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26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2023년 콜센터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18년째 콜센터에서 일하는 김현주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 수석부지부장은 거의 매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국민은행 콜센터에서 근무 중인 김 부지부장은 “하나은행은 상담사들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용역회사와 6개월 계약을 했다. 국민은행은 실적 미달이 일정 회차까지 누적이 되면 계약해지 요건이 된다”며 “상담사들이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26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콜센터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민주노총이 처음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는 지난 4월24일부터 5월29일까지 전국의 콜센터 노동자 1278명(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소속 660명, 비조합원 61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실태조사 결과, 콜센터 노동자의 44.9%는 계약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정규직(55.1%) 절반, 계약직 절반 이라고 할 만큼 많은 수준이다. 계약직이라고 한 응답자 가운데 ‘1년 단위 계약’이 열에 일곱 꼴(74.4%)이었고, ‘2년 단위’(24.0%), ‘3년 단위’(1.6%) 순이었다. 계약직 콜센터 노동자가 극도의 고용 불안에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울러 4대 보험 등을 공제한 월평균 세후 소득은 220만6천원으로, 콜센터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최저임금 시간당 9620원, 세전 월급기준으로는 201만580원이다. 성별로 보면 남성의 월 세후소득(233만9천원)이 여성(219만8천원)보다 15만원가량 많았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가장 많은 어려움을 호소한 부분도 임금 관련된 것으로, ‘스트레스 조사’(복수응답) 항목에서 압도적 1위가 ‘부족한 임금’(74.9%) 문제였다.
근로 여건도 열악한 실정이다. 하루 중 실제 휴게시간을 조사한 결과 39.4%는 점심시간을 포함해도 1시간을 채 쉬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휴게시간이 30분∼1시간인 응답자는 27.9%, 30분 미만은 11.5%였다. 휴게시간이 ‘1시간∼1시간30분’이란 응답자가 60.6%로 가장 많았다. 고용노동부의 ‘콜센터 직무 스트레스 관리 지침’에 따라, 콜센터 노동자들은 근로시간 1시간에 10분씩 쉬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이같은 지침이 무용지물인 셈이다. 이은영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장은 기자회견에서 “협력사들이 좋은 업체 평가를 위해 상담사들이 아파도 쉴 수 없게 연차 사용을 제한하고 점심시간에도 전화를 받도록 요구한다”며 “온종일 움직이지 않고 전화를 받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화장실도 맘대로 못 가니 방광염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콜센터노동자의 업무를 가중하는 대표적 원인의 하나인 ‘목표 콜 수제’에 대해 54.6%가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하루에 처리하는 콜 수는 감당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14.6%가 ‘매우 벅차다’고 답했고, 44.3%는 ‘약간 벅차다’고 했다. ‘적당하다’는 32.1%,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9.0%에 그쳤다.
이번 조사의 응답자를 특성별로 보면, 응답자 93%가 여성이었고 남성은 7%에 불과했다. 사실상 여성들이 고용불안·저임금 직종에 집중돼 있는 상황을 에둘러 보여주는 셈이다. 연령으로 보면 여성 응답자의 60%가 40대였고, 남성의 경우 30대(45%)가 대다수였다. 민주노총의 조사를 바탕으로 자료 통계분석을 한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연령 차이가 큰 점을 볼 때 경력단절 여성이 집중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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