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포털 설문…“스트레스 많아” 주된 이유
지난해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그만 둔 전아무개(29)씨는 자신이 일했던 동대문 지점쪽으로는 아예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창구 직원으로 일하면서 큰 돈을 다루고 고객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3년 동안 교육은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아침 8시부터 12시간을 정규직 직원과 똑같이 일해도 받는 돈은 정규직의 절반도 안된다. 그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 자꾸 실수가 나오고 결국 주머니를 털어 메우는 돈이 제법 많았다”며 “차별과 이질감 때문에 그만뒀는데 막상 일자리를 구할 때는 3년의 비정규직 기간은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더라”고 털어놨다.
전씨뿐 아니다. 비정규직으로 일한 적이 있는 많은 구직자들이 비정규직 경험을 직장생활의 발판으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사람인(saramin.co.kr)은 비정규직으로 일한 적이 있는 구직자 797명에게 ‘비정규직 근무 만족도’에 물어보니, 59.1%가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것을 후회한다’고 답했다고 14일 밝혔다. 후회하는 이유로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35.7%)라는 답이 가장 많이 꼽혔다. 그러나 ‘시간만 낭비한 것 같아서’(27.8%), ‘경력에 도움이 안돼서’(20.2%)', 배운 것이 없어서(8.3%) 등 비정규직 경험이 직장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전체적으로 56.3%에 달했다.
한 은행에서 2년 동안 일한 김아무개(25)씨는 “비정규직이라도 시중은행에서 일하면 언젠가는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다른 곳에 취업할 때 경력이 될 것같아 선택했는데, 막상 비정규직은 경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더라”고 털어놨다. 그는 “다른 회사의 비정규직으로 이동할 때도 임금 상한선이 145만원 정도로 정해져있어 이전 경력은 있으나마나였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비정규직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특히 응답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동안, ‘낮은 급여’(37.5%)와 ‘정규직과의 차별대우’(35.5%)를 가장 불만족스러워했다. ‘고용의 불안정성’(19.8%)과 ‘열악한 복리후생’(5.5%)도 불만의 대상이었다. 한 대기업에서 1년째 계약직으로 일하는 민아무개(25)씨는 “상사들은 ‘정규직, 계약직 모두 같은 직원’이라고 말하면서, 회의할 때는 정규직 직원들만 모아서 회의를 한다”며 “회식이 있을 때, 개인 사정으로 못간다고 하면 ‘간이 크네’라며 대놓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황선길 잡코리아 컨설팅본부장은 “기업들이 경비를 아낀다며 파견이나 계약직 등을 크게 늘리는데다 편법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피해사례가 늘고 있다”며 “또 기업들이 대체로 비정규직을 핵심업무에서 벗어난 직종인 영업지원이나 고객지원, 콜센터 등의 분야로 채용하다보니 직종 자체가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직을 준비할 때는 이력서에 비정규직 경력을 나열하는 것보다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지 상세히 쓰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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