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상 한국기술대학교 명예교수가 15일 윤석열 당선자의 노동공약과 정책 구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일주일 내내 안 쉬고 사람 죽게 만들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근로일 사이에 휴식시간 11시간은 주고, 보편적인 국제 기준은 맞춰서 건강 보호를 해야 한다.”
국민의힘 대선캠프 고용노동정책분과위원장을 맡았던 유길상 전 한국고용정보원장(한국기술교육대학교 명예교수)은 1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당선자의 노동시간 유연화 논란에 대해 이 같이 설명했다. 윤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장시간노동’을 방치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 52시간 노동상한제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제와 ‘강성노조’ 등을 자주 비판하면서 논란을 만들었으나, 정작 고용노동 공약을 발표하지 않고 공약집에 담긴 내용도 여러 챕터에 나뉘어있어 ‘맥락’을 찾기 어려웠다.
윤 당선자는 공약에서 근로기준법의 선택적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1년으로 확대(현행 1개월, 신상품 개발 업무는 3개월)하고, 연장근로시간 특례업종 또는 특별연장근로 대상에 신규 설립 스타트업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았다. 유 전 원장은 이와 관련해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춰 근로시간에 대해 세대간의 다양성을 주자는 것”이라며 일간휴식제도를 보완책으로 언급했다. 하루 근무를 마치고 다음 근무 시작 때까지 11시간의 휴식을 보장하도록 한 제도로, 현행 근로기준법의 1개월 초과 3개월 이하 선택적근로시간제, 3개월 초과 6개월 이하 탄력적근로시간제,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적용된다. 일간휴식이 보장된다면 근로시간을 유연화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지만, 노동계는 과도한 집중노동의 과정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이 침해된다며 제도 확대에 반대한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윤 당선자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유 전 원장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연공급과 노동시간에 따른 임금체계는 공장제 생산방식의 유산”이라며 “연공급 비중이 높으면 기업이 청년채용을 적게하고, 나이 든 사람은 빨리 해고할 인센티브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 도입 드라이브를 걸었다가, 공공기관 노동조합 총파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는 “임금체계 개편은 하루 아침에 해서는 안되고, 장기적으로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가 군사작전 하듯이 해서는 안되고, 정부는 인프라를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은 해당 사업장의 과반수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윤 당선자의 공약은 사업장 내의 노동조건 결정권한을 (과반수)노조에서 분산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노동계와 갈등이 예상된다. 임금체계 변경을 “부문별 근로자대표와 사용자간 서면 합의로 결정”하게 한다거나,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노동자 직접투표로 선출해 독립성·대표성을 강화”한다는 내용 등이다. 현행법상 과반수노조가 있는 경우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은 과반수노조가 위촉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윤 당선자는 선거기간 동안 “전체 노동자의 4%를 대변하는 강성노조는 완전히 치외법권”이라등 노조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단일화 이후 대통령 인수위원장을 맡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후보는 “강성귀족노조 혁파”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유 전 원장은 “선거국면에서는 지지층을 바라보며 그런 말을 하지만, 당선이 되면 모두를 품어야 한다”며 “국민이 원하는 것은 협치·통합이므로 포용적 노동정책을 위해 노사정 합의를 기본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수의 의견도 존중받을 수 있고, 조직화되지 않은 쪽의 근로자대표제를 만들어 노조와 무노조의 중간영역에 있는 노동자를 도와주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유 전 원장은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시간과 임금을 유연화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기존 노동법·사회보장 체계에서 소외된 계층을 보호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사회적 숙의와 협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노동경제학을 연구한 유 전 원장은 고용보험 도입 당시 실무를 맡기도 했다. 때문에 고용보험 제도와 고용서비스 확대개편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안과 관련해 “비정규직을 많이 쓰고 실업자를 많이 양산하면 고용보험료를 늘리는 등 정규직 사용을 유도하고 실업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며 “이미 법률(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에 관련 규정이 있지만 이에 관한 시행령이 정비되지 않아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약 전체에서 고용노동 공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것에 관해 유 전 원장은 “모든 공약을 공약집에 다 넣을 수는 없어 한 20% 정도만 들어간 것이고, 인수위 버전으로 좀 많이 있다”면서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윤 당선자에 대해서는 “노동법 쪽에 관심이 많았고 습득 속도도 빨랐다”며 “사회적 타협, 담판도 잘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경제1·외교안보·정무사법행정분과 등 인선을 발표한 인수위는 고용노동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2·사회복지문화분과 인수위원 인선은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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