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연대회의 활동가들이 지난 14일 국회 앞에서 실업급여 하한액 조정 및 폐지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커피전문점에서 6개월간 일하던 ㄱ씨는 지난달 해고 통보를 받고서야 자신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실을 알았다. 회사가 ㄱ씨와 노동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자가 고용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악용한 소위 ‘가짜 3.3’(회사가 4대 사회보험이나 근로기준법 의무를 피하기 위해 노동자를 사업소득세 3.3%를 내는 개인사업자로 둔갑시키는 것) 노동자는 음식점 및 주점업 노동자 1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될 만큼 만연한데, ㄱ씨도 그중 한명이었다.
정부·여당이 ‘도덕적 해이’나 고용보험기금 부족 등을 앞세워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는 고용보험제도 개편을 시사한 가운데, 여전히 비정규직 절반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26일 나왔다. 제도의 사각지대와 고용보험 의무 가입을 피해가려는 사용자의 ‘꼼수’가 만연한 탓에, 정작 고용보험이 필요한 불안정 노동자들이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된 것이다.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9~15일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고용보험 가입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23.8%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정규직 93.2%가 고용보험에 가입했다고 답했지만, 일용직·특수고용 노동자 등 비정규직은 50.8%만 고용보험에 가입했다.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이뤄졌다.
이런 결과는 고용노동부가 사회보험 가입 통계로 활용하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근로실태조사) 결과와는 차이가 있다. 지난해 근로실태조사 기준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80.7%로 비교적 높았다. 이는 노동자(가구)가 아닌 사업체에 묻는 조사 방식인데다, ㄱ씨처럼 아예 개인사업자로 둔갑한 노동자나 특수고용노동자가 빠진 수치인 탓이다.
직장갑질119 조사에서 특히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38.3%에 그쳤다. 고용보험 의무 가입 대상 특수고용 직종이 점차 확대됐지만, 가사 노동자 등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 개인사업주(자영업자)로 분류되는 ‘가짜 프리랜서’ 계약도 고용보험 가입을 낮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9월 낸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한국 고용보험의 약점은 낮은 포괄 범위”라며 특고·프리랜서·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강조한 배경이다.
실제 고용보험 미가입자들에게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법적으로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35.7%로 높았다. “잘 모르겠음”(36.6%), “고용보험에 가입하길 원하지만, 사용자가 거부하거나 원하지 않아서”(11.3%) 등 제도가 현실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 모습도 나타났다.
조영훈 노무법인 ‘오늘’ 노무사는 “고용보험 의무 대상을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가짜 프리랜서 계약 등 이를 피하기 위한 꼼수가 만연해 있다”며 “실업급여를 줄이는 것보다 이런 꼼수를 막고,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를 제대로 안착시키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짚었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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