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통사정에 나홀로 작업…세아이 아빠는 두팔을 잃었다

살아남은 김용균들: 2022년 187명의 기록
② 감전에 잃은 팔
9년째 인터넷 개통·수리하던 하정원씨
3만 볼트 고압선 감전에 두 팔 잃어
작업 안전 무시했던 회사의 인재
집에 왔지만 혼자할 수 있는 일 없어
“가족에 방해만 된다” 자괴감 커져

통신선을 설치하다가 감전 당해 두 팔을 잃은 하정원씨가 아내를 태우러 가기 위해 차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일터에서 죽음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노동력을 100% 잃은 중장해 1~3급은 1만1533명(2022년 4월 기준)이다. 이 중 20~30대 청년은 187명(1.6%)으로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스물네살의 김용균처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무리하게 일하다가 다쳤다. 청년 산업재해는 오랫동안 살아가야 할 피해자에게도, 그들을 돌봐야 하는 가족에게도 크나큰 고통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산재의 경영자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한겨레>가 ‘살아남은 김용균’ 187명을 기록하며 ‘일터에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을 권리’를 다시 말하는 이유다. <한겨레>는 네 차례에 걸쳐 살아남은 김용균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 두번째는 케이티 자회사 노동자로 일하다 감전 당해 두 팔을 잃은 세 아이의 아빠에 대한 이야기다. 187명의 사고 경위를 담은 별도의 인터랙티브 페이지도 만들었다.

“간지러워 미치겠는데, 긁을 수가 없어요. 이게 진짜 답이 없어서 너무 힘들어요.”

하정원(가명·34)씨는 3년 전에 잃은 두 팔이 아직 가렵다. 환상통(신체 절단 부위에서 느끼는 통증)이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가려운 그곳에는 쇠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수가 자리잡고 있다.

케이티(KT) 자회사인 케이티서비스남부 진주지사에서 인터넷 개통·수리를 하던 정원씨는 안전에 민감했다. “전봇대를 오르다가 몇번 떨어져 봤거든요. 제 주위에도 저랑 같은 일을 하다가 떨어져서 하반신 마비가 온 형이 있어요. 다치면 아이들 못 먹여 살리니까….” 세 아이의 아빠인 그는 두 손이 전기에 타버린 2019년 1월9일에도 작업 전에 주변 위험 전압을 감지·경고하는 활선경보기를 테스트했다. ‘삐~’ 하는 소리가 잘도 울렸다. 하지만 실제 작업할 때는 고압선에 흐르는 3만 볼트를 감지하지 못했다. 불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났던 날, 아침부터 정원씨는 “빨리 와달라”는 고객들의 독촉 전화에 시달렸다. 2011년부터 9년째 진주에서 일한 그에게 안면이 있는 공장주는 “포클레인 작업을 하다 인터넷 선이 끊어졌으니 당장 와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일정에 없는 작업이었고, 이미 출근과 동시에 10건이 넘는 사건을 배당받은 상황이었다. 회사가 권고하는 하루 적정 작업량은 7건인데, 중간에 접수되는 사건까지 맡으면 하루 15~20건을 처리하는 것이 예사였다.

“사장님, 오늘은 너무 바빠서 힘들어요. 100번(케이티 고객센터)으로 전화하셔요.” 미안한 마음에 말끝을 흐리는 정원씨에게 공장주는 “100번으로 하니 이틀 뒤에나 온다고 한다”며 통사정했다. 정원씨는 고민하다 회사 동료 ㄱ씨에게 “같이 작업하자”고 연락했지만, 그도 바빴다. 망설였지만 불만이 접수돼 인사 고과에 불이익을 받는 것보단 얼른 가서 처리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 정원씨는 그곳으로 향했다.

정원씨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그날을 떠올렸다. “공장부지 안 전봇대와 공장 밖 전봇대 사이에 끊어진 구간들이 보이더라고요. 새로 연결한 통신선을 걸기 위해 공장 옥상을 통해 공장부지 안 전봇대로 이동한 뒤 두세 걸음 정도 오르다가 기절했어요.”

