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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하청노동자는 원청과 대화할 수 없는 ‘법’…대우조선 사태 꼬았다

등록 2022-08-01 15:27수정 2022-08-02 02:47

현대위아 광주공장 ‘비공식’ 교섭 사례
‘불법파견’ 판례 없는 조선업선 어려워
“사용자 범위 확대하는 법 개정 필요”
21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제1도크에서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임금인상과 노조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1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제1도크에서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임금인상과 노조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화라도 하자고 했는데 원청(대우조선해양)이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51일 동안 파업을 했던 김형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은 최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원청과의 대화’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당시 조선하청지회가 내건 핵심 요구였다. 조선업 불황 때 줄어든 임금을 올려달라는 요구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하청업체들에 지급하는 기성금(도급 단가)을 늘려야 가능했던 탓이다.

그런데 원청 사용자와 하청노동자 교섭은 애초 불가능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 26일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등이 주최한 ‘조선산업 사내하청 문제 진단 및 해법 모색’ 토론회에서 현대차그룹의 차량 부품 계열사인 현대위아의 광주공장 사례가 언급됐다. 현대위아 광주공장 사내 하청노동자인 정준형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교육위원장은 토론회에서 “지난 2015년 ‘금속노조 광주자동차부품사비정규직지회’(현대위아 광주공장 하청노조)가 원청인 현대위아와 비공식 교섭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그 뒤로도 원청과 임금·단체협상(임단협) 타결안을 마련했다”며 “비공개 형태이지만 원·하청 노사 공동 단체교섭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형식적으론 하청업체와 협상했지만, 실질적 임금인상 조율은 원청 사용자와 했다는 설명이다.

현대위아가 하청 노동자와 단체교섭에 응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우선 현대·기아차의 직서열 공급방식(Just in Sequence)을 들었다. 완성차 생산공정에 맞춰 필요한 부품을 실시간으로 부품 업체에 발주해 납품받는 방식이라, 파업 등으로 현대위아 공장에서 부품 생산이 중단되면 단시간 내 완성차 생산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더구나 지난해 대법원은 현대위아의 평택공장 하청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직접고용요구) 소송에서 ‘계약상 사용자는 하청업체지만 실질적 지휘·감독자는 현대위아’라며 이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현대위아가 작업배치를 비롯한 하청노동자 노무 전반을 관리한 점 등을 들어, 파견 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는 제조업의 직접 생산 관련 업무에 노동력을 ‘불법 파견’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판결은 사내 하청노동자에 의존해 부품을 생산하던 현대위아가 하청노동자와의 대화 자리에 나갈 수밖에 없는 압박 요인이 됐고, 하청노동자들 역시 수년이 걸리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것보단 당장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실익이라고 판단했다. 정준형 위원장은 “(원청) 사 쪽에 (하청노동자들이) 소송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대위아 광주공장 사례는 비공식 교섭이라, 법으로 이행을 담보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동조합법)에 따라 체결된 단체협약은 지키지 않으면 처벌이 뒤따르지만 비공식 교섭을 통한 합의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현대위아 쪽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단체교섭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정준형 위원장은 “비공개 교섭이라 내용을 공개하지 못했고 합의서도 하청업체와 쓸 수밖에 없었다”며 “법 제도 개선 없이는 원청 사용자가 공개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동차 산업과 달리  ‘불법 파견’ 인정 대법원 판례가 나온 적 없는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이러한 방식의 교섭을 진행하긴 사실상 어렵다. 선체 각 부분을 잘게 쪼개 각각의 하청업체에 작업을 맡기는 조선업은 자동차 산업과 다르게 원·하청 노동자 공동작업 비중이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원청 사용자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게 하기 위해선,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정의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라도 노동조건 등 결정에 실질적 영향력이 있는 자”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조선업 3사의 경우 자동차업계처럼 불법파견으로 패소한 판례도 없고, 하청노동자들을 방치한 지 오래돼 원청 스스로 단체교섭에 나설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며 “노동조합법을 개정해 원청 사용자가 단체교섭에 임할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애림 서울대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도 “과거 삼성전자서비스 등 하청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 자리에 앉기까지 극단적으로 투쟁해야 했고 어렵게 끌어낸 원청사용자와의 합의도 이후 원청이 뒤집은 사례가 있다”며 “이제는 노조법을 개정해 불확실성 없이 공개적으로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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