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 1일 해병대 동기들의 손을 잡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서울 용산 군사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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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사가 제게 “하급자 주제에 덤비고 반항한다”고 하기에 항의했더니, 자기가 상사라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상사가 하는 지시에 의문을 제기했더니 항명하냐고 합니다. 녹취가 있는데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까요?(2023년 7월, 닉네임 ‘수줍은 라이언’)
A. 항명이라니, 쌍팔년도 시절로 되돌아가는 건가요? 국어대사전에 항명은 “명령이나 제지에 따르지 아니하고 반항함”이라고 되어 있고, 항명의 죄는 “군인 또는 군무원 등의 준군인이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인데요. 상사의 명령에 반항하지 말고, 입도 뻥끗하지 말라니, 참.
상사의 지시에 의문을 제기했는데 ‘항명’이라고 했다는 건 직장 내 괴롭힘의 요건인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었는지’가 애매합니다. 상사는 정당한 지시였다고 주장할 테니까요. 다만 업무 지시에 ‘항명’했다고 폭언을 하거나 업무를 주지 않는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어요. 문제를 제기했다고 보직을 해임하거나 원치 않는 곳으로 발령을 냈다면 노동위원회에 부당인사발령 구제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회사에서 ‘까랬는데 까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할 수 있습니다. 취업규칙에 ‘지시 불이행’ 관련 징계 규정이 있는지 확인하세요. 10인 이상이면 취업규칙을 게시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어요. 지시 불이행으로 징계하려면 정당한 지시여야 하고, 징계 절차나 수위도 합당해야 합니다. 군인도 정당한 명령일 때에만 ‘항명의 죄’가 성립하잖아요. 부당하게 징계하면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직원 ‘뒷담’하고 ‘항명’ 운운하는 상사니까 모욕이나 명예훼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발언을 할 가능성이 커요. 녹음은 필수.
지난 6월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갑질 감수성’ 설문조사에서 ‘회사 대표나 상사가 시킨 일은 불합리하게 느껴져도 일단 해야 한다’에 동의하는 정도를 묻는 질문에 상위 관리자의 응답 점수는 60.3점으로 일반 사원(68.8점)보다 8.5점 낮았습니다. 점수가 높을수록 감수성이 높은 조사(‘전혀 그렇지 않다’ 100점, ‘매우 그렇다’ 0점)인데, 회사의 높으신 분들은 여전히 ‘까라면 까’를 좋아합니다.
직장갑질119에서 만든 ‘상사 5계명’의 첫째가 “까라면 깠던 옛날 기억은 잊습니다”예요. 옛날엔 까라면 깠죠. 1987년까지 현대자동차 정문에서 경비대가 복장이 불량한 직원들 ‘조인트’ 까고,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었습니다. 그래서 노조의 요구 중 하나가 ‘두발 자유화’였죠. 36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까라면 까’라니요. 상사 5계명 둘째. “아랫사람이 아닌 ‘역할이 다른 동료’입니다.” 부하 아니고 동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항명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군사법원에서 기각됐는데요, 까랬는데 까지 않았다고 구속이라뇨. 군사법원에 ‘까랬는데도 까지 않는’ 판사가 있어 다행입니다. 박 대령이 수원지법에 낸 해병대 수사단장 ‘보직해임 집행정지 신청’도 받아들여지길 기대합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직장갑질119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노동권·인권 침해에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