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죽음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노동력을 100% 잃은 중장해 1~3급은 1만1533명(2022년 4월 기준)이다. 이 중 20~30대 청년은 187명(1.6%)으로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스물네살의 김용균처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무리하게 일하다가 다쳤다. 청년 산업재해는 오랫동안 살아가야 할 피해자에게도, 그들을 돌봐야 하는 가족에게도 크나큰 고통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산재의 경영자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한겨레>가 ‘살아남은 김용균’ 187명을 기록하며 ‘일터에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을 권리’를 다시 말하는 이유다. <한겨레>는 네 차례에 걸쳐 살아남은 김용균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187명의 사고 경위를 담은 별도의 인터랙티브 페이지도 만들었다.
[인터랙티브] 살아남은 김용균들 : 2022년 186명의 기록한겨레 청년 산재 기획 바로가기 >>
지난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수는 2080명이다. 살아남은 수는 그보다 60배 많은 12만633명이다.
통계는 죽은 자와 산 자로만 재해자를 분류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 그 경계선에서 죽을 때까지 고통받는 삶이 있다. 치명적인 산재로 장애나 질병을 얻어 노동력을 100% 상실한 중장해인(장해 1~3급)이다. 그 수는 1만1533명(2022년 4월 기준)에 이른다. 중장해인 가운데 20~30대 청년은 187명이다. 83.5살인 한국 평균 기대수명(2020년 기준)에 비춰보면 이들이 살아가야 할 시간은 50~60년 남아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김용균’씨처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무리하게 일하다 회사의 부주의로 재해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 했다. 사고의 영향은 당사자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청년 산재는 오랜 기간 돌봄을 맡아야 하는 가족에게도 고통이다.
*기능 종사자 등 :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
*사무 종사자 등: 관리자, 사무종사자,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
*서비스 관련 종사자 등: 서비스 종사자,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판매 종사자.
오랫동안 낮은 목소리로 머물던 산재 문제를 사회적 화두로 만든 것은 청년 노동자의 비극이었다. 2016년 5월 지하철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열아홉살의 ‘구의역 김군’,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세상을 떠난 스물네살의 김용균. 이들의 죽음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여론을 불렀다. 2021년 1월 국회는 결국 법 제정에 나섰지만 같은 해 4월 경기 평택항에서 300㎏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목숨을 잃은 스물세살 이선호, 10월 전남 여수시 요트선착장에서 배에 붙은 따개비를 따다 바다로 가라앉은 뒤 돌아오지 못한 열일곱살 홍정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올해 1월 법이 시행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움텄다. 하지만 지난 5월 새로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6월16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적 불확실성을 신속히 해소하겠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는 ‘경영책임자 의무 명확화를 위한 시행령 개정 등 재해예방 실효성 제고 및 현장애로 개선 추진’을 목표로 뒀다. 1월27일 법 시행 이후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정부가 산재의 경영자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통령령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겨레>는 산재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아파트 한동의 초인종을 모두 눌러가며 4명의 청년 중장해인(1~3급)을 찾아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뇌손상으로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전봇대를 오르다 감전돼 양팔을 잃은, 공사장에서 떨어진 자재에 맞아 하반신을 쓸 수 없는, 교통사고로 목뼈가 부러져 온몸이 마비된 청년들이 있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20~30대 중장해인 187명의 상해 유형, 재해 발생 경위, 장해보상금 지급액 등이 담긴 자료도 입수해 전수분석했다.
산재가 발생하면 노동자는 우선 요양(치료)을 받는다. 요양이 끝나거나 6개월 이내에 증상이 고정될 것으로 예상될 때 근로복지공단은 의학적 자문을 거쳐 장해등급을 결정한다. 산재 장해등급은 부상과 질병의 정도에 따라 1~14급으로 나뉜다.
