등 감시 노동자가 증가한다. 하위계층에서는 사망률이 높아지거나 암이나 호흡기질환 발병률이 높아지는 문제가 함께 일어난다.
김 <더 이너 레벨> 등 당신의 저서를 보면, 불평등이 건강을 나쁘게 하는 1차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통합과 사회 계층 이동성 등을 저해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현상이 얼마나 심각하다고 보는가?
피킷 불평등할수록 사회 이동성이 둔화되는 상관관계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증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 ‘미국에 가서 아메리칸드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덴마크나 노르웨이에 가야 통한다고 우리는 이야기한다(웃음).
김 한국에서도 1950~60년대에는 노력하면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다는 꿈이 있었는데, 경제가 발전해 국가 전체의 소득이 늘어난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속한 계층을 벗어날 수 없는 모순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윌킨슨 영국에서도 소득 격차가 확대되면서 사회 이동성이 현저히 감소했다. 이제는 ‘내가 뭘 했느냐’보다는 ‘부모의 소득’이 결국 나를 결정짓는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불평등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으로 넘어갔다. 윌킨슨 교수는 “불평등이 결국 경제성장도 저해한다”며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특허 출원이 줄어들고 교육 수준이 저하하면서 사람들이 덜 창의적, 덜 혁신적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 내부의 신뢰도가 높고 폭력성이 낮은 국가일수록 기업이 경영을 하기도 더 수월하다”고 덧붙였다. 김용익 이사장은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라며 “한국에서도 최근 ‘포용적인 사회라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가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김 그렇다면 좀 더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피킷 한가지 답은 없다. 다차원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크게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누진세 도입과 같은 재분배의 문제다. 보다 강력한 복지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 세전소득에 대한 부분인데 경제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노동조합을 결속력 있게 만들고, 임원한테 가는 보너스 비중을 낮춘다거나 하는 등의 방식이 가능하다.
윌킨슨 불평등을 조금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사회운동의 힘이었다. 스웨덴을 예로 들자면, 사민당이 40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불평등이 상당히 해소되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경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기업 이사진에 노동자들이 대표성을 갖고 참여하게 한다.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 되어야 생산성이 향상되는 것이 수치로도 확인된다. 최근 불평등 문제에 새롭게 접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폭염, 홍수 등의 문제가 사회 전체를 파괴하고 있다. 수십만명이 숨졌다. 보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기후변화와 같은 사회문제에 대해 행동에 더 나선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김 이제 건강·보건의료 문제로 넘어가서, 건강 형평성을 위한 영국의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듣고 싶다. 참고로, 한국은 영국과 달리 사회보험 방식으로 건강보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정된 고용상태를 전제로 하는 사회보험 제도의 특성상, 국민연금만 해도 여전히 많은 국민이 사각지대에 놓이는 등 문제가 생기는 측면이 있다.
피킷 우리는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보편적이고 무상으로 제공되는 건강보험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건강보험 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연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사람, 빈곤 아동, 실직자 등을 위해 더욱 포괄적인 다른 사회제도를 도입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윌킨슨 실제로 빈곤층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도, 질병 예방이나 치료 등에서 부유층과 비교하면 건강에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난한 사람이 부유층과 같은 병을 진단받았더라도 예후가 훨씬 안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 1980년 영국에서 발간된 ‘블랙리포트’는 건강불평등 구조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의료서비스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요인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 이후 영국에서는 어떤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었나?
피킷 1992년과 2010년에도 비슷한 보고서가 발간되었지만, 정부는 사회적인 요인이 아니라 개인의 행동이나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만 할 뿐 제대로 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윌킨슨 정부는 연구 결과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40년 전에 했던 연구가 건강증진에 관한 것이었는데,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란 정말 어렵다. ‘금연하세요’ 해서 중장년층이 금연하더라도, 청년층이 다시 흡연을 시작한다. 사회구조적인 요인을 함께 봐야 한다. 보통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의료서비스 덕분에 더 건강해진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내 건강을 좌우하는 것은 나의 사회적·경제적 삶이다.
김 세계적인 차원에서 건강불평등이 개선되었다고 판단하는가?
피킷 많은 국가에서 수명이 연장되고 영아 사망률이 많이 떨어지고 극빈 수준도 낮아졌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의 경우에 많은 건강지표가 개선되었지만, 부유한 나라는 그렇지 않다. 건강진흥 정책이 단순히 건강 부문만이 아니라 교육, 경제 등 사회 모든 부문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학문이 머리를 맞대야 하고,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윌킨슨 불평등을 해소하면 건강이 증진될 것이라고 둘의 상관관계만 흔히 생각하기 쉽지만, 불평등이 해소되면 학업성취도가 올라가고 감옥 수감률이 낮아지며 폭력이 낮아지고 사회의 응집성은 더 높아진다. 단순히 둘만의 상관관계가 아니다.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보건학). 신소영 기자
윌킨슨과 피킷 교수의 한국 첫 방문 인상은 어땠을까. 윌킨슨 교수는 최근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이 157개국의 불평등 해소 노력을 평가한 보고서를 예로 들면서 “한국은 최근 가장 긍정적 진전이 있었던 국가로 꼽혔다”며 높이 평가했다. 피킷 교수는 “한국은 현재 중요한 순간에 있다. 진보적인 정책을 펼 수 있는 지금, 최대한 많은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며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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