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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쌍용차 손배소’ 집단 트라우마 14년째…“또 동료 잃을까 무서워”

등록 2022-09-26 08:00수정 2022-09-26 15:26

‘손배소 집단 트라우마’ 추진한
쌍용차지부 전 사무국장 김정욱씨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김정욱 전 사무국장이 지난 20일 오전 평택역 인근 민주노총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대화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김정욱 전 사무국장이 지난 20일 오전 평택역 인근 민주노총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대화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매일 61만8251원. 2009년 77일간의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과 관련해 국가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간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노조 앞으로 쌓이는 지연이자다. 2016년 항소심 재판부가 쌍용차지부 40여명에게 11억2800여만원 배상 판결을 내린 뒤 대법원에서 사건이 장기 계류 중인 가운데, 지연이자를 포함한 손배액이 25일 기준 29억3600만원까지 불어났다. 항소·상고에 든 인지대 2천여만원과 패소 시 지불해야 할 원고 쪽 법률비용 약 3천만원도 있다. 이와 별도로 쌍용차 사쪽이 금속노조를 상대로 낸 소송의 1·2심 배상액 33억1140만원과 지연이자 63억1400만원을 합친 액수도 96억2540만원에 이른다.

쌍용차의 정리해고 반대 파업은 ‘근로조건에 관한 쟁의행위’가 아닌 ‘경영상 결정에 반대하는 쟁의행위’인 불법 파업으로 간주돼 손배소 면책을 받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빚만 느는 싸움에 지친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은 지난달 말 대법원에 집단 트라우마 진단서를 냈다. “2009년 파업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재판 스트레스로 악화됐다.” 24명 조합원 진단서의 공통점이었다.

최근 기업들의 무차별적인 쟁의행위 손배소 관행에 제동을 거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도입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란봉투 캠페인의 시초였던 쌍용차지부 노동자들은 아직도 소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송할 권리’를 이유로 국가와 회사가 개시한 손배소는 노조와 노동자를 어떻게 빚더미에 앉게 만드는가. 집단 트라우마 진단을 주도한 김정욱 전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을 지난 20일 <한겨레>가 민주노총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기간 손배소에 우울·압박감

김씨를 비롯한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 회사의 정리해고 결정 이후로 9년을 복직 투쟁한 끝에 2018년 평택공장으로 돌아갔다. 동료들의 박수를 받으며 공장 문턱을 넘은 김씨와 동료들은 “삶이 조금은 순탄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손배소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동자들을 여전히 과거에 묶어뒀다.

경찰이 낸 손배소 항소심에서 배상이 인용된 40여명 중 한명인 김씨는 손배소의 고통이 ‘허리디스크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내면에 계속 요동치다가 특정한 자세를 취하면 확 고통이 덮치거든요. 손배소도 일상을 살다가 어느 날 불쑥 찾아와요. 도저히 갚을 수도 없는 그 돈이요….”

김씨는 2009년 이후로 자기 명의의 통장을 쓰지 않는다. “언제 법원 선고가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통장에 돈을 넣어두는 게 불안하다고 했다. 월급을 모으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이 그에게는 동떨어진 일상이다. “행여라도 (배상 판결이 나서) 자식들한테 빚이 대물림될까 봐, 그게 제일 불안합니다.”

경찰, 국가폭력 인정하곤 소취하 ‘뒷짐’

경찰은 2009년 파업 당시 테이저건과 최루액 등을 동원해 조합원을 과잉진압한 작전이 ‘국가폭력’(2018년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조사)이었음을 뒤늦게 인정했 다. 민갑룡 전 경찰청장이 사과했지만 손배소는 ‘대법원 판단을 받겠다’며 취하하지 않았다. 회사도 소극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회사에도 소 취하를 요구했더니 ‘정부도 안 한 걸 회사가 할 명분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손배소는 김씨와 동료들을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2019년 복직 후 첫 월급 176만원의 절반인 91만원을 경찰이 가압류 (본안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에 채무자 재산을 묶어두는 것)했다. 2009년 파업 때 집과 퇴직금 1천만원을 가압류 당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김씨와 동료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과 법무부를 찾아가고,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가압류는 해제됐지만 ‘소 취하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2018년 이용선 시민사회수석 발언)던 정부는 소득 없이 임기를 마쳤 다. 지난 3월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새 정부가 출범했다. 김씨는 다시 바빠졌다.

