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직장괴롭힘 조사만 두 달, 서면만 100쪽 썼는데…이젠 지쳤어요”

등록 2022-02-28 04:59수정 2022-03-07 11:24

서강대 계약직 연구원의 토로

근로감독관은 학교에 넘기고
대학 본부는 “좋게 해결하라”
외부 조사 맡기는 데만 한달
전문가 “법 허점 2차피해 빈번”
픽사베이
픽사베이
“새벽에 서면 쓰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더라고요. 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서강대 계약직 연구원 ㄱ씨는 지난해 12월 담당 교수를 직장내괴롭힘으로 신고했다가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버렸다. 피해 신고 이후 학교 쪽과 조사 방법을 놓고 한달 남짓 실랑이를 해야 했고, 신고 사실을 알게 된 교수와의 관계도 악화됐기 때문이다. ㄱ씨의 괴롭힘 진상 조사는 두달 넘게 끝나지 않고 있다. ㄱ씨는 27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피해를 입은 것도 억울한데 조사 중에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 계속 싸워야 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 직장내괴롭힘 관련 조항이 포함된지 2년이 지났지만, 진상 조사와 피해자 구제를 해야 할 사용자의 대처가 여전히 미숙해 2차 피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법률상 조사의 주체가 ‘사용자’이다 보니, 고용노동부 역시 관련 조사를 사용자에게 맡겨버리고, 조사 경험이 부족한 사용자는 피해자가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조사하거나 가해자에게 편향된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ㄱ씨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ㄱ씨는 당초 근무 결과에 따라 재임용이 가능하다고 안내 받았으나 새로 부임한 연구기관장 ㄴ교수로부터 지난해 12월 갑자기 재임용 거부 통보를 받았다. 그가 부임하기 전에 ㄱ씨가 외부 강의를 여럿 맡았다는 이유였다. ㄱ씨는 낮은 임금을 받는 연구원 특성상 겸직이 불가피해 전임 기관장에게 탄력근로를 승인 받았고 업무 평가도 높게 받아 문제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자 ㄴ교수는 이번엔 ‘전임 기관장이 교내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ㄱ씨가 이에 연루된 걸로 의심된다’는 이유를 추가로 냈다. ㄱ씨가 “그건 윗분들 일이지 저의 고용과는 무관하지 않느냐”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ㄱ씨는 “처음부터 재임용 거부 결정을 할 때 업무 능력 평가를 하거나 저에 대한 제3자 업무 평가를 반영하지 않았고, 거부 결정에 대해 제가 소명한 내용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 뒤 ㄴ교수는 이전 학기에 ㄱ씨가 끝낸 일들 가운데 교내 규정에 안 맞는 일 등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고 했다. ㄴ교수가 전임 교수들과의 갈등을 이유로 자신을 부당하게 내쫓는다고 판단한 ㄱ씨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서강대에 신고했고 서강대가 교내 인권센터를 조사기관으로 정했다.

문제는 ㄴ교수가 직전 인권센터장이었고, ㄱ씨의 재임용 거부 결정에 동의한 ㄴ교수의 동료 교수가 현재 인권센터장이라는 점이었다. 서강대는 ㄴ교수와 관련된 이들을 조사 과정에서 제척하겠다며 ㄱ씨를 안심시켰지만 ㄱ씨는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인권센터는 조사 기간을 6개월로 정하고 필요하면 60일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내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조사는 근로기준법상 사업주가 ‘지체 없이’ 해야 하며 근로감독관 집무규정도 신고 사건을 25일 이내에 처리하도록 정했는데, 인권센터 규정에 따르면 최대 8개월까지도 걸릴 수 있었다. ㄱ씨는 “조사가 부적절하다는 전자우편을 보내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학교는 ‘이미 그렇게 정했다’고만 했다”며 “직장내괴롭힘 방지법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제가 따로 노무사를 찾아가 자문 받고 노무사 도장까지 찍어서 서류를 보냈더니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조사 방식을 외부 전문가에 맡기는 것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부의 도움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ㄱ씨의 도움 요청에 담당 근로감독관은 “학교 쪽의 조사에 감독관이 뭐라 할 강제력은 없다”거나 “학교의 사적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근로기준법이 조사 주체를 사용자로 정하긴 하지만, 근로감독관 역시 객관적으로 조사가 진행되는지 파악하고 권고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상당수 근로감독관들이 업무 과다 등을 이유로 사용자에 사실상 조사를 맡겨두는 형편이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ㄱ씨가 “‘너무 답답한데 얘기라도 해 줄 수 없느냐’고 몇 차례 호소하자 그제서야 학교 관계자를 불러 조사 방식 변경을 권고했다고 한다.

