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해 11월 작업 도중 숨진 한국전력 하청업체 노동자 김다운씨의 유족이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형사고소·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한국전력 하청업체 노동자 김다운(38)씨가 전봇대 개폐기 조작 작업을 하다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졌다. 고용노동부는 한전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인데, 한전은 스스로 ‘도급인’이 아닌 ‘건설공사 발주자’라고 주장하며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을 보면, 한전은 안전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도급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선박부품 제조회사인 ㄱ사는 지난해 9월 ㄴ사에 공장 지붕 보수 작업을 맡겼다. 공사가 진행되던 중 ㄴ업체 소속의 70살 노동자가 9.3m 높이의 지붕에서 추락했고 결국 두개골 골절로 사망했다. 이에 검찰은 원청인 ㄱ사가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ㄱ사의 대표를 산업안전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11일 법원은 ㄱ사의 대표와 법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ㄱ사를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의 의무가 있는 ‘도급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울산지법 형사3단독 김용희 판사는 “공장 지붕·벽체 보수 공사는 선박부품 제조회사인 ㄱ사의 고유생산설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ㄱ사가 영위하는 사업의 일부라고도 판단할 수 없다”며 “ㄱ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도급인으로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므로 이 업체 대표의 산안법 위반 책임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파트 집주인이 인테리어 공사를 발주했을 때, 공사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집주인에게 물을 수는 없다는 논리다.
이 판결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가 있는 ‘도급인’(원청업체)과 도급인에 해당하지 않는 ‘건설공사 발주자’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는 “‘도급인’이란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도급하는 사업주를 말한다. 다만, 건설공사 발주자는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건설공사 발주자는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아니하는 자”로 규정하는데 이를 처음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울산지법의 판결을 종합하면, 건설공사가 원청 사업의 일부이고 공사가 원청 사업의 본질적이고 필수적 것이라면 건설공사 발주자는 ‘도급인’에 해당한다. 또한, 도급인에게는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할 능력이 있는 반면, 하청을 받은 수급인이 산안법에서 정한 안전·보건조치를 스스로 이행할 능력이 명백하게 없는 경우에도 건설공사를 발주한 사람을 ‘도급인’으로 봐야한다고 명시했다. 다시 말해, 공사를 발주한 업체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서는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위험을 제거할 수 없는 공사이거나, 하청업체에게 안전조치를 취하지 못할 정도의 낮은 금액으로 공사를 맡겼어도 ‘도급인’의 의무를 져야한다는 것이다.
전봇대 개폐기 조작작업을 하다 숨진 김씨의 유족 쪽은 법원의 기존 판결에 따르면 한전은 “도급인이 맞다”고 주장한다. 김씨 유족을 대리하는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는 “김씨는 한전의 전봇대에서 고객까지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배전작업’을 하다 숨졌고, 배전작업은 한전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일부다”며 “고압전류 감전 우려 때문에 한전이 주도하지 않고서는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으므로 한전은 도급인에 해당한다. 한전에게는 도급인으로서 안전조치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씨 유족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 민주노총과 기자회견을 갖고 한전과 하청업체 사장을 형사 고소·고발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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