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제87호, 제98호, 제 29호가 발효된 첫날인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노동 후진국 이제 그만! 노동기본권 글로벌 스탠다드 제대로 적용하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해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 20일 발효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됐다. 노동계는 협약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돼 온 노동 관련 법과 제도 재정비를 요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는 아이엘오 협약과 국내 법·제도·현실이 얼마나 심각하게 동떨어져 있는지 점검해 개선 방안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며 “하청 노동자 교섭권과 특수고용직 노동법 사각지대 등 아이엘오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개선을 요구한 사항을 포함해 노동3권의 행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아이엘오 협약은 비준한 지 1년이 지나면 효력이 발휘되는데,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4월20일 강제노동금지 협약인 29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인 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인 98호를 비준했다. 협약을 비준한 국가가 이를 위반하면 노동자단체나 사용자단체는 아이엘오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노동계는 개선돼야 할 대표 과제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이 아이엘오보다 좁게 정의된 현실을 지적한다. 아이엘오는 ‘고용 관계가 존재하지 않아도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지만 대법원은 노동조합법의 적용 대상을 ‘특정 사업자에게 소득을 의존하는 자’, ‘임금을 노무 제공의 대가로 받는 자’ 등 일부 기준으로 좁혀 해석했다. 그 결과 여러 고객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나 ‘건당 실적’으로 보수를 받는 도급제 노동자 등은 법 보호를 받을 수 없었고 정부가 노조 설립 신고를 받아주지 않거나 사용자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원청 사용자에 대한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 역시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아이엘오는 ‘고용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자와 노조의 단체교섭은 항상 가능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법원은 그간 노동자와 고용관계가 있는 사용자만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고 좁혀 해석해 왔다. 그나마 2010년 현대중공업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과 지난해 6월 씨제이대한통운에 택배기사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오면서 원청 사용자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는 논리가 확산되고 있으나, 정부는 여전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만 유지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동계는 정부가 노동자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거나, 법원이 아이엘오 협약 취지를 살려 법 해석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날 열린 ‘아이엘오 협약 발표와 한국사회의 과제’ 토론회에서 “임금을 기준으로 정의된 노동조합법상 노동자 개념을 ‘ 노무제공과 그 대가에 의해 생활하는 사람’으로 확대하고 사용자도 ‘노동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자’로 규정해 원청에 단체교섭 의무를 지울 수 있도록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아이엘오 협약의 국내법적 적용을 담보하는 종국적 역할은 사법부에 있다”며 법원의 적극적 해석을 촉구했다.
이에 양대 노총은 △핵심협약에 부합하게 노동조합법 개정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노조 할 권리 보장 △교사·공무원 노동·정치기본권 보장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폐지 △원청사용자와 교섭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한편, 노동계는 협약 비준으로 노동계의 각종 단체교섭 요구가 늘 거라는 경영단체의 주장에 “과거부터 꾸준히 요구한 권리”라고 반박했다. 앞서 지난 18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아이엘오 핵심협약 국내 적용 개시에 따른 문제점과 대응 방안’ 보고서를 내고 “협약 비준으로 교섭 대상과 조합 활동 범위를 두고 노동계 민원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에 대해 윤 연구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경영계가 아이엘오 비준으로 열세에 처할 거라는 ‘공포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실제론 이전부터 오랫동안 노동계가 요구했던 것이고 그마저도 아이엘오 협약 기준에 못 미칠 만큼 더디게 진행돼 왔다”고 지적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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