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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의료인문학 교육 넓혀 ‘환자 고통’ 품어주는 의사 키워야죠”

등록 2020-07-07 19:22수정 2020-07-08 09:30

【짬】 계명대 동산병원 김동은 교수

김동은 교수가 최근 낸 에세이집에 사인을 하고 있다. 김 교수에게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이타적 삶을 살게 된 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생각은 의대 진학 전부터 했죠. 어릴 때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오지랖이 넓게 많이 도와주려 했다는 말씀을 부모님께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는 의대를 다닐 때도 6년 동안 매주 보육원을 찾아 봉사 활동을 했다. 지금은 이 봉사 동아리의 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김동은 교수 제공
김동은 교수가 최근 낸 에세이집에 사인을 하고 있다. 김 교수에게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이타적 삶을 살게 된 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생각은 의대 진학 전부터 했죠. 어릴 때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오지랖이 넓게 많이 도와주려 했다는 말씀을 부모님께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는 의대를 다닐 때도 6년 동안 매주 보육원을 찾아 봉사 활동을 했다. 지금은 이 봉사 동아리의 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김동은 교수 제공

김동은(48)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최근 낸 에세이집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한티재)에는 어려운 이웃의 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한 의사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현재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대경 인의협) 기획국장인 저자는 2007년부터 경산 이주노동자 센터에서 무료진료를 해왔다. 2018년부터는 여름철마다 예비 의사·간호사들과 함께 폭염에 시달리는 대구 쪽방촌 주민들을 찾아 건강을 돌보고 있다.

코로나19를 맞아서도 ‘착한 삶’은 멈추지 않았다. 3월부터 한 달 가량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대경 인의협이 운영한 달서구 선발진료소에서 자원봉사했고 이 기간에 토·일요일 등 주 사흘은 코로나19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대구동산병원 격리병동에서 하루 8시간씩 간호사를 도왔다. 지난 3일 전화로 대구에 있는 김 교수를 만났다.

“제가 배치된 대구동산병원 52병동은 코로나19 환자가 60명이 넘었는데 간호사는 4명뿐이었어요. 간호사 한 명이 맡은 환자가 평소 두 배였죠. 방호복이나 고글도 써야 해 훨씬 힘들었어요. 저라도 갈 수밖에 없었죠. 일단 가면 도울 게 있으리라고 생각해 병원장과 수간호사에게 자원봉사 의사를 밝혔어요.” 격리병동에서 그의 주 업무는 배식이었고 검체 채취를 돕거나 병동 질서를 유지하는 일도 했다. “피곤함에 지친 간호사들이 영안실에 딸린 방에서 쪽잠을 자더군요. 5년 전 메르스의 교훈을 살리지 못해 이번에도 간호사들이 희생을 강요당했어요.” 그 뒤로 석 달이 지났다. 지금은? “간호사 휴게실은 영안실 옆 방에서 도미토리식 이층침대가 있는 곳으로 옮겼어요. 하지만 한 달 이상 격리병동에서 고생한 대구지역 간호사들은 따로 위험수당도 받지 못했어요. 자부심을 가지고 힘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배려가 부족해요. 병원에서 청소하거나 폐기물을 처리하는 분들의 쉬는 공간은 어이없을 정도죠.”

김동은 교수가 지난 3월 대구동산병원 격리병동에서 자원봉사할 때 간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김동은 교수 제공
김동은 교수가 지난 3월 대구동산병원 격리병동에서 자원봉사할 때 간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김동은 교수 제공
그는 책에서 지자체의 미숙한 대처가 코로나19 피해를 키웠다고 썼다. “1월 20일에 국내 첫 환자가 나오고 2월 18일에 대구에서 첫 환자가 발생했어요. 한 달 가량 준비할 시간이 있었는데 이 기간에 대구는 병상 확보도 하지 않았어요. 대구의 유일한 공공병원인 대구의료원(442병상)이라도 입원 환자를 옮겨 병상을 미리 확보했어야 했죠. 이러다 보니 2만5천개 병상이 있다는 대구에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입원할 병실이 없었어요. 경기도만 해도 관내 6개 공공의료원 병상을 순차적으로 비우는 계획을 세웠어요. 대구는 환자가 늘어날 때 증상에 따라 분류하는 체계도 없었어요. 3월 중순 기준으로 이 지역 코로나19 사망자의 23%가 비입원 환자였어요. 제대로 대처했다면 안타까운 죽음이 줄어들었겠죠.”

지금은 나아졌냐고 하자 “매우 미흡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는 지금 ‘대구가 잘 막았다, 전 세계가 지금 대구를 보고 있다’고 자랑해요. 앞으로 하겠다는 것도 진단 키트 준비나 민간협력을 잘하겠다는 정도입니다. 반성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아요.”

