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의 총파업 8일째인 14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열린 5차 실무교섭에서 화물연대와 국토교통부 관계자들이 정회 후 회의를 재개한 모습. 연합뉴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14일 국토교통부와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에 합의하고 파업을 풀었으나, 향후 제도 운용 방안을 두고 양쪽의 입장 차가 여전하다. 화물연대는 “총파업 철회가 아닌 유보”라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며, 국회를 설득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1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화물연대와 국토부가 오후 8시부터 2시간40분가량 교섭한 끝에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한다는 내용의 합의안을 도출했으나, 앞으로의 제도 방향에 대한 양쪽의 해석 차는 여전히 크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의 주인인 화주, 운송을 위탁받는 운수사업자, 화물을 운송하는 화물기사, 공익위원이 모여 매년 화물 운송의 적정한 운임을 정하는 제도다. 지난 2020년 수출입 컨테이너·시멘트 운송에 한해 처음 시행돼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이봉주 화물연대 본부장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교통부가 안전운임제의 주무부처로서 ‘안전운임제 지속과 품목 확대’를 약속했다”며 “국회에서 일몰제 폐지 법안이 통과되고 제도 범위가 전차종‧전품목 모든 화물노동자로 확대될 때까지 현장에서 또 국회에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 논의 모두 정부와 긍정적으로 합의했다는 취지다.
반면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화물연대가 요구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합의안에 적힌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이 곧 올해 말 일몰 폐지는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간 `이해관계 중재자'라며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던 국토부가 파업이 타결되자 제도 상설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어 차관은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 확대와 관련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컨테이너와 달리 나머지 품목은 화주도 많고 규격화하기가 어렵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런 양쪽의 입장 차는 전날 합의문을 언론에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화물연대는 합의안 문구를 그대로 인용해 “안전운임제의 지속 추진”에 대해 합의했다고 밝힌 반면, 국토부는 합의안에 없던 말을 추가로 삽입해 “안전운임제를 ‘연장 등’ 지속 추진”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일몰제 폐지'가 아닌 `일몰제 연장'으로 읽힐 가능성이 있는 문구다. 양쪽이 표면적으로는 합의점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의견 차가 여전한 것이다.
합의안에 해석의 여지가 큰데도 양쪽이 일단 갈등을 봉합한 건 결국 제도 손질의 권한이 국회에 있기 때문이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조항과 적용 품목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규정돼 있어 제도의 연장·폐지·확대 모두 국회가 결정할 사안이다. 다만 국회가 지난 2018년 안전운임제 도입 당시 “향후의 제도 향방은 제도 시행 효과를 보고 결정하자”고 정해, 국회 논의에 앞서 제도 효과를 보고해야 할 국토부의 ‘제도 존속 의지’를 대외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봉합되지 않은 쟁점들은 올 하반기 국회에서 재점화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제도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일몰제 폐지 대신 ‘연장’에 무게를 싣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전운임제에 대해 “노동자에게 최저임금같은 안전망은 있어야 하기에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지만, 같은 날 <한국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선 “코로나 등 상황 때문에 정확한 (제도 효과) 측정이 어려웠던 부분이 있어 성과를 평가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제도를 곧바로 상설화하기보단 제도의 효과를 더 따져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반면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에 여러차례 긍정적 입장을 밝혔던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이날도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화물연대의 기자회견문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몰제 조항 폐지를 담은 법안도 지난해 1월 이미 발의해 둔 상태다.
또 다른 파업 요구사항이었던 안전운임제 적용 차종·품목 확대 역시 쟁점사안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전날 언론에 “품목 확대에 대해선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며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화물연대와 함께 실무협의회를 꾸려 품목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4월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 별도 조항을 삭제해 발의한 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안과 화물연대 쪽이 구상하는 품목 확대 방안을 함께 검토해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화물연대는 일단 국회 법 개정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화물연대는 이날 승리 성명에서 총파업 ‘철회’가 아닌 ‘유보’라는 표현을 쓰며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 투쟁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법안 처리가 지체되는 그 순간 곧바로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지난 9일과 10일 각각 민주당과 정의당을 차례로 만나 관련 법 개정에 대한 협조를 약속 받았으나, 여당인 국민의힘과는 아직 공식적인 대화가 없었다.
국토부는 전날 합의대로 국회 원구성이 완료되는 즉시 그간 시행한 안전운임제 성과 분석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또 국회 보고 이전까지 화물연대와 화주 등으로 구성된 ‘안전운임 티에프(TF)’를 통해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추가로 수렴할 방침이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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