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5회 라이더유니온 라이더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산재보험 전속성요건 폐지’ 등을 주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배달 플랫폼노동자처럼 여러 사업장에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동안 산재보험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전속성 요건’을 삭제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29일 국회 본회의 재석의원 186명 중 181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을 보면,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주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해야만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었던 ‘전속성 요건’을 폐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요건 때문에 배달플랫폼노동자(퀵서비스 기사)는 한 사업장에서 한 달 소득 115만원, 노동시간 93시간을 넘겨야만 산재보험이 적용됐다. 여러 사업주에 노무를 제공하거나, ‘투잡’으로 일을 하는 특고 노동자의 경우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했다. 전속성 요건은 산재보험법에 특고노동자 특례가 신설된 2008년부터 14년간 유지됐고, 노동계에선 지속적으로 폐지를 주장해왔다.
전속성 요건 폐지 뿐만 아니라, 산재보험 관련 행정절차도 개선된다. 지난해 7월부터 특수고용노동자·플랫폼노동자에게 고용보험이 적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플랫폼노동자의 보험관계 신고·자료제공 협조의무를 ‘플랫폼 운영자’에게 부과하는 내용이 개정 법률안에 포함됐다. 음식배달 플랫폼·대리운전 등에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플랫폼 운영자’와 플랫폼노동자들이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 이용사업자’가 다른 이중적인 사업구조다. 산재보험 관련 업무를 플랫폼노동자의 노무제공 현황과 보수 등 정보가 집적되는 플랫폼 운영자에게 맡겨 보험관련 사무가 수월해지게 됐다. 더욱이 음식배달 플랫폼의 경우 영세한 지역배달대행업체들이 배달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입직신고를 하지 않아 산재보험 가입률이 낮게 나타났는데, 이러한 문제점들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법률 개정에 따라, 하나의 주된 사업 없이 불특정 다수 사업장에 노무를 제공하는 ‘전속성이 없는 종사자’ 40만명과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제공하지만, 보조 사업에도 노무를 제공하는 ‘보조사업장 종사자’ 23만명 등 모두 63만명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해당 법률은 내년 7월부터 시행되지만, 법률 개정안 부칙에서 법 공포 이후 시행일 사이에 발생하는 ‘보조사업장’ 재해에 대해서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뒤늦은 법률 개정에 따른 손해를 최소화했다.
한편, 이날 국회는 ‘공무원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과 ‘교원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교원·공무원들은 단결권·단체교섭권이 보장되지만 민간부문 노동자들과 달리 노동조합 활동에 필요한 시간을 임금 손실 없이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주는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노조 전임 활동을 위해선 휴직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졌고, 이는 단결권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법률개정으로 단체협약이나 정부교섭대표의 동의를 받아 ‘근로시간 면제한도’ 안에서 협의·교섭, 고충처리, 안전·보건활동, 노동조합 유지·관리 업무 등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근로시간 면제한도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심의위원회를 두고 그 한도를 정할 수 있도록 하며, 면제제도 운영에 관한 정보를 대중에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개정된 두 법률안 모두 노동계의 ‘숙원’이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다가, 지난 3월 대선을 앞두고 법 개정 추진이 급물살을 탔다. 교원·공무원 노조법 개정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한국노총을 찾아 법 개정을 약속한 바 있고, 대선 공약에도 포함됐다. 산재보험법 개정안 역시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은 있었으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라이더유니온 등을 면담하고 국민의힘이 관련법 개정안을 추가 제출하면서 ‘윤석열 정부 노동법률 1호’라는 이름을 얻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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