1급은 두 눈 실명, 팔꿈치 관절 이상에서 두 팔 절단, 무릎 관절 이상에서 두 다리 절단, 신경계통의 기능 또는 정신 기능에 뚜렷한 장해로 수시 간병을 받아야 하는 등의 경우다. 2급은 한쪽 눈 실명과 다른 눈 시력 0.02 이하, 두 팔이나 다리를 손목과 발목 관절 이상에서 잃는 등 사례에 부여된다. 3급은 한쪽 눈 실명과 다른 쪽 눈 시력 0.06 이하, 두 손의 손가락을 모두 잃은 경우, 흉복부 장기의 기능에 뚜렷한 장해가 남아 평생 동안 노무에 종사할 수 없는 사람 등에 해당한다. 가장 장해 정도가 경미한 14급은 3개 이상의 치아에 치과 보철, 한쪽 손의 엄지손가락과 둘째 손가락 외 손가락 뼈 일부 상실, 한쪽 귀 청력이 1m 이상 거리에서는 작은 말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게 된 경우 등에 부여받는다.
산재 관련법 등에서는 1~3급의 경우 중장해로 분류하며 노동력을 100% 상실했다고 판단한다. 산재 노동자들은 이렇게 결정된 등급에 따라 장해보상금(연금·일시금)을 받는다. 1~3급의 경우 연금으로만 지급하며 4~7급은 연금 및 일시금 중 선택할 수 있다. 8~14급은 일시금으로만 보상한다.
장해보상금 규모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등급별 보상일수와 평균 임금(3개월 평균 일당)이다. 급별 보상일수는 1급은 329일, 2급은 291일, 3급은 257일이다. 장해 1급이면서 직전 3개월 평균 일당이 10만원이었던 노동자라면 1년에 329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평균 임금은 최고·최저보상기준 금액을 벗어날 수 없다. 2021년 1월~2022년 12월 적용되는 최고보상기준 금액은 하루에 22만6191원, 최저보상기준 금액은 6만9760원이다.
2022년 4월 기준으로 1~3급 중장해인은 1만1533명이다. 이 중 20~30대 청년은 187명이다. 청년 중장해인의 특징은 △낮은 보상금 △5인 미만 사업장 △골절이라는 세개의 열쇳말로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력 등이 많지 않아 임금이 낮은 청년 노동자는 산재로 다쳤을 때 장해연금도 적게 받는다. 이수진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1급 중장해인이 받는 전체 평균 연금은 월 400만6천원인 데 비해 같은 급수의 청년 중장해인이 받는
연금은 249만6천원밖에 되지 않는다.
주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를 당하는 것 역시 청년 중장해인의 특징이다. 이들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를 당한 비율은 41.2%로 전체 평균 23.2%에 견줘 두배 가까이 높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장해보상금 격차는 청년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 다친 청년 중장해인의 평균 장해연금 수급액은 203만원이었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다 다친 같은 나이대 노동자의 장해연금은 309만원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이들보다 100만원 이상 많았다.
산재 유형이 대부분 골절, 절단 등 외상인 것도 눈에 띈다. 청년 중장해인 187명 중 골절은 104명으로 55.6%에 이른다. 청년의 중장해 원인 중 골절·절단·파열·열상 등 외상을 합친 비율은 63.6%이지만 전체 평균은 23.5% 수준이다. 공사 등 현장에서 부상을 입거나 교통사고로 다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몇가지 예외가 있다. 공무원이나 군인, 선원, 사립학교 교직원 등 별도의 재해 보상 시스템이 있는 직업군은 산재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주택건설업자 등이 아닌 자가 시공하는 특정 공사, 가구 내 고용, 상시 노동자가 1명 미만인 사업, 농업·임업(벌목업은 제외)·어업 및 수렵업 중 법인이 아닌 자의 사업으로 상시 노동자 수가 5명 미만인 경우에도 산재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일하다 다쳤지만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청년 중장해인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대표적인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는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특수형태근로 종사자)였다. 하지만 지난 5월29일 전속성 요건을 폐지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내년 7월 시행)하면서 적용 제외 대상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다. 전속성은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정한 소득과 종사 시간을 충족해야 한다는 요건이다. 이 때문에 여러 사업주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 노동자 등은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다.
다만 개정안에서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직종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기 때문에 이후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생길 가능성은 있다. 민주노총은 이번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5월16일,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는 일용직이건 단기 고용이건 직종의 제한 없이 적용하면서,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만 적용 직종을 별도로 규정하는 것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차별”이라는 입장을 냈다. 이어 “간병 노동자와 같이 직업소개소를 통해 병원의 환자에게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도 적용받기 어렵게 되었다”며 차별 없는 산재보험 전면 적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