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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혹시 협력업체 갑으로부터 갑질당한 것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소 가능한지 여쭐 수 있을까요? ㅠㅠ (2023.1. 닉네임 류류)
A. 1월2일 새해 첫 근무일 카카오톡 상담(gabjil119.com)이 협력업체 ‘갑’, 즉 원청회사 담당자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질문이네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원청 갑질’은 ‘노답’입니다. 해결 방법 거의 없어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근로기준법에 ‘직장에서’ 갑질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거든요. 원청회사와 류류님 회사는 같은 ‘직장’이 아니기 때문에 법 적용이 안 됩니다. 무슨 ‘개 풀 뜯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법이 그래요. 개똥같이. ㅠ
공공기관 주무관이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개인 심부름 시키고, 마음에 안 드는 직원 퇴사 종용하고, 안전관리자 교육 대리 수강하게 하고, 행사장에 피아노와 의자 나르게 하는 등 갖은 제보가 있었습니다. ‘공공분야 갑질 근절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사적이익 요구와 비인격적 대우로 국민신문고에 신고할 수 있었지만, 피해자는 보복이 두려워 참아야 했습니다.
형식상으론 사기업인 하청업체 노동자도 원청 회사에 신고할 수 있지만, 조폭 두목에게 ‘삐끼’ 갑질을 신고하는 격이라고 할까요?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도 “원청 소속 근로자는 하청 소속 근로자에 대하여 법상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는 인정되기 어렵다”고 합니다. 원청 회사가 ‘정의의 사도’가 돼 직원을 잡아다 족치고, 하청 직원을 보호할까요? 신고 사실을 통보받은 하청 사장이 직원을 불러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야, 너 미쳤어? 회사 망하는 꼴 보려고 그래?” 신고자가 무사히 회사 다닐 수 있을까요?
혹시 류류님, 파견직으로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시나요? 파견이 허용된 32개 업종이고, 등록된 업체라면 ‘갑질금지법’이 적용됩니다. 원청에 신고할 수 있고, 비밀 유지,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를 요구할 수 있어요. 류류님 일하는 곳이 제조업 등 파견 금지 업종이거나 노동부에 등록되지 않은 ‘불법 파견’이라면 일한 날부터 원청에 정규직 전환 의무가 발생합니다.
지난 12월 직장갑질119 설문조사(직장인 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보면, 직장인 87.6%는 원청 갑질이 ‘심각하다’, 89.6%는 하청노동자 처우가 ‘정당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정안은 “직장과 이해관계가 있는 도급인, 고객 등은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지위를 이용하여”를 추가해 ‘제3자 괴롭힘’을 금지시키는 내용인데, 국회 서랍에 처박혀 있습니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 얼굴에 물을 뿌린 일명 ‘물벼락 갑질’. 갑 중의 갑, 슈퍼 갑인 원청의 갑질은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요? 새해에는 원청 갑질에 시비 좀 걸어봅시다.
아참, 원청 직원이 류류님께 공개 장소에서 폭언을 반복했다면 형법상 모욕죄로 신고할 수 있어요. 모욕죄는 공소시효가 짧아 6개월 안에 신고해야 하고 벌금도 최대 200만원밖에 안 되지만, 회사 떠나면서 가해자 뒤통수 한 대는 갈겨줄 수 있겠죠?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직장갑질119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노동권·인권 침해에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