“조합원(손배 당사자)들이 요즘 부쩍 자주 전화해서 ‘재판 어떻게 됐냐’고 하더라고요. 희망적인 얘기를 못 해주니까 저도 마음이 힘듭니다.” 김씨는 “결국 우리 몸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14년째 이어진 소송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 알리자고 조합원을 설득했다. 진단 결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21명, 혼합형 불안 및 우울 장애가 3명이었다. 이들은 “음주로 불안감을 해소하려 노력했으나 별 호전이 없었”고, “재판 관련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심한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공포감 수준으로 겪고” 있었다.(50대 한 참가자의 진단서 내용)

“배상판결로 동료 잃을까 두려워”

김씨는 대법원에서 끝내 배상 선고가 나와 동료들이 무너지고 내분이 일어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은 소송을 당한 이들이 모두 연대해 돈을 갚도록 돼 있다. “혹시라도 대법원 선고가 떨어지면 ‘누가 얼마를 더 갚을 거냐’ 그런 싸움이 또 우리들 안에서 생길 수 있잖아요.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의 분노가 폭발해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고요. 저희가 사람을 그렇게 많이 잃다 보니까 되게 겁나더라고요.” 쌍용차 정리해고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돌연사한 조합원과 그 가족은 30명에 이른다.

그는 2003년 두산중공업의 손배소·임금가압류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달호씨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손배소가 2009년 쌍용차지부에도, 2022년 대우조선 하청지회에도 날아들었다. “손배소로 노동자를 탄압하고 심지어는 죽게까지 만드는 일이 계속 반복되잖아요. 이제 끝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김씨가 말했다.

13년째 결론 안 나는 소송…33억 배상액이 96억으로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소송 재판이 길어질수록, 노동조합이나 조합원 개인이 짊어져야 할 재정적 부담은 크게 무거워진다. 손해배상을 폭넓게 인정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상고심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손해배상금을 내지 않아 지연이자가 쌓이는데다, 소송을 위해 법원에 내는 인지대, 변호사 비용 등도 지불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이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협상 당시 핵심 요구를 포기하면서까지 손해배상소송 철회를 약속받으려 한 이유이기도 하다.

2009년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노조)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반발해 옥쇄파업을 한 이후, 2009년 경찰에 이어 2010년 쌍용자동차도 노조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내 13년째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쌍용차가 파업 당시 조업 중단에 따라 100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 2013년 1심 재판부는 노조에 33억114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소장송달일인 2011년 1월12일부터 선고일인 2013년 11월29일까지 손해배상액에 대해 연 5% 이율의 지연이자를, 선고 다음날인 2013년 11월30일부터는 연 20%의 지연이자를 내라고 판결했다. 2019년 항소심 재판부도 같은 금액의 손해배상을 선고하면서, 다음날인 11월16일부터 연 20%의 지연이자를 내도록 했다. 노조가 2011년 1월12일부터 올해 9월25일까지 추산한 지연이자만 약 63억1400만원에 이른다. 대법원이 항소심 재판부의 배상액을 그대로 확정하면 배상액에 지연이자까지 더해진 총채무는 9월25일 기준 96억2540만원(노조 추산)인 셈이다.

쌍용차 손배소 사건을 대리하는 서범진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현행 노동조합법 손해배상 면책 범위를 넓혀 쟁의행위를 이유로 수년의 장기 소송전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불가피하게 소송에 들어가더라도 사쪽이 주장하는 피해를 법원이 더 엄격하게 입증하도록 요구해야 하는데 쌍용차의 경우 둘 다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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