그는 사고 현장을 그림으로 그리며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에 사고를 당했는지 몰랐어요. 자고 일어난 느낌이었는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서서히 주변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무의식적으로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정원씨가 작업했던 공장 주변은 고압선과 통신선이 함께 걸려 감전 위험이 높은 전봇대가 많았다. 정원씨는 그 지역에 통신선만 거는 통신주를 세워달라고 회사에 요구했었지만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현장 요구 묵살, 과중한 업무량, 울리지 않은 활선경보기, 절연이 불가능한 목장갑. 1인 작업…. 정원씨의 산재는 이 모든 것이 곪아 터진 결과물이었다.

하정원씨 집 한쪽에 먼지 쌓인 카메라가 놓여있다. 하씨는 아내와 함께 취미생활로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백소아 기자 [e-mail]

“아버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드님) 목숨이 왔다 갔다 합니다.” 의사는 ‘어깨까지 양팔을 모두 잘라야 한다’는 소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원씨의 아버지를 다그쳤다. 고작 서른한살의 나이에 세 아이를 둔 아빠가 감당하기엔 가혹한 수술이었다. 결국 정원씨 아버지는 아들을 구급차에 태워 화상특성화병원인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시켰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정신을 차린 정원씨가 회사 사람을 보고 처음 한 말은 “사고 났을 때 뒤의 고객님들은 다 어떻게 되셨어요?”였다고 한다. “걱정이 되잖아요. 고객들이 기다렸을 테니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정원씨의 몸이었다. 정원씨는 양팔을 차례로 절단하는 것을 포함해 총 14차례 수술을 받았다.

고객부터 걱정했던 정원씨가 회사와 갈라선 것은 믿음이 무너져서다. 그가 선지급을 해야 하는 간병비를 달라고 하자 회사는 합의서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회사 직원이 간병비, 병원비 모두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해서 믿었거든요.”

회사가 내민 합의서에는 본인의 복직과 아내의 입사, 그리고 의수비 등을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정원씨는 2천만원의 비급여 치료비를 개인 보험으로 감당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돈이 들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간병비 지급에 대한 말을 바꾸는 회사를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정원씨는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양팔이 없는 정원씨가 병원에서 지내려면 간병인이 필수였다. 요양 때 간병비가 지급되긴 하지만 후지급이며 100%를 주진 않는다. 모든 것이 돈이었다. 결국 정원씨는 수술 뒤 1년 만에 요양을 끝냈다. 요양을 마무리하면 장해연금이 나온다. 가족의 도움이 있으면 간병비도 아낄 수 있었다. 요양을 끝낸 그는 2020년 2월 장해 2급을 받았다. 양팔이 팔꿈치 위로 절단되지 않아 1급 대상이 안 됐다.

그가 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에서 요양할 때까지만 해도 주변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많았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해마다 35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감전 사고를 겪는다. 최근 11년(2012년~2022년 3월) 동안 감전 사고를 겪은 노동자는 3824명이었고 이 가운데 231명(6%)이 사망했다. 진주지사에서의 감전 사고는 정원씨가 처음이었지만, 병실에는 전국 각지에서 감전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씨가 사고 전 즐겼다는 닌텐도 게임. 마지막 스테이지를 깨기 위해 열심히 아이템도 능력치도 모아놨었지만 게임 속 캐릭터는 몇년 째 멈춰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정원씨는 스스로 “(양손을 잃은) 이 정도면 그래도 감지덕지이고 사회로 나가서 살 수 있겠다”고 되뇌었다. 집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모든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갈고리 모양의 의수로 운전은 할 수 있었지만, 차에 달린 터치스크린 조작은 어려웠다. 카드 정산 주차장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물 샤워밖에 못 한다. 밥도 혼자 먹을 수 없다. 그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온 가족이 제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는데 실수는 늘어나고…. 스트레스가 쌓여 미칠 것 같았어요.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이 늘었고요.” 한 달에 300여만원 정도 나오는 장해연금만이 “죽고 싶은” 현실을 버티는 이유였다. “적어도 50년을 양팔 없이 생활”해야 한다는 절망감은 가족을 위태롭게 했다.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가 “친구들이 ‘너희 아빠는 왜 갈고리야?’라고 물어봤다”고 정원씨에게 말했다. 하굣길 막내를 데리러 간 정원씨를 친구가 본 모양이다. “아빠는 열심히 일하다가 다친 거라 네가 기죽을 건 없다”고 말하면서도 가슴은 찢어졌다. 하지만 안쓰러운 마음은 잠시였다. 온종일 아이들과 있다 보니 짜증이 늘었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첫째는 누적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틱장애 진단을 받았다. “정말 자괴감이 컸어요. 제가 가족에게 방해만 되는 것 같았어요. 다시 병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30년을 비장애인으로 살다 “이제 장애인으로 겨우 3살”인 정원씨는 더 이상 의수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지 않는다.

