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전운임제 연장·확대를 요구하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물류난이 현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노사관계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언해 논란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파업의 핵심 쟁점인 안전운임제와 관련해 “국토부가 국회 심의사항에 대해 특정 입장만 옳다고 하는 건 월권”이라고 말해 윤 대통령의 말에 힘을 보탰다. 문제 해결에 ‘뒷짐’ 진 정부의 태도로 화물연대 파업과 물류대란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오전 윤 대통령은 서울 용산청사 출근길에서 화물연대 파업에 관한 질문을 받고 “노사문제에서 정부는 법과 원칙·중립성을 가져야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자기들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역량이 축적돼 나간다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늘 개입해서 여론을 따라가서 노사 문제에 깊이 개입하면 노사 간에 원만하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역량과 환경이 전혀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정부의 입장이나 개입이 결국 노사 관계와 문화를 형성하는 데 바람직한 건지 의문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은 ‘노사관계 일반론’에서는 자신의 철학을 담은 답변일 수 있으나, 현재의 화물연대 파업 상황에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발언처럼 ‘노사 자율’로 노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 ‘법내노조’에 해당해야 사용자에게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화물연대 조합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아 합법적 테두리에서의 단체교섭이 불가능하다. 화물연대 조합원인 화물 차주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아니지만 노동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데, 이런 이유로 정부는 화물연대를 ‘법내노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자영노동자(특수고용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장하라”고 수차례 권고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시장의 ‘노사의 자율적 갈등조정’ 기능을 해왔다. 안전운임제는 화주, 운수사업자, 화물기사,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안전운임위원회’를 통해 운송원가에 따른 적정 운임을 결정한다. 안전운임위원회가 노사교섭의 장이자 갈등 조정·중재의 장이 되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낸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를 보면, “안전운임제가 시행됨에 따라 안전운임위원회 등 화물운송시장의 이해관계자 및 정부간 공식소통창구가 마련돼 시장의 갈등이 완화됐다”고 평가했다. 화물연대 파업은 안전운임제 논의 이전 5년(2012~2016년) 동안엔 총 2회(15일) 발생했지만, 2017년부터 지난해까진 한차례(3일)로 감소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와도 차이가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는 “장기노사분쟁 예방을 위해 노동위원회의 운영체계를 개선하고,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의 조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과 더불어 “사회적 파급력이 큰 노사분규에 대해서는 ‘범부처 대응체계’를 운영하고 복잡·다양한 노사갈등의 선제적 예방을 위해 근로감독관의 체계적 대응을 지원”한다고 명시돼있다. 노사갈등 예방·조정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는 ‘유체이탈’식 발언으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위기만 가중시키는 현 정부의 태도와 정확히 일치한다”며 “불법행위 엄정대응 밖에 없는 현 정부의 노사관계 ‘철학의 빈곤’이 안타깝기를 넘어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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