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지난 5월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답안지 파쇄 사고와 관련해 사퇴했다. 연합뉴스
613명의 국가자격시험 답안지를 채점도 하지 않은 채 파쇄한 사고를 일으켰던 한국산업인력공단(공단)에서 유사한 답안지 누락 사고가 지난 3년 동안 최소 7번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단이 지난해 답안지 일부를 분실하고도 이를 해당 응시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임의로 채점해 탈락시킨 사실도 새로 밝혀졌다.
고용노동부는 ‘한국산업인력공단 국가 자격시험 특정 감사’ 결과, 2020년부터 지난 4월 답안지 파쇄 사고 전까지 공단이 주관한 시험에서 최소 7번의 답안지 누락 사고를 확인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감사는 지난 4월 공단이 주관한 ‘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에서 613명의 답안지가 채점도 되기 전에 파쇄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뒤, 국가 자격시험 운영 전반을 살펴보기 위해 약 두 달 동안 이뤄졌다. 노동부 산하기관인 산업인력공단은 직종별 기능사·기능장과 산업기사 등 국가 자격 시험을 주관한다. 최근 3년 동안 450만명 가까운 응시생이 공단이 주관한 시험을 쳤다.
감사 결과를 보면, 7번의 답안지 누락 과정은 지난 4월 벌어진 답안지 파쇄 사고와 유사하다. 시험이 치러지고 나면 답안지들은 포대에 담겨 거점 지역 산업인력공단 지사에 있는 금고에 보관된 뒤 이튿날 공단본부(채점센터)로 전해지는데, 채점센터에서 답안지 누락을 뒤늦게 확인한 것이다. 김영헌 노동부 감사관은 11일 사전브리핑에서 “이 사건들이 내부 보고됐으면 단계별로 문제를 살펴봐야 하는데 (공단은) 이를 방치했다”고 말했다. 다만 앞선 7번의 답안지 누락은 지난 4월과 달리 답안지가 파쇄 전에 발견돼 채점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노동부는 또 2022년 기사 실기시험 응시자 한 명의 답안지 일부(6매 중 1매)를 분실했던 사건도 추가 확인했다. 당시 답안지 분실 사실은 해당 응시자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임의로 점수가 매겨졌다. 해당 응시자는 시험에서 탈락했다. 김 감사관은 “응시자에게 분실을 알리고 배상을 하든 재시험을 치르든 조처가 필요했다”며 “(해당 응시자의) 다른 분야 점수가 낮아 실제 합격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시험 신뢰도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자격시험 관리에서 반복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배경에는 책임 의식 부족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2021년부터 공단은 답안지의 운반을 직접 수행하던 데서 민간업체에 위탁했다. 지난 4월 답안지 누락이 발생한 시험장에서는 시험 관리 경력 부족 등의 이유로 퇴직한 공단 직원이 정책임자를, 현재 공단 직원이 부책임자를 맡았다. 끝까지 관리 책임을 질 수 있는 공단 정규 직원은 뒷자리에 물러선 채 국가 자격시험이 치러졌던 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국가자격 시험일 경우 시험 뒤 1년 동안 답안지를 보관해야 하는 검정관리운영 규정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노동부는 감사 결과에 따라 직원 22명(중징계 3명·경징계 6명·경고 2명·주의 11명)을 징계하도록 산업인력공단에 요구하는 한편, 시험과 관련한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한 것을 두고 공단에 기관경고 조처를 했다. 산업인력공단은 국가자격시험 관련 전반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4월 국가자격시험에서 답안지가 파쇄된 613명 가운데 147명은 산업인력공단에 1인당 500만원씩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소송을 낸 상태다. 산업인력공단은 “이번 감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국가자격시험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분골쇄신의 자세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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