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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돌봄 청년을 응원합니다

등록 2021-02-27 09:46수정 2021-02-27 10:30

[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⑱ 돌봄은 존재의 증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희연(가명)님은 누워 계신 친할머니를 돌본다. 시골에서 홀로 계셨던 할머니는 4년 전 갑자기 쓰러지셨고 서울 ‘아들 집’으로 오시게 됐다. 처음 만났을 때 희연님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어머니를 도와 할머니를 돌본다’던 그는 요양보호사 자격도 갖춘 상태였다. 청년 요양보호사였던 희연님은 할머니의 혈당 수치를 태블릿피시에 기록해놓았다. 의료인으로서 한눈에 상태를 알 수 있었다. 희연님의 돌봄으로 할머니의 당뇨 수치도 적정하게 관리됐다. 할머니를 자주 찾아뵙진 않았지만 희연님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모처럼 찾았을 때 희연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가 쓰러졌고 가족이 돌봐야 하니 어머니를 도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겸손했다. 그가 처음 돌봄을 시작했을 때가 20대 후반이었다. 뭔가 준비하던 인생계획이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있진 않았을까. 기회가 된다면 그런 소회도 듣고 싶다.

희연님과 같이 돌봄 하는 청년들을 가끔 만난다. 나와 비슷한 또래라 더 관심이 간다. 30대 초반인 지후(가명)님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누워 계신 어머니를 전적으로 돌본다. 어머니 침대 옆 책상엔 취업 준비를 위한 책이 펼쳐져 있다. 20대 초반으로 할머니를 돌보는 수현(가명)님은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고 있다. 중년의 요양보호사분들에게서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인지 저하 증상의 아버지 곁을 지킨 자전적 기록인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는 돌봄 하는 청년들을 ‘영 케어러’(Young carer)라고 호명한다. 효녀·효자라기보다 기꺼이 돌봄노동을 감당하는 청년 돌봄인들이다. 돌봄노동을 하는 데 세대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청년 돌봄노동자는 낯설다. 청년이라 하면 ‘꿈이 있어야 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하며 때로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요즘이다. 그래서 아픈 이를 돌보는 일은 시대가 요구하는 청년의 이미지와 다소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영 케어러는 보이지 않을 뿐 분명 존재하고 있다. 대체로 가족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하지만, 요양보호사 자격을 얻어 전문적으로 하기도 하고 나아가 장애인활동지원에 참여하기도 한다.

지금껏 돌보는 일은 하찮은 일로 치부되기도 하고, 다른 경제활동을 위한 희생 정도로 취급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절감하듯 인간이라는 존재는 돌보는 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태어나 양육자의 전적인 돌봄으로 생존을 유지하고 잠시 홀로 서지만, 다시 자신의 자녀를 양육하고 나이 든 부모를 돌보게 된다. 그리고 그 또한 나이가 든다.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고, 돌봄 속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혈연이나 결혼을 통한 인연이 아니더라도 바로 곁에서 돌보는 이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러고 보면 돌봄은 존재의 증거 그 자체다. 되짚어보면 한 인간의 역사는 돌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영끌’ 하는 청년이냐, 돌보는 청년이냐. 이제는 영끌 하는 청년이나 도전하는 청년만 아니라 곳곳에 분명히 존재하는 돌봄 청년 또한 주목해야 한다. 그 길을 선택한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들의 경험은 미래를 준비하는 사회의 자산이다. 청년뿐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든 돌봄노동자를 지켜야 한다. 미래는 돌봄 중심 사회가 될 것이니까. 희연님이 맡은 역할을 잘해내길 바란다. 나도 종종 찾아가는 의료인으로 돕고 싶다. 말로 직접 하기 쑥스러워 진심을 담아 응원 문자를 보냈다. “희연님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찾아가는 의사 홍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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