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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16살 배달 시작해 ‘사장님’까지…이젠 4mx3m 방에 갇혔어도

등록 2022-07-20 05:00수정 2022-07-20 16:29

살아남은 김용균들: 2022년 187명의 기록
④ 움직이지 않는 몸

사장 호출받고 견인차 몰다 전봇대 충돌
부러진 목뼈 신경 건드려 전신마비
꼬박 6년 입원 뒤 집에 왔지만
간병인에 의지한 채 ‘좁은 방’ 삶
차량 운행 중 전봇대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정민수씨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한달치 약이 비닐봉지 가득 담겨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차량 운행 중 전봇대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정민수씨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한달치 약이 비닐봉지 가득 담겨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터에서 죽음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노동력을 100% 잃은 중장해 1~3급은 1만1533명(2022년 4월 기준)이다. 이 중 20~30대 청년은 187명(1.6%)으로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스물네살의 김용균처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무리하게 일하다가 다쳤다. 청년 산업재해는 오랫동안 살아가야 할 피해자에게도, 그들을 돌봐야 하는 가족에게도 크나큰 고통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산재의 경영자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한겨레>가 ‘살아남은 김용균’ 187명을 기록하며 ‘일터에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을 권리’를 다시 말하는 이유다. <한겨레>는 네 차례에 걸쳐 살아남은 김용균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 마지막은 견인차 운전을 하다 사고로 온 몸이 마비된 청년의 이야기다. 187명의 사고 경위를 담은 별도의 인터랙티브 페이지도 만들었다.

가로 4m6㎝, 세로 3m80㎝. 전신마비인 30대 정민수(가명)씨가 일상을 보내는 거실 겸 침실의 크기다. 9년 전만 해도 민수씨는 그 좁은 사각에 하루 종일 머무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그는 일찌감치 일을 시작했다. 16살부터 음식 배달을 하면서 일당 6만원을 벌어 1년 만에 오토바이를 샀다. 19살 땐 피자집에서 매니저 일을 하며 돈을 모아 차도 샀다. 이른 사회생활이었지만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재밌었죠. 재밌게 살았는데…” 당시를 기억하는 민수씨의 표정은 착잡했다.

도로를 누비던 아이는 20대에 ‘사장님’이 됐다. 24살 때 인천 부평구에 배달대행업체를 차려 치킨집이나 피자집 배달을 대신 했다. 그간 모은 돈에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오토바이 6대를 샀고, 1~2대는 빌렸다. 민수씨가 갖고 있던 오토바이 1개까지 합치면 8~9대 규모. 그는 배달을 하며 알던 동료 등을 포함해 20여명의 직원을 뒀다. “배달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까, 사무실에 휴게실도 마련해두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어요.” 민수씨는 좋은 사장이 되고 싶었다. 당시 그의 한달 수입은 700만원 남짓이었다.

10대 시절부터 한몸처럼 움직였던 오토바이에서 내려온 것은 9년 전이다. 민수씨는 27살 때 배달 사업을 이어받겠다는 후배에게 가게를 넘겼다. 하지만 도로를 떠나진 못했다. 2013년 한 자동차공업사에서 회사 소유의 견인차를 몰기 시작했다. 계약직으로 일한 민수씨의 월급은 230만원 수준이었다. 벌이는 줄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지시받으며 일하고 싶지 않아 프리랜서(계약직)로 일한 것도 있어요.” 자기 소유 견인차로 일하는 기사들은 월 400만원 남짓을 벌어갔다. 민수씨도 경험을 쌓은 뒤 돈을 모아 견인차를 한 대 마련해볼까 생각했다.

도로를 일터로 삼았던 11년의 삶이 마무리된 것은 2013년 5월13일이었다. “타이어가 터져서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하여튼 견인차를 몰고 가다가 전봇대를 박았어요.” 단 두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고로 민수씨는 온몸이 마비됐다.

그날을 민수씨는 좀처럼 기억해내지 못한다. 공업사 사장의 연락을 받았다. 여느 날처럼 견인차를 몰았다. 저녁이었는지 새벽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사고 원인도 생각나지 않는다. 타이어가 터졌던가, 다른 이유가 있던가. 다만 차가 전봇대에 부딪힌 것만 분명하다. 구급차에 실려 갔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는 수술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몇분 뒤 더 큰 병원으로 옮겨 대여섯 시간 대기 뒤 수술을 받았다. 목이 부러진 상태였다. 살아남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의학용어를 모르니까 정확하진 않지만 경추 어디가 다치고 이런 내용이 진단서에 있더라고요. 저는 목뼈가 몇 군데 부러졌던 거예요. 부러져서 신경을 건드린 거죠.” 사고가 난 뒤 꼬박 6년을 넘게 입원을 해야 했다.

