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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드러난 진실’ 왜 믿지 못하나?

등록 2006-01-12 03:05수정 2006-01-12 14:53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로사거리에서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네티즌 연대 주최로 열린 황우석 교수 지지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황교수의 재기를 기원하고 있다. 연합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로사거리에서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네티즌 연대 주최로 열린 황우석 교수 지지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황교수의 재기를 기원하고 있다. 연합
[분석] 계속 되는 황우석 음모론, 한국사회 신뢰의 위기인가?

“우린 황 박사의 광신도가 아니다.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조국 대한민국의 광신도다. 대한민국의 이익(국익)을 가로채는 매국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광신도들이다.”(‘아이러브황우석’ 카페 ‘닭목 비틀다가 어느새 새벽’)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10일 “황우석 교수팀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주는 없고, 그것을 만들었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었다”고 발표했다. 뜨거웠던 줄기세포 진실게임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서울대의 기대와 달리 발표는 ‘논란의 종지부’가 되지 못했다.

인터넷에서는 “황우석 교수를 죽이려는 음모다. 믿을 수 없다”는 등의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고 일부 지지자들은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왜 서울대 조사위에 의해 ‘밝혀진 진실’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사회학자, 심리학자,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의 분석을 들어봤다.

“서울대 조사 신뢰” 66%, “황 교수에 다시 기회 줘야” 69%


황 교수의 논문조작 사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여론은 비난 대신 “황 교수에 기회를 줘야 한다”며 여전히 관대하다. 황 교수 후원회 가입자는 논문 조작 사실이 드러난 지난해 11·12월 두달 동안 2천여명이 늘어나 최근 5천800명선을 넘어섰다. 논문조작이 밝혀졌는데도 후원회를 탈퇴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후원회쪽은 밝혔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 앤 리서치’가 서울대 조사위의 최종발표에 앞서 지난 4일과 5일 이틀 동안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66%는 ‘서울대 조사위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6%였지만 20대의 72.2%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또 황 교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한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69.2%였다. ‘더 이상 줄기세포 연구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26.2%에 불과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황 교수의 연구 재개와 원천기술 재현을 위해 100억원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황우석 줄기세포 원천기술을 지지하는 국민연합’은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범국민 촛불집회를 개최하는 등 황 교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왜 믿지 못하나? 다양한 이유들

황 교수와 그 지지자들이 일찍부터 피디수첩을 비판하며 “과학은 언론이 아닌 과학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서울대 조사위는 세계 과학계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의식하며 서울대의 명운과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줄기세포 연구’의 진실을 ‘최종 결과 보고서’에 담았다. 서울대 조사위가 다양한 근거와 검증을 통해 밝혀낸 바는 인터넷으로도 공개된 ‘최종 보고서’에 담겨 있다. 이는 뉴욕타임스 등의 해외 언론 사이트에도 영문으로 전문이 실렸다. 밝혀진 ‘진실’은 선명하다. 그러나 상당수 황우석 지지자들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황우석의 카리스마적 지배…박정희 향수와 유사”

‘황우석 줄기세포 원천기술을 지지하는 국민연합’은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범국민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촛불집회 포스터
‘황우석 줄기세포 원천기술을 지지하는 국민연합’은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범국민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촛불집회 포스터

진실이 드러남에 따라 황 교수 지지자들은 소수화하고 있지만, 그 소수 집단의 믿음은 더욱 공고해져가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학자와 정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카리스마’와 ‘시간 지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대중에게 지배가 관철되는 3가지 형태를 법률에 따른 지배(합법적 지배), 관습에 따른 지배(전통적 지배), 카리스마로 분류해 설명했다. 카리스마적 지배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초자연적, 초인간적인 재능이나 힘이 있다고 믿는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근거로 맺어지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뜻한다. 따라서 카리스마적 지배는 합법적 지배나 전통적 지배와 달리 카리스마의 소유자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는 “대중들이 히틀러에 열광한 것은 결론적으로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인데, 황 교수에게도 신비화된 카리스마적 요소가 강한 것 같다”며 “카리스마에 대한 숭배는 심각한 실패나 실수를 하면 반감될 수 있으나 맹신자들이 생기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개인에 대한 숭배나 절대적 지지는 이미 신념화되어 있어 진실이 밝혀져도 자기 신념에 배치되기 때문에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일종의 시간지체현상으로 유사 종교처럼 황 교수를 맹신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시간이 지나면 차차 정상적인 분별력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덧붙였다.

