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조정실이 오는 10월까지 ‘원격의료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는 사전 협의나 사후 통보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원격의료는 동네병원 등 지역의료 붕괴, 과잉진료·처방 확대, 안전성과 효과성 평가 부족, 의료사고 때 법적 책임 소재 등 쟁점이 많은데, 정부가 기업들의 규제 완화 요구를 등에 업고 졸속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무조정실이 원격의료 추진 검토 방침을 밝힌 것은 지난 10일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중소·중견기업 경제인 간담회에서 “국외와 비교해 과도한 국내 규제가 있으면 과감히 없애는 ‘규제챌린지’를 이달부터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제시된 규제 완화 검토 대상은 모두 15개로, 경제단체가 추려낸 것들이다. 특히 1번이 비대면 진료와 의약품 원격조제 규제 완화이고, 2번이 약 배달 서비스의 제한적 허용으로 보건·의료 관련 규제들이 앞줄에 섰다. 현행 의료법(34조·의료진 간 원격협진만 허용)과 약사법(50조·약국 또는 점포 외 장소에서 의약품 판매 금지)이 원칙적으로 금지한 원격의료에 해당한다.
이전에도 정부가 원격의료 추진을 시사한 적은 여러 번이지만, 이번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논의 방식과 속도다. 국무조정실은 “15개 과제에 대한 규제 완화 여부를 10월까지 확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논의 방식은 1단계 각 부처와 민간 전문가, 건의자(원격의료 관련 기업) 간 논의, 2단계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 전문가와 건의자 간 논의, 3단계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 건의자 대표격인 경제단체 회장 간 논의 등을 제시했다. 또 즉시 개선(법 개정 등), 임시허가, 한시적 규제 완화(규제 샌드박스) 등 다양한 방안이 마련될 수 있으며, 법 개정이 없는 한시적 완화가 일차적으로 결정된다 해도 연내에 법령 개정 등 신속한 후속조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방침이 발표된 당일,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2월 이후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돼 있는 비대면 전화 진료·처방을 차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의료 취약지역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원격의료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의료 소비자단체, 공급자 단체와 6월부터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무조정실과는 결이 다른 논의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원격의료는 쟁점이 워낙 많은 데다, 산업적 접근보다 보건의료 정책적 접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런 만큼 국무조정실이 밝힌 것과는 별개의 중장기 협의 구상을 밝혔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 안에서 같은 날 다른 목소리가 나온 것은 국무조정실이 ‘기업을 위한 규제 완화’를 앞세우며 관계부처 간 사전 협의조차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단체는 비판에 나섰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정부가 코로나19를 겪으며 필요성이 확인된 공공의료 강화에는 소극적이고 원격의료 등 의료 영리화로 이어질 우려가 큰 정책들을 임기 말에 몰아치듯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시민사회 등과도 충분한 논의가 가능한 대화 구조를 갖추고 협의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나 대한약사회 등도 “국민 건강권을 담보로 일부 기업에 특혜를 주는 위험천만한 발상을 끝까지 저지하겠다”는 성명을 내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경제단체들의 건의를 받아 규제 개선 논의를 하는 것이 우리 업무이고, 필요한 규제라고 정부가 소명하면 존치될 것”이라며 “(관련 단체들과 중장기 협의한다는 복지부 방침보다는) 일단 제시된 3단계 논의에 맞춰가는 것이 좋다고 보고 있다. 복지부 등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6월 중에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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