학교와의 실랑이로 조사가 지연되는 동안 ㄱ씨의 직장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ㄱ씨는 “ㄴ교수가 동료에게 불시에 연락해 소재를 파악하려 하고 연차휴가를 반려하려 했다. 서강대 본부 관계자가 갑자기 면담을 요청하더니 ‘좋게 해결하라’는 취지로 말해, 내 말과 행동이 다 ㄴ교수에게 전달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ㄱ씨는 이달 초 이런 내용을 담아 세 차례 더 직장내괴롭힘 신고를 했다. ㄱ씨가 지난 두 달 간 서강대에 보낸 각종 서면자료는 100여쪽에 달한다.

“제가 이 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습니다. 가해자와 한통속인 사용자에게 조사를 맡기는 게 너무 불합리했고 사용자가 조사를 다 마쳐야만 근로감독관이 개입할 수 있다는 말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밤새 서면을 쓰면서 ‘뭐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해 보자 마음 먹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괴롭힘 진상 조사를 사용자가 맡게 된 건 직장 내 괴롭힘을 가급적 노사 협의로 해결하도록 짜여진 법 구조 탓이 크다. 그나마 지난해 법이 개정돼 사용자가 객관적 조사 의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에 처해질 수 있지만, 조사 절차를 제대로 갖춰 놓거나 조사 때 피해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사업장은 드물다.

김유경 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법이 직장내괴롭힘 해결을 기본적으로 ‘사내에서 알아서 잘 해결할’ 사안이라고 규정하다 보니 조사 과정에서 비밀 유지가 지켜지지 않거나 가해자와 가까운 관리자급 중심으로 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등 2차 피해가 빈번하다”며 “법의 한계도 있지만 노동부가 사용자의 조사 미비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쪽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직장내괴롭힘 방지법을 담은 학교 규정을 제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ㄴ교수는 “전임자와의 관계는 부차적인 것이고 ㄱ씨가 외부 강의를 여럿 맡아 근무를 성실히 하기 어렵다거나 규정과 다르게 일을 처리한 것 등이 있어 계약 해지를 안내했다. 소재를 파악한 것은 (괴롭힘이 아닌) 업무 지시 때문이었고 연차휴가는 계약서 규정 안내를 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ㄴ교수 쪽은 <한겨레>에 아래와 같이 추가 설명을 보내왔습니다.

“ㄱ씨는 계약 갱신권이 없는 계약기간 1년의 직원인 행정연구원 신분으로 ㄱ씨의 전임자도 평가 결과 계약 갱신이 되지 않아 1년 만에 퇴직했다. ㄱ씨에 대하여는 계약기간 만료일을 2개월 앞두고 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정당한 평가 절차를 거쳐 계약 갱신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를 절차에 따라 통보한 것이지 갑자기 재임용 거부 통보를 한 것은 아니다. ㄱ씨에 대한 통보는 운영위원회 결정 후 한 번의 전화 통화로 이루어졌고 통보 과정에서 운영위원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설명한 것이지 ㄱ씨 주장처럼 일방적인 통보 후 사유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재평가를 요구하는 ㄱ씨의 의사를 존중하여 ㄴ교수가 빠진 상태에서 다시 운영위원회를 열어 ㄱ씨에 대한 계약 갱신 여부를 심의하고 소명 기회도 주었으나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고 ㄱ씨는 계약기간 만료로 2월28일자로 퇴직하였다. 직원 업무 평가에 제3자 업무 평가를 반영해야 한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고 재평가 과정에서 ㄱ씨의 요구로 ㄱ씨와 같은 시기에 재직했던 전임 연구기관장의 평가서가 제출되었지만 객관적, 중립적인 위치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고려되지 않았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