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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체 게바라 아는데, 왜 이재유 모르나”…항일노동운동가 기리는 이유

등록 2022-11-16 20:03수정 2022-11-17 00:39

[짬] 이재유선생기념사업회 준비위 최승회 위원장

최승회 위원장이 지난 14일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최승회 위원장이 지난 14일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재유(1905~1944)는 혁명가 중의 혁명가다. 그런데 체 게바라는 알지만 이재유는 모른다. 체 게바라는 있는데 왜 이재유는 없는가.”

지난달 2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항일노동운동가 이재유 선생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 출범식’에 참석한 손옥희씨의 외침이다. 일제 강점기에 이재유와 함께 노동운동을 한 이관술 선생 유족인 그는 역시 이재유의 노동운동 동지인 이효정 선생 후손인 박진수씨와 함께 250여 명이 참여한 준비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내년 5월1일 이재유 선생이 옥고를 치른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사업회를 공식출범할 예정인 준비위의 최승회(64) 위원장을 지난 1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이재유 추모 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이하 연구회) 이사장도 6년째 맡고 있다.

항일 노동운동가이자 경성트로이카 지도자 이재유의 체포를 전한 일제 어용신문 <경성일보>의 호외. ‘집요하고 흉악한 조선공산당을 마침내 괴멸시키다’라는 제목이 달렸다. <한겨레> 자료사진
항일 노동운동가이자 경성트로이카 지도자 이재유의 체포를 전한 일제 어용신문 <경성일보>의 호외. ‘집요하고 흉악한 조선공산당을 마침내 괴멸시키다’라는 제목이 달렸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재유 연구자이자 준비위에도 참여한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연구서에서 “이재유는 1930년대 좌익운동의 신화 혹은 당대 최고의 혁명가”라고 불렀다. 1980~90년대와 비슷하게 1920~30년대는 원산 총파업이나 평양고무공장 총파업에서 보듯 식민지 민중해방을 지향하는 대중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는데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이재유라는 것이다.

1905년 함남 삼수군에서 난 이재유는 ‘4차 조선공산당’과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으로 모두 12년 옥고를 치르고 해방 한 해 전인 1944년 청주보호교도소에서 옥사했다. 그는 1차 투옥에서 풀려난 1933년 당 재건을 위한 방도로 트로이카(세마리 말이 끄는 마차란 뜻) 운동 방식을 제안했다. 운동가들이 이른바 ‘국제선’ 등 외부방침에 따라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이끌려 하지 말고, 직접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들과 주체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맺고 트로이카 조직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활동하라는 것이다. 이 제안에 따라 김삼룡 등 여러 운동가가 노동 현장에 들어가 조직 사업을 했고 이런 활동은 1930년대 초 서울의 주요 기업에서 일제의 엄혹한 감시망을 뚫고 연쇄 파업이 일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재유는 2006년 독립운동가 서훈도 받았다.

최 위원장은 연구회가 이재유 기념사업의 총대를 멘 데는 준비위 출범일에 안타깝게 별세한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고인은 2007년부터 민주노총 전·현직 상근간부와 현장 활동가들과 함께 세계노동운동사 공부를 해왔으며 이 모임 수료자 150여 명 중 절반가량이 9년 전 발족한 연구회에 참여하고 있다. 연구회는 2015년 처음으로 이재유 70주기 추모식을 열었고 그 뒤로도 매년 10월26일에 일부 회원들이 추모식을 해오고 있다. “김금수 선생께서 (이재유가) 1930년대 노동운동의 신화적 존재인데 아는 사람들이 없으니 우리라도 추모해 그분의 뜻을 이어가자고 처음 제안해 70주기 행사를 했죠. 그 뒤로도 선생님은 추모 행사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하셨어요.” 그는 “이재유 선생의 후손이 없고, 묘지도 자료가 없어 찾지 못했다. 선생의 부인이자 경성트로이카 동지였던 박진홍이 옥중에서 낳은 아들이 있었지만 병약해 2년 만에 죽었다”고 덧붙였다.

고 김금수 노사연 명예이사장 주도
2007년부터 세계노동운동사 공부
“1930년대 노동운동의 신화적 존재”
두 차례 12년간 수감 1944년 옥중사
2015년 70주기 때부터 추모식 열어

내년 5월 옛 서대문형무소 공식 출범

최 위원장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현대제철(옛 인천제철)에서 쫓겨나 민주노총 상근 활동 등을 해오다, 해고 26년 만인 2013년에 복직의 꿈을 이뤘단다. 4년 전 정년 퇴임한 그는 지금은 생활을 위해 비정규 노동자로 살고 있다. 1977년 성균관대 경제학과에 들어간 그는 강의실에서도 무전기를 들고 진을 치는 사복경찰들을 보고 유신의 폭압적 정치 현실에 눈 떠 운동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했다. 민주노동당 창당 때는 정치국장도 지냈지만 10년 전 옛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를 보고는 화가 많이 나 “다시 합치기 전에는 당적을 갖지 않겠다”고 결심했단다.

그는 선배 노동운동가 이재유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뭐냐는 질문에 “1920년대 조선공산당을 만든 수많은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있지만 선생은 노동자들에게 뿌리내리고 그들과 함께 조직을 만들고 투쟁한 거의 유일한 활동가”라고 답했다. “선생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혹한 상황에서 치열한 삶을 사셨어요. 그 치열함의 바탕에는 노동자 그리고 민중에 대한 애정과 노동대중의 주체성과 자발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죠. 그래서 파벌 중심의 운동과 국제선 권위를 내세우는 운동가들에 대해 비판적이었죠. 노동운동을 민족해방운동이라는 차원에서 보고 전체 민중과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한 점도 인상적이죠.”

‘이재유를 기려 한국 노동운동 발전에 기여하자’는 말도 준비위 출범식 때 나왔다고 하자 그는 현재 노동운동이 정파에 따라 분리되면서 융합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지금도 노동운동 진영이 통일이나 민족 문제를 중시하거나 노사관계나 계급을 중시하는 그룹으로 나뉘어 발전하지 못하고 있어요. 민족과 계급 모순이라는 우리 사회의 기본문제를 둘러싼 견해차가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간극이 심해지고 있어요. 치열한 투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 선생의 삶을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선생은 ‘공산주의 사회를 만드는 데 왜 조선의 독립이 필요한가’라는 일제 검사의 물음에 ‘독립이 되지 않는다면 설령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고 해도 일본적 공산주의 국가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죠. 그 시절 사회주의자들과 다르게 민족혁명적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했던 분입니다.”

앞으로 노동자들이 이재유의 삶을 배워 교훈을 얻도록 강연도 마련하고 누리집도 꾸미겠다는 최 위원장에게 마지막으로 이재유가 지금 살아있다면 뭘 했을지, 물었다.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전국 조직체를 만드는 데 힘썼을 겁니다. 정당이 아니더라도요.” 그는 “한국 노동운동이 사회적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 심화라는 새로운 환경과 도전에 잘 대처하고, 분파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현장 활동이 살아나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라도 현장 중심 투쟁을 강조하며 조선의 독립과 노동해방을 위해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이재유 선생을 기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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