사고가 난 2019년 1월은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때였다. 정원씨는 놀란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가 손재주가 좋아서 손을 천사님이 빌려간 거야.” 첫째는 아직도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정원씨는 잘 안다. 자신의 팔을 앗아간 것은 천사가 아니며, 또 돌려받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정원씨 사건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케이티서비스남부 지역본부장 김아무개씨는 지난 5월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케이티서비스남부에는 벌금 700만원이 선고됐다. “징역 6개월이 나온 거면 잘 나온 건가요? 판결문이 어렵고 제가 이런 쪽을 잘 몰라서요.” 판결문을 보내주며 정원씨가 물었다. 그의 질문에 아직도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정원씨의 산재 사고에 대해 케이티서비스남부 쪽은 <한겨레>에 “하씨가 사고 지역 인근에 통신주 설치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고, 재판 과정에서 현장검증이 있었는데 하씨가 사용한 것과 같은 기종의 활선경보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당시 사고는 고객사업장 지붕에 있는 사설변압기의 문제였고, 이런 위험은 일반적으로 예견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하씨가 회사 쪽에 요구한 피해보상 조건은 85살까지 하루 4시간 간병이었는데, 이 액수가 9억원 수준이라 피해보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정원씨는 “통신주 설치를 구두로 요구한 바 있고 당시 현장검증을 한 활선경보기는 사고 당시 내가 사용했던 활선경보기가 아니었다. 하루 4시간 간병비는 회사와 민사소송을 하기 위해 변호사와 상의해 제시한 조건이지 병원에서 간병을 받을 때 요구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 더 많은 기사를 담은 인터랙티브 페이지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it.ly/3AIbWzo

■ 통신사 사망 사고 중 68%가 KT…안전 매뉴얼 무용지물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3대 통신사가 발주·수행한 사업에서 2016~2021년 사이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가 32명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케이티(KT)가 22명으로 전체의 68.8%를 차지했다. 케이티 쪽은 경쟁사에 견줘 유선 공사 사업 등이 많은 것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2019년 1월 고압선과 통신선이 함께 걸린 전봇대에서 작업하다 감전을 당한 케이티 자회사 노동자 하정원(가명·34)씨의 사례를 보면 안전장비 미지급 등 인재 요소가 있다는 게 드러난다.

정원씨 사고 이후 케이티서비스남부지회 노동조합은 케이티서비스남부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지난 5월 창원지법 진주지원 형사1단독 한종환 부장판사는 케이티서비스남부 지역본부장이었던 김아무개씨에게 징역 6개월, 케이티서비스남부에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회사 쪽은 ‘하씨는 감전 위험 작업을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절연 보호구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무리한 작업을 했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한 부장판사는 “하씨가 작업한 장소는 절연용 보호구가 필요한 현장”이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전장비도 운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회사 쪽 안전 매뉴얼에는 ‘위험요인 발견 시 관리자에게 보고해 2인 1조 작업 또는 고소작업차 이용’이라고 적시돼 있다. 고소작업차는 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차량이다. 정원씨의 팀에는 팀장 포함 총 14명이 일을 했는데 고소작업차는 1대뿐이었고, 사고 당시 해당 차량은 팀장이 운행했다. 한 부장판사는 “이런 상황에서 하씨가 2인 1조 또는 고소작업차를 요청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판단했다. 실제 2019년 1월 정원씨 팀이 2127건을 작업할 동안, 고소작업차의 운행횟수는 5회에 그쳤다. 정원씨는 “고소작업차 운용 교육을 받은 것은 팀장뿐이었다. 하지만 팀장이 행정 서류 작업을 도맡는 등 일이 많아 지원 요청에 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정환봉 장필수 기자

장필수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