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제빵기사 관련 사회적 합의 이행과 부당노동행위 사과 등을 요구하며 집단단식 중인 전국화학섬유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간부 4명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스피씨(SPC) 본사 앞 농성장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나은경 서울분회장, 김예린 대전 분회장, 박수호 대의원, 최유경 수석부지회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 전역에 호우특보가 내려진 지난 13일 오후,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4명이 지난 4일부터 열흘 째 단식중이던 서울 양재동 에스피씨(SPC) 본사 앞 농성 천막에도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탈진 인도 한 켠에 만든 천막인 탓에 바닥으로 빗물이 계속 흘러들었지만, 폭염 속에 자리를 지켜온 제빵기사들은 “더운 것보다 낫다”며 웃었다.
무기한 단식에 나선 이들은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의 간부들이다. 이에 앞서 임종린 지회장이 회사의 부당노동행위 사과와 사회적 합의 이행, 쉴 권리 보장 등을 내걸고 53일 동안 단식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임 지회장이 단식할 때는 회사가 나와서 대화하는 척이라도 했고 교섭에도 진전이 있었지만, 단식이 끝나니 회사가 잠수를 탔다”(최유경 수석부지회장) 이런 회사의 태도가 지회 간부들을 움직였다. 김예린(34) 대전분회장은 “임 지회장 단식을 전후해 많은 분들이 연대해주고 계시지만 우리가 직접 나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매일 파리바게뜨 가맹점에서 빵을 굽던 이들은 ‘연차휴가’를 내고 단식농성을 하러 왔다. 지회에 보장된 타임오프(노조전임자 근로시간면제)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별 문제 없이 연차휴가를 승인해줄 듯 했던 회사는 휴가 목적이 ‘단식농성’임을 알게 되자, 휴가를 승인하지 않고 출근하라는 공문까지 보냈다. 경기 안양의 한 매장에서 일하는 박수호 지회 대의원은 “매장 사장님께도 말씀 드리고, 관리자와 휴가 사용에 대한 면담까지 마친 상태였다”며 “결근을 문제삼아 징계하거나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려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곡기까지 끊으며 내세운 요구가 ‘자유로운 연차·보건휴가 사용 보장’이라는 점에서 이런 상황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회사는 지난해 3월부터 한달에 7일 ‘휴무’를 모두 사용해야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노동자가 원하는 날 연차를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휴일근로수당(하루 임금의 1.5배)에서도 손해를 보게 된다.
임 지회장의 단식농성 때처럼, 시민들의 ‘연대’는 이어지고 있다. 파리바게뜨를 비롯한 에스피씨 제품을 불매하고 동네빵집을 응원하자는 챌린지가 진행되고 있고, 농성장 근처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도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시민들의 연대 움직임에 대해 회사와 교섭대표노조(한국노총 소속)는 ‘파리바게뜨지회가 불매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 부지회장은 “우리 일터인데다 매출이 줄어들면 고용불안이 생긴다”며 “지회를 탓하지 말고 오죽하면 시민들이 나섰는지 회사도 한번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함께 농성을 시작한 5명 중 1명이 컨디션 악화로 단식을 중단하는 등 서서히 ‘건강이상 신호’가 나타나고 있지만, 4명의 제빵기사는 “버틸만 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일정이 없을 땐 농성장에서 휴대전화로 ‘먹방’ 콘텐츠를 보며 마음의 허기를 달랜다고 했다. 김 분회장은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고 있지만, 죽기 전에 회사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농성장 천막 근처엔 “여기 사람이 죽어간다”는 걸개가 걸려 있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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