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검찰 출신으로 첫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는 학교폭력 가해자인 아들의 징계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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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사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상태입니다. 현재 가해자인 상사는 “신고한 사람 누군지 다 안다. 변호사 사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는데, 가해자가 저에 대해 명예훼손 등 법적 고소가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2023. 2. 닉네임 와이)
A. ‘쫄지’ 마세요. 협박용입니다. “감히 나를 신고해?”, “아는 변호사가 전관이야!”, “돈이 얼마가 들어도 끝까지 간다” 이런 얘기 들으면 누구나 겁먹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상사가 고소할 수는 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지 않았어도 기소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와이(Y)님이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에 따라 신고했고, 모욕이나 명예훼손죄의 성립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송 갑질.’ 가해자가 피해자를 겁박해 신고를 포기하게 만들고, 또 다른 직원의 신고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소송을 악용합니다. 주로 모욕, 명예훼손, 무고죄로 걸고 손해배상을 청구합니다. 악질 사장은 과거 업무 실수를 끄집어내 업무방해나 재물손괴죄로 고소하기도 합니다. 법 지식이 없는 노동자가 내용증명을 받으면 겁에 질려 협박에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한 프로야구단 협력업체 사장은 노동법 위반과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한 직원에게 무고죄 5건을 걸었고, 업무방해죄(임금체불 신고),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언론보도), 재물손괴죄(회사 비품 파손)로 고소했습니다. 다행히 경찰이 8건 모두 ‘무혐의’로 결정하며,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가 녹음 등 증거를 충분히 모았고,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법원은 고소 내용이 “일부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보아 범죄사실의 성립 여부에 직접 영향을 줄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직장인이 변호사를 선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혼자 대응할 수 있지만, 시간과 돈도 많이 들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강제추행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가해자가 무고죄로 저를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다행히 검찰과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소송 내내 너무 힘들었습니다.” 성추행 피해자의 절규입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의 문동은처럼 폭력 피해자의 고통은 끝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장은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갑니다.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가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간 것처럼 말입니다. 직장에서 ‘소송 갑질’로 2차 가해를 경험한 피해자는 공황장애를 겪고 자해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정순신 아들 ‘학폭’ 피해자처럼 말입니다.
오늘도 일터에는 ‘직장판 정순신’ 소송 갑질이 넘쳐납니다. 1차 가해보다 끔찍한 2차 가해. 무고죄 악용과 부당한 제소로 피해자를 두번 죽이는 소송 갑질을 규제해야 좀비보다 무서운 ‘법비’들이 활개 치는 나라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직장갑질119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노동권·인권 침해에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