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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단독] 공공부문 ‘민간위탁’ 정규직화, 9.9%에서 멈췄다

등록 2021-06-28 04:59수정 2021-07-28 09:35

류호정 의원, 노동부로부터 받은 ‘정규직 전환 실적’
96% 정규직 전환된 1~2단계와 달리 민간위탁만 소외
정부도 공기관도 사실상 방치해 같은 업무에 다른 운명
16일 낮 서울 서대문네거리 인근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조합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몸자보를 입고 고객센터 직영화를 촉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6일 낮 서울 서대문네거리 인근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조합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몸자보를 입고 고객센터 직영화를 촉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51살 이정용(가명)은 충북 제천에서 12년째 ‘생활쓰레기’를 수집·운반하는 일을 한다. 그가 일을 비우면 동네 곳곳에 쓰레기가 쌓이는 만큼, 이정용의 일은 공공이 맡아야 할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정용은 현재 제천시청이 아니라 시청과 업무 위탁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소속이다. ‘재활용 쓰레기’ 업무를 맡는 이들이 제천시청 소속 공무직인 것과는 다른 처지다. 공무직은 공공부문에서 직접고용하는 무기계약직으로 정년이 보장되는 등 대부분의 여건이 더 낫다. 이정용 역시 시청에 직접고용되길 원한다. “시청하고 위탁계약을 한 업체가 중간에서 ‘노무관리’를 한다지만, 출퇴근 관리조차 무인기로 처리합니다. 사무실에 가서 각자 카드 찍으면 그만이에요. 사장 얼굴 못 본 지도 1년이 넘었습니다. 임금은 5년째 동결이고요. 업체가 중간에서 이윤 남기는 거 아니면, 시청이 사람 두세명은 더 뽑았을 거예요.”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면서 20만명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집권 5년 차에도 이정용 같은 이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다. ‘민간위탁기관’ 소속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 논의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다. 최근 두차례 파업을 했던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콜센터) 노동자들도 이정용과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 있다.

2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류호정 의원(정의당)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1~3단계로 분류해 추진하면서 3단계 대상자였던 민간위탁기관 소속 노동자들을 사실상 방치한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자료는 노동부가 지난 3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 제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적이다.

자료를 보면, 실제 1~2단계 전환 대상인 20만5918명 가운데 96%에 해당하는 19만8558명이 정규직이 됐다. 하지만 정부는 공공기관이 민간위탁기관에 업무를 위임 계약한 경우인 3단계에 속하는 비정규직과 관련해서는 대상 인원조차도 파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정규직화 진행 상황을 기관 차원에서 살피면, 해당 공공기관 94곳 가운데 19곳(20.2%)에서만 정규직화를 결정했다. 또 사무를 기준으로 보면, 공공기관 94곳이 민간위탁기관에 맡긴 212개 사무 가운데 21개(9.9%) 사무에 대해서만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 정규직화한 인원은 1355명에 그친다.

앞서 정부는 비정규직이 소속된 기관의 성격과 이들이 맡은 사무의 특성을 따져서 1~3단계 대상자를 구분하되, 3단계로 분류될 민간위탁기관 소속 노동자들에 대해선 ‘전환 여부를 개별 기관이 자율적으로 검토해 정하라’고 했다. 이에 각급 기관마다 3단계 대상자들이 ‘단계 분류 자체가 부당하다’거나 ‘분류와 무관하게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데도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파업 등이 빈발하고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규직 전환 왜 갈등의 늪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은 문재인 정부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20여년 동안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목표로 많은 공공서비스를 민간으로 넘기면서, 불안정 고용이 급속하게 늘었다. 이에 2011~2016년 공공부문이 직접고용한 기간제 노동자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문재인 정부는 이에 더해 파견·용역 계약 등으로 간접고용한 이들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를 위해 2017년 ‘9개월 이상 상시 업무’와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업무’를 맡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지침도 제시됐다. 1단계에선 중앙·지방 정부와 주요 공공기관에 소속된 비정규직이 대상이어서, 해당 기관 846곳 모두가 정규직 전환에 나섰다. 대상 인원 19만9538명 가운데 19만2698명(96.6%)이 정규직이 됐다. 2단계에선 지방정부의 출연기관 등에 소속된 기간제·파견·용역 노동자가 대상이었는데, 해당 기관 481곳 가운데 442곳(91.9%)이 정규직 전환을 했다. 대상 인원 6380명 가운데 5860명(91.8%)이 정규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위탁기관 소속으로 분류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은 깊어갔다. 이들이 맡은 사무에는 지방자치단체가 파견·용역업체에 맡긴 업무(2단계 정규직 전환 대상)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회색지대가 꽤 있다. 원래 용역 계약이란 공급자가 ‘시청 건물 청소’처럼 일정한 ‘용역 노무’를 제공하기로 하는 것이라면, 민간위탁계약이란 ‘직장어린이집’이나 ‘구내 카페’처럼 공급자가 특정한 ‘시설’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쓰레기 수거·운반이나 콜센터 업무처럼 용역인지 민간위탁인지 경계가 모호한 업무들도 있다.

