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참여연대 등 노동·종교·법률·시민단체 대표와 회원들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일명 노란봉투법)운동본부' 출법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 3권을 무력화하는 손배 가압류 금지와 하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노동자들의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소송(손배소)을 막자는 취지의 ‘노란봉투법’이 이번 정기국회 쟁점 법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관련 법안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경영계는 “불법 파업까지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는 법”이라고 비판하지만, 노동계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협소했던 합법적 쟁의행위의 범위를 헌법과 국제 기준에 맞춰 정상화하자는 취지라고 반박한다.
19일 현재 국회에 발의된 쟁의행위 손해배상 소송 관련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은 모두 8개다. 지난달과 이달 초 더불어민주당 강민정·강병원·양경숙·이수진·임종성 의원이 5개를,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1개를 발의한 데 이어 지난 15일과 16일 각각 정의당 이은주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합법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히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추가로 발의했다.
이들 법안은 공통적으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면책 범위를 확대하는 안을 담고 있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이 법(노동조합법)에 의한’ 파업일 경우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면책하고는 있는데, 그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2011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노동조합법에 의한 파업의 범위를 △단체교섭의 주체가 △‘근로조건’의 개선에 한해 △사용자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며 △조합원 찬반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모두 지킨 경우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 노조가 회사의 정리해고 결정에 반대해 파업에 나섰다가 158억원 손배소를 당한 사건이나, 2012년 현대차 사내 하청 노조가 원청인 현대차를 상대로 농성을 벌였다가 20억원 손배소를 당한 사건 등은 법이 정한 ‘근로조건’ 및 ‘단체교섭의 주체’, ‘쟁의행위의 방법’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불법 쟁의행위로 간주됐다.
노웅래 의원안을 제외한 7개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모두 쟁의행위 면책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은주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손해배상 면책 범위를 현행 ‘이 법(노동조합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에서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확대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임종성 의원안은 노조법이 정하는 노동쟁의의 목적인 `근로조건'에 △정리해고 반대 △원청 사용자의 교섭 의무를 두고 노사 이견이 있을 때 등을 추가하도록 했다. 판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파업에 한해서만 손해배상을 면책하던 것을 쟁의행위 전반으로 확대한 것이다.
발의된 개정 법안들은 대신 ‘폭력이나 파괴를 주되게 동반한 경우에는 면책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을 달고 있다. 쟁의행위의 범위를 기존보다 넓히되 그로 인해 폭력·파괴행위까지 면책받지는 않도록 예외를 둔 것이다.
개정안들은 노조활동을 합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원청 업체의 사용자성을 현재보다 확대하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강민정·양경숙·노웅래·이은주 의원이 발의한 4개의 개정안에 해당 내용이 담겼다.
현행 노동조합법에서 ‘사용자’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등으로 정의되며 통상 노동자와 직접 고용관계를 맺은 사용자로 해석된다. 때문에 원청업체는 하청노동자의 실질적인 근로조건 개선 권한을 쥐고 있음에도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하청 노조와의 단체교섭 의무를 피해왔다. 양경숙 의원 등은 ‘사용자’에 단서조항을 달아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노동조합 활동에 실질적 지배력·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도 사용자로 보도록 개정안을 발의했다.
원청업체가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가 되면, 하청 노동조합과 단체교섭 의무가 생긴다. 하청 노조가 사업장 점거와 같은 과격한 투쟁을 벌이지 않아도 원청과 근로조건을 놓고 협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대우조선 하청 노조나 하이트진로 화물기사 노조 모두 원청업체가 대화를 거부해 점거 농성이 시작된 경우로, 원청과의 교섭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면 ‘불법 파업’도 크게 줄어든다.
개정안들은 파업 손해의 범위를 엄격하게 따지거나, 손배 청구액의 상한을 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에도 제한을 가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규모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 상한액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이은주안 등) ‘불법행위일지라도 노동조합에 의해 계획된 경우면 노동조합 임원과 조합원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한다’(강병원안 등) 등이 대표적이다. 재계가 ‘재산권 침해’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지점이다.
이런 조항이 개정안에 포함된 건 그동안 기업의 손배소가 실질적인 손해 회복보다 노동자 개인에게 감당하지 못할 액수의 손배소를 제기함으로써 노조 활동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노조 간부와 개인 조합원 88명을 상대로 40억원 규모 손배소를 낸 유성기업은 검찰 수사를 통해 내부 문건에 “수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면 소송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일반 조합원의 압박감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기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다만 손해배상 청구 범위 제한을 입법으로 규율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민법)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노사의 자율 해결이 난망한 상황에서 입법으로 기업의 제소권을 제한하는 것은 유의미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노동법)는 “(개정안은) 합법적 쟁의행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손해배상 제한으로 가면 해결책이 없다”며 “손해배상을 남발하는 관행은 법원이 개인의 행위와 파업 손해 간의 인과관계를 보다 엄격하게 심리하도록 민사소송법을 개정하는 등 다른 대안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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