그는 감염병 대처에 공공병상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구 인구가 243만인데 공공병상은 442개에 불과합니다. 부산도 최근 제2 공공병원을 짓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어요. 대구도 설계부터 음압병상을 많이 넣은 공공 감염병 전문병원을 지어야 합니다. 5년 주기로 인수공통감염병이 나타나잖아요. 병원 짓는데 3~4년 걸리니 지금부터 준비해야죠. 평상시에는 좋은 공공병원으로 쓰고요. 한국은 공공병상이 대학병원을 포함해도 10% 정도이죠. 의료영리화가 심한 미국도 공공병상이 20%가 넘어요. 정부가 민간병원에 감염병 환자를 위해 병상을 비워달라고 할 때 신속하게 응할까요.”

이주노동자·쪽방주민 무료진료 13년
3월 코로나 격리병동서 배식 봉사도
최근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 출간
대구경북 인도주의의사협 기획국장

“공공병상 확충으로 감염병 대처를
의사들도 사회 아픔에 관심 가져야”

13년 동안 이주노동자 무료진료를 해온 그에겐 치료받을 길이 없는 외국인노동자를 도울 길이 없겠느냐는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5년 전에 그가 앞장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게 해준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츤분튼도 그런 경우다. “포항의 한 종합병원 의사가 건강보험이 없어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추방당할 위기라며 저한테 도움을 청했죠. 서둘러 캄보디아 가족에게 연락해 츤분튼의 형이 한국에 와서 신장이식 수술을 했어요. 수술비 4천만원은 시민 성금과 지역 교회 지원금에 더해, 대구의료원이 수술비와 입원비 등 1천만원 이상을 지원해 해결했어요. 그때 공공병원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어요. 츤분튼은 지금 포항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며 잘살고 있어요.”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 표지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 표지
대구의료원이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위한 긴급 진료지원 예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등 의료 소외 계층을 도우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 만든 예산이죠. 복지부와 대구시 돈이 함께 들어가요. 그런데 예산이 얼마 안 돼 가을만 되면 떨어져요. 그래서 ‘이주노동자가 아프려면 가을 되기 전에 아파야 한다’는 말도 있어요.” 가을이 지나 공공병원 도움도 어려우면 그가 수술 지원이 가능한 인의협 소속 개원의를 찾아 연결해주기도 한단다. “어떤 공공병원은 예산이 부족해도 지원해줍니다. 그러다 10~20억 적자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착한 적자죠. 대구시는 2010년에 의료취약계층이 많이 이용하던 적십자병원이 적자를 이유로 문을 닫았을 때 수수방관했어요.”

그의 핸드폰엔 지난 코로나19 자원봉사 때 전국에서 의료진에게 보내온 감사 동영상이 10개쯤 저장되어 있다. “선생님 힘내라며 아이들이 보내온 영상이죠. 자주 들여다봅니다. 이걸 보면 먼저 죄송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세상이 많이 아팠는데 의사들은 세상의 그 아픔에 한발 떨어져 있었어요. 지금이라도 세상을 아프게 하는 문제를 고치려고 더 노력해야죠.”

그는 또래보다 다소 늦은 만 23살에 의대생이 됐다. 다른 대학을 2년 다니고 군 제대 뒤 다시 의대에 갔다. “원래부터 제 꿈은 의사였어요. 그 꿈이 바뀐 적은 없어요. 의사가 되면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고 큰 돈이 없어도 직접 몸으로 뛰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공대를 다니며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사회의 여러 모순을 보면서 의사가 되어 몸으로 뛰면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쪽방 주민이나 이주민들의 목소리는 작아요. 하지만 의사가 이야기하면 그래도 들어는 줍니다. 의사가 이야기하면 사회가 바뀔 가능성이 있어요.”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의사의 덕목 중 하나는 ‘인간미’이다. 의료사고가 났을 때 의사가 먼저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는 공감과 유감의 표현을 환자나 가족에게 충분히 하고 치료과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책에 쓴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의사의 진실 말하기는 의사와 병원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높여 소송 건수도 줄일 수 있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할 무렵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의대생 커리큘럼에 의료인문학과 인문사회의학 과목을 더 많이 넣어야 합니다. 지금은 너무 적어요. 의학 지식만 있는 천박한 의료기술자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의 눈 높이에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진정한 프로, 굿닥터를 길러내기 위해선 의료인문학과 인문사회의학 교육이 꼭 필요해요. 의대생들에게 또 의사의 참된 소명을 보여주는 의사를 많이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무엇보다 선배 의사가 직접 보여주는 게 수업을 통한 교육보다 좋아요. 제가 쪽방이나 이주노동자 진료소에 자원하는 의대생들과 함께 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죠. 의대생들은 죽음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 합니다. 임종을 앞둔 환자 앞에서 의사들이 어찌할 줄 몰라 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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