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연일 지역감염 확진자가 나오는 8일 오전 광주 북구 선별진료소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얼음조끼(냉 조끼)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3058명. 의대 입학정원은 14년째 꽁꽁 묶여 있었다. 의약분업에 반대하며 파업했던 의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006년 정원을 감축한 것이 마지막 조정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성균관대 등 9곳이 신설된 뒤로 20년 넘게 의대 신설도 없었다. ‘의사인력 확충’은 그만큼 어려운 문제였다.
최근 정부·여당은 ‘의사인력 확충’에 부쩍 속도를 내고 있다. 의사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비수도권 지역에는 의료인력 부족이 심각하고, 중증외상이나 소아외과 등 특수 전문과목을 의사들이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어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는 공공병원 인력 과부하 문제까지 떠올랐다. 명분이 쌓인데다 국회에서 176석 ‘거대 여당’이 되면서 관련 논의에는 탄력이 붙는 분위기다.
정부는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총 4천명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역의사 특별전형’ 등의 방식으로 의대 정원을 연평균 400명씩 늘리겠다는 것이다. 8일 <한겨레>가 입수한 정부의 ‘의료인력 확대 방안’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중증·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무 복무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지역의사’ 3천명 △역학조사관과 중증외상, 소아외과 등 특수한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의사 500명 △기초과학 및 제약·바이오 연구인력 500명 등 총 4천명의 의사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지방에서 근무할 의사는 ‘지역의사 특별전형’ 방식으로 각 의대에서 뽑게 된다. 장학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해당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고, 그러지 않으면 의사면허를 취소·중지할 계획이다. 정원 확대와 별개로 ‘의대 신설’ 방안도 추진된다. 국가가 공공의료 분야에서 일할 의사를 직접 양성하는 ‘공공의대’는 폐교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을 활용해 전북권에 설립할 예정이다. 광역자치단체 17곳 가운데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전남 지역의 의대 신설 문제는 ‘전남도 내부에서 지역을 결정한 뒤에 별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의료인력 확대 방안’은 지난 6월2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논의됐고, 보건복지부가 의대 정원 배분을 담당하는 교육부와 협의를 마치는 대로 당정 협의를 거쳐 이달 중에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최종 확정안은 아니지만 지역 의사 수, 인구 대비 환자 수 등을 따져서 나온 숫자이니만큼 ‘연평균 400명’이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며 “정원 50명 미만인 의대에 정원을 우선 배정하는 등의 다양한 세부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의사인력 확충’은 의료계 안에서도 찬반이 팽팽하게 갈린다. 가장 큰 쟁점은 실제로 의사가 부족한지 여부다. 우리나라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2.3명(2017년 기준·한의사 포함)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평균 3.4명) 최하위 수준이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과)는 국민 한 사람당 외래진료 횟수가 16.6회로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고 노인 환자가 늘어나고 있어,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해마다 1500명씩 충원해도 2067년까지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최근 내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역간 불균형이다.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에는 응급, 외상, 심뇌혈관 등 필수 중증 의료 분야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과)는 “2019년 기준으로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를 보면 수도권은 2.14명이지만 충북은 1.5명밖에 되지 않는다”며 “시·도별로 부족한 인력을 수도권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지역 의사’를 10년간 9천명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의사’는 특별전형으로 뽑혀 장학금을 받는 대신에, 일정 기간 지역 공공병원, 역학조사관 등으로 의무 복무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들은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성종호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는 “의료취약지에 의사가 부족한 이유는 지역 불균형과 연봉, 복지 등 여러 요인 때문에 의사들이 지방병원이나 공공병원에 가지 않기 때문이지, 의사 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라며 “성형외과 쏠림 현상 등을 바꾸려면 건강보험 수가를 올리는 게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의료계와 협의 없이 진행하고 있다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의사인력 확충’의 취지에 찬성하는 쪽에서도 정부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400명보다 훨씬 더 늘리고,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의대도 추가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공공의대 설립에는 국회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의대 정원 확대’에 더 힘을 싣고 있다. 서울시 등이 추진 의사를 밝힌 ‘공공의대 설립’은 기존 서남대 의대 정원을 활용한 전북권 한곳으로만 못박았다. 김창보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는 “공공의대 추가 설립 없이 단순히 사립대를 포함한 기존 의대에 정원을 늘려주는 방식은 정부가 ‘손쉬운 방법’으로 너무 성급하게 밀어붙이려는 태도”라며 “공공성 있는 지역 의사를 양성하려면 지자체와 연합대학을 설립하는 방안 등 다양한 경로를 열어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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