송경제 인천대 강사(인터넷정치)는 “권위적 지배나 비합리적 복종은 과정상 문제점이 드러나도 초기에 의도나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대표적인 것이 박정희 신드롬”이라고 지적했다. 송 강사는 “논문조작과 연구과정의 사기가 명백히 드러나 ‘과학자로서 사망선고’를 당한 사람에게 계속 기회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유신정권의 부도덕함과 인권탄압이 속속 밝혀져도 박정희를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국민 정서와 맞닿아있다”며 “황우석 신화는 박정희 향수와 닮은 꼴”이라고 말했다.

신념화된 ‘황우석 신화’…황우석 부인은 곧 ‘자기부정’
종말론 사교집단 약속했던 종말 오지 않으면 ‘다시 올 것’ 합리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로사거리에서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네티즌 연대 주최로 열린 황우석 교수 지지 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황교수의 재기를 기원하고 있다. 연합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로사거리에서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네티즌 연대 주최로 열린 황우석 교수 지지 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황교수의 재기를 기원하고 있다. 연합
심리학적인 분석은 ‘황우석 신화’가 ‘개인의 신념’으로 전이 되면서 자기 부정의 두려움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데 있다. 심리학적 접근은 개인이 ‘황우석 신화’를 어떻게 수용하면서 반응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도저히 믿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코미디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며 “드러난 진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황 교수는 일방적인 ‘황우석 지지’나 ‘영웅화’에 대해서도 “영웅화는 스스로 그렇다고 믿고 싶은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며 “자기 신념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왜 그 사람을 영웅으로 받아들였는지 의문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명백한 진실을 믿지 않으려는 것은 종말론 사교집단과 유사한 심리적 행태”라고 설명한다. “종말론 사교집단에 들어간 사람들은 재산도 모두 처분하고, 가족들도 등진다. 그러나 정작 종말의 그 날이 오지 않으면 ‘속았구나’ 하고 사교집단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말이 연기되었다’는 믿음을 간직하면서 또 다른 종말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음모론이 확산되는 것도 드러난 진실에 대한 자기방어적 속성이 강하다. 황 교수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추구하고 음모론은 그 산물”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음모론을 믿어야 흔들리는 신념의 불안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위와 신뢰를 상실한 주류집단 “아무도 믿을 수 없다”

황우석 지지자들은 근거가 불확실한 음모론에 입각해 정부, 언론, 서울대 조사위 등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그 동안 한국사회 주류들의 신뢰와 권위의 몰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그러나 한국사회 주류는 스스로 신뢰의 위기를 자초했다. 그들이 오랫 동안 ‘황우석 신화’를 만든 공범자였기 때문이다.

황상민 교수는 “국가가 발표하면 그것은 법이 되고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권위가 된다”며 “정부가 황우석을 구국의 영웅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한 과학자의 사기사건이 아니라 국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고, 그래서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서울대에 대해서도 “서울대 교수의 발언이라면 대통령의 발언보다 진실성 있는 것처럼 권위를 인정받았다”며 “서울대 교수가 사기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집단이 아무도 없다는 허탈감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송경제 강사는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이라며 “사회적 신뢰구조가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황 교수 사건은 정부, 학자, 언론, 정치영역 등에 대한 신뢰 구조의 완전한 붕괴를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권위와 신뢰 상실은 “믿을 것은 돈 밖에” 현상 부를 수도
“황 교수 뿐 아니라 주류 사회 통렬한 자기 반성부터”

그렇다면 권위의 상실과 신뢰의 상실은 어떤 문제를 가져오나?

황 교수는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불안감이 높아지고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을 찾게 된다”며 “결국 믿을 것은 돈밖에 없다는 생각이나 한탕주의에 빠져 사회가 보다 천박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환석 교수는 “신뢰의 위기는 바람직한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심각한 사회갈등의 요인이 된다”며 “개인들은 사실과 다른 신념에 경도돼 더 많은 좌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이번 사건이 황 교수를 비롯한 몇 사람 처벌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정부나 서울대, 언론 등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나간다면 신뢰나 권위의 회복은 있을 수 없다”며 “정부나 서울대 과학계가 황우석 신화를 부추긴 것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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