그나마 산재 인정받았지만…
박봉 탓 휴업급여 200만원 남짓뿐
간병비에 비급여 치료까지 빠듯
“장해 1급 받아도 생계난 뻔해”

민수씨가 공업사와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였기 때문에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채 자기 소유의 견인차로 일하는 운전기사들은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노동자가 일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고용계약 없이 위탁 등의 방식으로 일해온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오랜 기간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코로나19 등으로 배달노동이 급증하자 국회가 산재보험법의 전속성 요건을 폐지해 배달 등 플랫폼노동자를 비롯한 63만명이 추가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설 견인차 운전기사는 여전히 그 대상이 아니다. 방과후 교사, 전세·셔틀버스 운전기사 등도 마찬가지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는 25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산재보험 가입자는 80만~90만명 정도다. 최소 150만명 이상의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며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까지 고려하면 그 규모는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정민수씨는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환자용 전동 침대와 휠체어, 스마트폰을 꼽았다. 민수씨 침대 가장 가까운 곳에는 필요한 것들이 바로 손에 닿을 거리에 놓여 있다. 백소아 기자
정민수씨는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환자용 전동 침대와 휠체어, 스마트폰을 꼽았다. 민수씨 침대 가장 가까운 곳에는 필요한 것들이 바로 손에 닿을 거리에 놓여 있다. 백소아 기자

민수씨도 운전직은 산재 인정을 받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었다. 다행히 산재 처리가 됐지만 이번엔 적은 월급이 문제였다. 요양(치료) 때 받는 휴업급여는 월급의 70% 수준이라 200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전신마비인 민수씨에겐 종일 간병이 필요해 한달에 270만~280만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 나오는 간병비 보조금은 173만원뿐이다. 민수씨는 나머지 100만원가량을 200만원의 휴업급여를 쪼개 내야 했다. 생활비가 항상 부족한 이유다. 하지만 민수씨는 배달하다 다쳤지만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동료를 생각하면 이마저도 고맙다고 말한다. 배달일을 하는 동생들은 대부분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었기에 크게 다쳐도 알아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민수씨는 요양 중이기 때문에 아직 장해등급을 부여받지 못했다. 받은 월급이 적어 장해 1급으로 분류된다고 해도 생계는 어려울 것이다. 24시간 간병을 받아야 하는 그가 일터로 돌아갈 수도 없다. 투룸 구조인 민수씨의 아파트 작은방에는 간병인이 하루 종일 머물고 있다. “저는 99.9%로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사회복귀는) 1%도 생각 못 하니까.”

※ 더 많은 기사를 담은 인터랙티브 페이지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it.ly/3AIbWzo

■ 전속성 폐지됐지만…아직 남은 산재보험 사각지대

원칙적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노동자가 일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된다. 하지만 고용 계약 없이 위탁 등의 방식으로 일해온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오랜 기간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배달플랫폼 노동자다. 이들은 두 곳 이상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한 사업장에서 월 소득 115만원 이상을 벌거나 93시간 이상 일을 해야 하는 ‘전속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산재보험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코로나19 등으로 배달 노동이 급증하면서 ‘라이더’ 등의 산재보험 미적용 문제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국회는 지난 5월29일 전속성 요건을 폐지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고용노동부는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으로 63만명이 추가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견인차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정민수(가명·36)씨의 동료들 역시 사각지대에 해당한다. 민수씨는 공업사와 근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산재 보험이 적용됐지만, 사설 견인차 운전기사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간병인, 가사노동자, 방과후 교사, 전세·셔틀버스 운전기사 등도 마찬가지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한겨레>에 “현재 특수고용노동자 숫자는 25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중 산재보험 가입자는 80만~90만명 정도다. 최소 150만명 이상의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며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까지 고려하면 그 규모는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속성은 폐지됐지만 산재보험 적용 직종이 너무 제한적이다. 전면적인 직종 확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환봉 김가윤 기자

※ <한겨레>의 '살아남은 김용균들'은 청년 산재 노동자의 고통과 산재 보험 제도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한 목적의 기획 기사입니다. 어렵게 용기를 내 인터뷰에 응한 청년 산재 피해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겨레> 누리집과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전송되는 기사의 댓글창을 닫습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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