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태가 다리가 길어서 좋다’, ‘슬리퍼 말고 구두를 신어’ 등 대표의 성희롱이 반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개인적인 업무 지시를 자제해달라고 하니, 대표는 ‘화장실도 개인 일이니까 퇴근 하고 가’, ‘너 말투가 띠꺼우니 감봉해’ 등의 발언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청년 내일채움공제를 생각해서 버텨왔기에 이제 퇴사 후 신고를 하려 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2030 사회초년생 목돈 마련을 지원하는 ‘청년 내일채움공제’ 제도가 오히려 청년들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언·성희롱·노동조건 악화 등에도 만기를 채워 공제금을 받을 때까지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빚어져서다.
26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내일채움공제 갑질 보고서’를 보면, 중소·중견기업에 재직하는 청년들의 장기재직과 자산형성을 돕는 내일채움공제 제도를 악용한 기업들의 갑질 현실이 드러났다. 내일채움공제 제도는 청년채용자 및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 등으로 나뉜다. 신규 채용자를 위한 청년내일채움공제의 경우, 만 15∼34살 청년이 2년간 300만원을 적립하면, 기업과 정부가 공동적립한 900만원과 이자수익을 더해 1200만원 이상을 만기 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직장갑질119는 “청년공제제도가 직장 내 괴롭힘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직장갑질119로 접수된 내일채움공제 관련 제보 34건을 유형별로 분석해보면(중복 분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신고를 하지 못하는 ‘갑질 족쇄’가 24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퇴사 강요’가 8건, ‘근로조건 악화’ 7건, ‘허위등록’ 3건 등이었다. 실제 직장갑질119로 접수된 사례를 보면, 직장인 ㄱ씨는 “내일채움공제에 들어가는 사업자부담금 때문에 비용이 늘었다며 월급이 삭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직장 내에서 다른 동료와 말다툼을 벌인 ㄴ씨의 경우, 대표가 내일채움공제를 이유로 자신에게만 10% 감봉 징계를 내린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자칫 내일채움공제를 못받게 될까 걱정이 돼서 감봉을 받아들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직장갑질119는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의 경우 기업의 부당대우를 신고할 수 있는 창구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하는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의 경우에도 신고센터가 있지만 2014년 이후 접수된 부당행위 신고는 0건이다. 임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내일채움공제 제도는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이지만, 악덕 사용자들 때문에 직장갑질의 족쇄로 악용되고 있다. 정부가 익명신고센터를 만들고 내일채움공제를 활용하는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으로 악용사례를 근절해야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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