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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만리재사진첩] ​“엄마가 현대·기아차 정규직이 되는 거야”

등록 2022-10-27 17:43수정 2022-10-27 17:54

기아차 화성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박찬진(41, 맨 왼쪽)씨가 27일 낮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딸에게 축하 뽀뽀를 받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현대·기아차의 사내하청 노동자 400여명에 대해 불법 파견을 인정하고 이들을 회사가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기아차 화성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박찬진(41, 맨 왼쪽)씨가 27일 낮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딸에게 축하 뽀뽀를 받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현대·기아차의 사내하청 노동자 400여명에 대해 불법 파견을 인정하고 이들을 회사가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엄마가 정규직이 되는 거야.”

대법원이 현대·기아차의 사내하청 노동자 400여 명에 대한 불법 파견이 인정된다며 이들을 회사가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27일, 기뻐하는 사람들 사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일곱살 딸에게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박찬진(41)씨가 감격에 찬 표정으로 오늘의 판결에 담긴 뜻을 설명했다.

현대·기아차 노동자와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현대·기아차 노동자와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대법원은 이날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271명,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59명이 회사를 상대로 각각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년이 지난 일부 원고를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의 정규직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는 한편, 원고들이 받지 못한 정규직 임금과 사내하청업체 임금 사이의 차액 총 107억여 원에 대해서도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2년의 싸움 끝에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얻어낸 박씨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잦았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가 이날을 맞기까지 자동차 업종의 간접고용 해소를 20여년간 요구하며 투쟁해온 선·후배, 동료 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2013년 5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차체의 오른쪽 트림 러기지를 맡은 정경우(왼쪽)씨는 정규직이고, 오른쪽을 담당하는 김만진씨는 사내하청 노동자다. 서로 작업하기 편하도록 두대의 차를 나눠서 고정핀 6개씩을 각각 좌우에 꽂는다. 업무와 외관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기 어렵다. 김씨는 “가끔 같이 술도 먹는데 자연스레 비교될 수밖에 없지 않나. 일부러 임금이나 하는 일 같은 거 신경 안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3년 5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차체의 오른쪽 트림 러기지를 맡은 정경우(왼쪽)씨는 정규직이고, 오른쪽을 담당하는 김만진씨는 사내하청 노동자다. 서로 작업하기 편하도록 두대의 차를 나눠서 고정핀 6개씩을 각각 좌우에 꽂는다. 업무와 외관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기 어렵다. 김씨는 “가끔 같이 술도 먹는데 자연스레 비교될 수밖에 없지 않나. 일부러 임금이나 하는 일 같은 거 신경 안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자동차 업계의 불법 파견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불거져나왔다. 자동차 조립 공장에선 자동차 회사 소속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일한 자동차 조립 공장 현장을 두고 ‘오른쪽 바퀴는 정규직이, 왼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끼운다’고 표현했다. 자동차 회사의 지휘·감독 아래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동일한 업무를 했지만 신분과 처우는 극명하게 갈렸다.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했던 윤주형 열사는 2007년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뒤 2008년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다 2010년 4월 해고됐다. 윤씨는 해고 뒤 형사 민사 재판의 벌금 250만원을 내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를 겪다가 201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2년 4월 해고노동자 사진 기획 취재에 응했던 윤주형씨(왼쪽 사진)는 이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른쪽 사진은 2015년 다시 찾아간 그의 묘소이다. 박종식 기자
2012년 4월 해고노동자 사진 기획 취재에 응했던 윤주형씨(왼쪽 사진)는 이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른쪽 사진은 2015년 다시 찾아간 그의 묘소이다. 박종식 기자

윤씨의 동료 김수억씨는 이후 비정규직 동료들과 함께 불법파견 시정과 사용자 처벌을 요구하며 청와대, 대검찰청, 고용노동청 등으로 향했다. 김씨와 동료들은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며 청사 로비를 점검했고 도로를 막아섰다. 현대차에서는 최병승씨가 노동조합 활동에 앞장서며 본격적으로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했다. 윤 열사가 세상을 떠난 해에 정규직 해고자 이상욱씨가, 2014년에 사내하청 해고자 김수억씨가 복직했다. 검찰은 김수억씨 등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고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그리고 다음 달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이왼쪽)이 2019년 1월 18일 청와대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이왼쪽)이 2019년 1월 18일 청와대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금속노조는 이날 대법원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앞으로 줄줄이 소송이 이어지는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만 해도 현대기아차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현대제철, 현대제철순천단조, 포스코, 한국지엠, 현대위아, 아사히글라스, 금호타이어, 기광산업 등에 이른다. 이들은 20년 넘게 이어진 불법파견이 아직도 살아있다며 이 문제를 완전히 매듭짓기 위해 ‘고용노동부의 신속한 조사와 행정조치’, ‘검찰의 엄중 처벌’, ‘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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