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서울 양재동 에스피시(SPC) 사옥 근처에서 ‘파리바게뜨(피비파트너즈) 노조파괴 중단’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의 삼보일배가 이뤄지고 있다. 노조 제공
“기사님, 아직 노조에 있죠? 민주노총 거기. 최근 (기사 배치) 지역개편 있었던 거 알죠? 그게 노조를 와해시키려고…. 내가 계속 물어봐서 정보를 뜯어냈는데, 사람(민주노총 노조 조합원 숫자)이 얼마 안 남아서, 회유도 안 하고 엄청 힘들게 해서 퇴사까지 몰고갈 것 같아. 내 생각에는. 위생이나 품질 면으로.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그냥 내치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
지난달 1일 인천의 파리바게뜨 가맹점 제빵기사 ㄱ씨에게 에스피시(SPC) 피비파트너즈 상급자(조장) 이아무개씨가 전화로 한 말 가운데 일부다. 앞으로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이하 노조) 조합원에 대한 회사 쪽의 괴롭힘이 심해질테니, 노조를 탈퇴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이다. 노조는 이씨의 발언을 직장내괴롭힘으로 신고했다. 회사는 “직장내괴롭힘이 아니다”라고 노조에 통보하면서도, 이씨가 왜 “회사가 노조를 와해시키려 한다”고 발언했는지에 대해선 노조에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은 것으로 8일 확인됐다.
파리바게뜨 가맹점 제빵기사들이 소속된 피비파트너즈는 오랜 기간동안 민주노총 노조를 와해시키려 하고, 민주노총 조합원을 차별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최근 노동위원회와 고용노동부도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해, 노동위는 회사에 시정명령을 하고, 노동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바 있다. 관리자(제조장), 중간관리자(BMC) 등이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회유하고, 지난해 3월 승진인사에서 노조를 차별할 목적으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승진을 누락했다는 혐의다.
(▶관련기사: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직접고용뒤 노조탈퇴 압박한 SPC 기소되나)
녹취록에 등장하는 이씨는 인천지역에서 중간관리자와 일선 제빵기사 사이에 있는 ‘조장’으로 ㄱ씨보다는 직책상 상급자다. 이씨는 해당 지역에 새로온 중간관리자 유아무개씨가 이전 지역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을 퇴사시켰다”고 언급하며 ㄱ씨에게도 민주노총 노조 탈퇴를 권했다. 이씨는 “회사가 민주노총 조합원이 많이 근무하는 해당지역에 유씨를 배치한 것이 민주노총 조합원을 퇴사시키려는 목적”이라는 취지로 말하는 한편, 제빵 품질과 위생 평가를 문제삼아 조합원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과 위생은 제빵기사들의 주된 인사평가 대상이다.
이에 노조는 지난달 10일 회사에 공문을 보내 이씨의 발언의 사실관계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이씨를 직장내괴롭힘으로 신고했다. 이씨가 한 말이 직장에서의 지위·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ㄱ씨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고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는 이유다. 그러나 조사를 진행한 회사는 지난 6일 노조에 직장내괴롭힘이 아니라고 통보했다.
회사가 직장내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는 “불이익을 주기 위한 협박 또는 강요성 발언으로는 볼 수 없고 ‘걱정되는 마음’을 전달하는 내용으로 판단된다”는 것이었다. 임종린 노조 지회장은 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씨가 ㄱ씨를 걱정해서 노조에서 탈퇴하라고 했다면, 회사의 민주노총 노조를 와해시키려고 조합원들을 괴롭히려는 계획이 실재했다는 말이 된다”며 “그동안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된 노조 탈퇴 회유 발언이 차고 넘치는데 ‘걱정하는 마음’이었다고 주장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게다가 회사가 노조에 회신한 공문을 보면,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사실조사’를 위해 사건 관련자 4명을 조사하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또 회사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씨에게 먼저 전화를 건 뒤, 19분 뒤에 피해자인 ㄱ씨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하는 등 매뉴얼이 정한 조사 순서와 반대로 조사했다. 노동부 ‘
직장내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은 직장내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신고자-피해자-참고인-가해자 순으로 조사하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부 매뉴얼은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회사가 ㄱ씨를 ‘전화조사’한 시간은 10분이 채 안 됐다.
이에 대해 에스피시 회사 쪽은 “이씨가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수노조 소속 후배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진술했으며, 양쪽의 진술을 청취해 객관적으로 판단했다”며 “이씨에 대해선 추가로 대면조사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회사가 민주노총 조합원을 괴롭혀 퇴사시키려 한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이씨가 자신의 생각을 회사의 뜻인 것처럼 포장해 한 말”이라고 전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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