실제 같은 콜센터 일이라도 건보공단은 상담업무의 독립성을 강조해 민간위탁 사무로 분류했고,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은 용역 업무로 분류했다. 정부는 공기관이 외주화 사무를 분류할 때 용역과 민간위탁 가운데 무엇으로 규정할지 스스로 결정하게 했고, 그 판단의 적절성은 따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갈등이 커지자 정부는 2019년 뒤늦게 ‘오분류 심의’ 신청을 받아 122건을 심의했으나, 이때도 ‘오분류’ 판정은 4건에 불과했다. 다만 콜센터, 전산 유지·보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등 논란이 큰 업무를 ‘심층 논의가 필요한 사무’로 보고,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만들라는 단서를 붙여 또 공공기관 자율에 맡겼다. 하지만 류호정 의원실이 지난 3월 노동부로부터 공공부문 ‘민간위탁 사무’ 타당성 검토 자료를 받아 본 결과, 126개 기관 가운데 23개 기관은 정부가 만들라고 했던 협의기구를 아예 구성하지도 않았고 이해당사자 의견 자체를 수렴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처음부터 정부는 1~2단계를 제대로 추진하는 것만도 버겁다고 느꼈던 것 같다”며 “민간위탁 사무는 워낙 계약이 다양해 부담이 됐겠지만, 그래도 심층 논의 사무 중 콜센터 정도는 정부가 정규직화를 좀 더 밀어붙였어야 하지 않나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이었던 공공기관들

공공기관들은 여러 이유로 민간위탁 사무의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이었다. 우선 업무위탁 계약을 했던 민간위탁기관의 반발이 우려되고 계약을 바꾸는 게 번거롭단 이유가 컸다. 한 지자체의 담당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계약을 직접고용으로 바꾸면 하루아침에 업무가 사라져 도산할 하청업체 사장들에겐 어떻게 보상할까도 문제가 된다”며 “정부도 민간위탁은 강하게 신분 전환을 요구하지 않아서 직접고용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규직 인원수가 갑자기 느는 데 따른 부담도 있었다. 특히 공공기관들은 정원 승인에 깐깐한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본다. 안 그래도 매년 적자가 확대돼 ‘공공부문 비대화’ 논란을 안고 있는 일부 공공기관들은 기재부가 당장은 정규직 전환에 포용적이라지만, 정권이 바뀐 뒤에는 이 기조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한 공공부문의 정규직 노조 관계자는 “인원수가 갑자기 수백명 늘어나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20여년 전 정부가 민간위탁을 택한 주된 이유는 ‘비용 절감’이었지만, 실제 비용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류호정 의원실이 지난 3월 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126개 공공부문의 ‘심층 논의 필요 사무’의 타당성 검토 자료를 보면, ‘비용 절감’을 이유로 민간위탁을 유지하겠다는 기관은 4개에 그쳤다. 콜센터 업무의 비용 부담을 비교한 용인시 사례를 보면, 민간위탁은 연간 9억2700만원이 들고, 직접고용 땐 8억9900만원이 드는 것으로 추산해 직접고용을 결정하기도 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경영학)는 “민간위탁 비용도 물가에 따라 오르는데다 인건비 이외에 업체 이윤도 있어서 비용을 크게 절감하기 어렵다”며 “공기관들은 비용 부담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쓰레기 수거처럼 힘든 대민 업무를 되돌려받고 싶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공정’ 논란 이면엔 파편화한 노동시장

결국 정부와 공공기관 모두가 민간위탁기관 노동자 문제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와중에, 공공기관 정규직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주장을 ‘특혜’로 바라보게 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와 공공기관을 상대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 등에 나서는 것을 ‘명분 없는 외부자의 생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최근 공공부문 정규직을 중심으로 제기된 ‘공정’ 시비는 이런 맥락 속에 있다. 지난 11일엔 건보공단 정규직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가 고객센터 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내부 온라인 게시판에 ‘다른 회사 직원이 우리 회사 직원 시켜달라고 우깁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같은 날 네이트판에 올라온 같은 제목의 글에는 추천이 618건, 반대가 17건 달렸고, ‘월세 내고 사는데 오래 살았으니 내 집으로 해달라, 이게 무슨 공짜 취업인지’, ‘남의 회사 로비에서 그만 나가주시고 처우 개선은 본인들 회사 가서 요구하세요’ 등과 같은 댓글이 베스트 댓글이 되어 수백개의 추천을 받았다.

사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회사가 필요 업무에 투입할 노동자의 고용 형태를 어떻게 정할지 고민할 문제로, 다른 정규직 노동자와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 사용자가 간접고용을 활용해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노동자 보호 의무를 회피할 때,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에 맞서 자신을 직접고용하라고 사용자에게 요구하는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각종 복리후생과 정년을 보장하는 정규직 일자리가 너무 희소한 탓에, 공공부문에 직접고용되는 걸 ‘특혜’로 보는 인식이 강해졌다. 사회 전체적으로 불안정 고용의 규모를 줄이자는 맥락은 잊히고, ‘정규직 특혜’를 시험 없이 주지 말라는 주장만 남은 셈이다.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서 노동력만 떼어내어 활용하고 각종 의무를 회피하는 관행을 바꾸자는 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며 “희소한 양질의 일자리를 어렵게 얻어낸 정규직 직원들이 공공부문 직고용 자체를 특혜로 보는 것은 노동시장 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가 심해서 발생하는 문제로 차별 해소의 필요성이 그만큼 크다”고 짚었다.

신다은 박준용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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