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콜센터 사무실 전경.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제공
공공부문 콜센터 상담사 안아무개(53)씨는 지난해 7월 이후 단 한번도 재택근무를 하지 못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부터, 회사가 재택근무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19 첫해 ‘구로구 콜센터 집단감염’ 이후 콜센터 노동환경이 코로나19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달라진 건 ‘칸막이’가 생겼다는 것뿐이다. 안씨와 동료들은 2m가 채 안 되는 간격으로 100여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상담 업무를 봤다. 안씨는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말하면 땀도 차고 발음도 부정확해져 일하기 매우 불편했다. 워낙 밀집돼 있어 감염 위험도 컸다”고 말했다.
1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산된 뒤 근무 공간이 유연화되고 있지만, 실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는 노동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엔에이치엔(NHN)클라우드 등 일부 정보기술(IT) 기업은 직원들이 사전에 약정된 시간만 출근하는 ‘오피스 프리’ 제도 등을 도입해 노동자의 선택권을 확대했지만, 콜센터 등 사업주의 노동 통제가 강한 업종은 회사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강제적으로 근무지가 결정됐다.
콜센터 상담 업무는 원격근무 시스템만 갖추면 간단하게 집에서 일할 수 있다. 감염병 확산의 위험도 낮출 수 있지만, 일부 기관은 ‘비용’을 이유로 출근 방침을 고수했다. 경기도청은 지난해 콜센터 재택근무 도입을 추진하다 ‘한달에 300만원 남짓의 예산이 든다’는 견적을 받고 재택 시스템 도입 대신 사무실 공간을 늘리기로 했다. 반면 기존 공무원 네트워크를 사용해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도청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콜센터 노동자는 재택근무뿐 아니라 ‘출근근무’도 선택할 수 없었다. 한 시중은행 콜센터 업무를 위탁받은 ㄱ업체는 원치 않는 노동자들에게도 재택근무를 강제했다. 재택상담사는 고객정보 유출 등의 우려 때문에 은행 계좌 등 민감정보를 다루는 전화 상담을 처리할 수 없었는데, 계좌 관련 업무를 처리하지 않으니 더 많은 ‘콜’(상담)을 응대할 수 있었다. ‘콜 수 처리율’은 용역업체 재계약의 중요한 평가 지표다.
이 업체 상담사 김아무개(45)씨는 아들에게 업무 내용을 알리고 싶지 않아 재택근무를 피하고 싶었지만, 위탁업체의 방침으로 강제 재택근무를 해야 했다. 김씨는 “집에서 일을 할 때, 함께 있던 아들이 민원인에게 연신 사과하는 제 모습을 보고 ‘엄마 왜 이런 일을 하느냐’며 울었다”며 “가족들이 속상한 게 싫어 사무실에 출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업주 편의에 맞춘 ‘쥐어짜기’ 수단으로서의 재택근무는 노동자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 ㄱ용역업체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재택 상담사들에게 3~4배의 콜을 배정했고, 재택근무자 업무는 과중됐다. 출근한 상담사들 역시 재택근무자들이 받지 못하는 개인정보 관련 상담 전화를 당겨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여기저기서 불만은 터졌고, 급기야 “재택근무 없애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교육·인사 시스템 등을 보완하지 않은 재택근무는 노동자 소외로 이어졌다. 6개월가량 재택근무를 했다는 ㄴ콜센터 상담사 박아무개(40)씨는 “케이블방송 홈쇼핑 콜센터여서 상품이 수시로 바뀌는데 관련 직무교육을 재택근무자는 받을 수 없었다”며 “회사 전체 공지를 혼자만 못 받을 때도 있었다. 혼자 따라가려니 버거웠다”고 고백했다. 심명숙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장은 “업무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혼자 일을 처리해야 하니 아침 일찍부터 ‘자습’을 하는 상담사들도 많았다”며 “혹여나 틀릴까 긴장하다 보니 불안감과 고립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심 지부장이 속한 다산콜센터에선 최근 10년차 동료가 우울감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했다.
전문가들은 회사가 노동자들의 근무 방식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경우 생산성 저하와 노동자 반발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근무 장소 선택에 최소한의 노사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최근 고용노동부 재택근무 컨설팅을 받은 통신장비 부품 기업 ‘이랑텍’은 재택근무가 어려운 생산직 노동자에게 포상휴가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노동자의 근무 장소 선택권으로 인식되는 만큼, 근무지를 선택할 수 없는 생산직 노동자에겐 별도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궁극적으로 출근을 고수하더라도 이해관계를 조율한 기업과 그러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크다. 정호석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일터혁신센터장은 “각 직무 특성을 분석해 가장 적합한 근무 방식을 찾되 재택이 어려운 경우 해당 직군에 납득할 만한 이유를 회사가 충분히 설명할 때 직원들의 수용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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