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대정원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정이 앞으로 10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총 4천명 늘리는 방안을 최종 확정함에 따라, 3058명으로 묶여 있던 의대 정원이 16년 만에 늘어날 전망이다. 의사가 부족한 취약 지역에 근무할 지역의사 등을 길러낸다는 취지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부 방안이 촘촘히 짜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각 지역과 대학마다 물밑에서 치열한 정원 확보 경쟁을 벌이는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하루 집단휴진’까지 경고하고 나서는 등 후폭풍도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당정은 23일 국회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을 확정하고,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세부방안을 논의했다. 해마다 400명씩 늘어나는 의대 정원 확대는 2022학년도 대학 입학생부터 적용된다. 의과대학이 없는 전남 지역에는 의대가 새로 설립되고, 전북에 2024년 공공의대가 개교할 전망이다. 이날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강하게 반발하며 ‘하루 집단휴진’을 경고하고 나선 반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들로 구성된 대한병원협회는 “증원 규모가 충분치는 않지만 의료 현장의 고충을 헤아려줘서 다행”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 의대 정원 왜 늘리나 정부와 여당이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결정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다. 우리나라 인구 1천명당 활동하는 의사 수는 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3.5명의 68.6%(2018년 기준)밖에 안 된다. 특히 대도시나 성형외과·피부과 등 특정 전공 분야로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를 살펴보면, 서울(3.1명), 대전(2.5명), 광주(2.5명) 등의 대도시는 비교적 의사가 많은 반면에 경북(1.4명), 울산(1.5명), 충남(1.5명) 등은 의사가 부족한 형편이다. 특히 심혈관·뇌질환 등을 다루는 중증의료의 경우, 의료 취약지일수록 ‘의료 공백’이 심각하다.
이에 정부는 ‘지역의사’를 앞으로 10년간 3천명(해마다 300명) 양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대학 입학 때부터 ‘지역의사’ 선발전형을 도입해서 해당 지역 의대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수련한 뒤에 10년간 지역 병원에서 의무 복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내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과목으로 한정해 전문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정부는 ‘지역의사’ 장학금 지급 등에 해마다 120억원을 투자한다. 의무 복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장학금을 환수하고, 의사 면허도 취소한다. 의대 졸업 이후에 대학이 위치한 시·도에서 근무하는 비율이 서울(54.5%)만 높고, 울산(7%), 경북(10.1%), 강원(13.8%) 등은 열명 중 한명꼴에 그치는 현실을 고려한 조처다.
확대되는 의대 정원에는 ‘지역의사’ 3천명 외에 특수분야 의사 500명(해마다 50명)도 포함돼 있다. 역학조사관이나 중증외상, 소아외과 등 특수분야에서 일할 의사를 대학 입학 때부터 정해놓고 뽑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따로 뽑는 이유는, 의사들이 전공을 기피하는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전문의 약 10만명 가운데 코로나19 대응의 중심에 서 있는 감염내과 전문의는 277명, 소아외과 전문의는 48명에 불과하다(2019년 기준). 백신 개발 등을 담당할 의과학 인력도 500명(해마다 50명)을 따로 선발한다. 의과학 분야로 뽑히는 인력은 기초과학, 제약·바이오 등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
■ 지역·대학별 정원 배분 어떻게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계는 물론이고 교육계에 미칠 파장도 크다. 어떤 지역의 어느 대학에 추가 증원이 배정되느냐를 둘러싸고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일단 정부는 △의사 수가 부족한 지역 △기존 입학 정원이 50명 미만인 소규모 대학을 우선 고려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적고 40~49명대 입학 정원을 갖고 있던 경북(동국대 경주), 울산(울산대), 충남(단국대 천안, 건양대), 충북(충북대, 건국대 충주), 경기(아주대, 차의과대, 성균관대) 등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교육부는 각 대학으로부터 정원 배정 신청을 받은 뒤에, 의학계와 교육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정원 배정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내년 2월께 대학별로 정원을 배정할 계획이다. 김헌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광역지자체인 시·도 17곳을 중심으로 지역을 배분할 예정이며, 심사를 거쳐서 ‘지역의사제’의 경우 지자체의 협조가 얼마나 가능한지 등을 따져서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중증외상 등 특수분야, 의과학 분야의 정원 100명은 지역이나 대학 규모와 상관없이 심사 뒤에 결정한다. 2022학년도 최종 입시요강은 내년 5월 발표된다.
해마다 400명씩 늘어나는 ‘의대 정원’과는 별개로, 2024년 3월 개교를 목표로 공공의대도 설립한다. 공공의대는 역학조사관, 감염내과 전문의 등 공공의료 분야에서 일할 의사를 길러내는 일종의 사관학교다. 폐교된 서남대 의대의 기존 정원(49명)을 활용해 국립의료대학원을 설립할 예정이며, 지역은 전북 남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취약지이거나 공공의료인력이 더 많이 필요한 지역 출신 입학생을 우대해 선발한다. 10년 동안 공공병원이나 보건복지부, 시·도에서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입학금, 수업료, 기숙사비 등을 모두 국고에서 지원해줄 예정이다.
이날 당정은 전남 지역에 의대 설립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의대 정원 확대’와는 별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전남 지역 신설 의대까지 더해지면 의대 정원 확대는 연간 400명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
■ 입법 등 후속 과제 당정이 이날 추진 방안을 최종 확정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공공의대 설립을 위해서는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김성주 의원 대표발의)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여당은 다음달 안에 관련 법 제정을 서두를 계획이다. ‘지역의사’ 제도 역시 선발전형 도입, 10년간 의무 복무 등을 규정한 관련 법을 올해 말까지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의사들이 모인 이익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도 난관이 될 수 있다. 또 ‘지역의사’나 ‘공공의대 졸업생’들이 의무 복무 기간 10년을 채운 뒤에도 지역이나 공공의료 분야에서 계속 일하게 만드는 것도 장기적인 과제다. 정부는 의료취약지인 지역 의료수가를 높여주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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