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불안’을 벗자
[5대 불안’을 벗자] 2부 : 일자리
“인생이 확 달라졌어요. 정말 신나게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크라운출판사’에서 출판디자인 일을 하는 이혜미(32)씨는 요즘 부쩍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이씨 삶의 변화에는 ‘직업훈련’이 결정적이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사무직으로만 일했던 이씨는 지난해 2월 회사를 그만두고 큰 결심을 했다. ‘전문직 도전’이었다.
“늦은 나이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디자인 분야를 선택한다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이씨는 지난해 3월부터 노동부 산하 ‘한국폴리텍I 서울강서대학’에서 9개월 동안 무료로 출판디자인 직업훈련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취업한 이씨는, 학교에서 배운 과정이 실무 위주여서 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인천 부평동에 사는 이건상(51)씨도 이제는 아침이 두렵지 않다. 일할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작은 제조업체지만 새로 배운 기술로 이씨는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전자우편 보내는 것밖에 몰랐던 이씨는 지금은 컴퓨터로 기계를 설계한다. 그는 실업 석달째였던 지난해 8월부터 3개월 동안 ‘한국폴리텍Ⅱ 인천대학’에서 직업훈련을 받았다. 그는 “50대에 직장을 잃으면 갈 곳이 없는데, 기술을 배운 덕에 일자리를 구했다”고 말했다.
‘일자리 늘리기’와 ‘일자리 찾기’는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두 날개다. 또 구인·구직을 뒷받침하는 ‘고용서비스’와 취업능력을 키워주는 ‘직업훈련’은 ‘일자리 찾기’의 두 기둥이다.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고용의 공급과 수요를 정확하게 연결하는 것은 일자리 창출 못지않은 핵심 과제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 비해 우리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선 직업훈련의 경우 훈련기관은 공공 51개, 민간기관 3121개 등 모두 3172개다. 민간기관이 절대다수인데다 규모가 영세해 시설투자와 교육프로그램의 개발이 부족하고 정부의 관리감독도 어렵다. 때문에 공공·민간 훈련기관을 통틀어 취업률은 평균 40%대에 머물러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통한 ‘맞춤형 직업훈련’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고혜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원은 “정확하고 꼼꼼한 노동시장 정보를 바탕으로, 구인 수요가 있는 분야에서 직업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정보통신(IT) 업종이 인기가 치솟으며 실업자들이 대거 몰렸으나, 최근 아이티업계가 침체기를 맞으며 직업훈련을 받고도 취업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때문에 직업훈련기관이 취업을 전제로 특정 기업과 훈련과정, 인원 등에 대한 약정을 사전에 맺고 ‘맞춤훈련’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 연구원은 “실업자들이 직업훈련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취업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기업을 뛰어넘어 업종 차원에서 취업이 보장되는 ‘맞춤훈련’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구인·구직 과정에서 직업훈련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시스템 마련도 절실하다. 직업능력개발원이 2005년 6월 실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3072명 중 고작 4.8%(147명)만이 직업훈련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는 구인·구직을 담당하는 고용지원센터와 직업훈련기관 사이의 연계 부족이 낳은 결과다.
‘일자리 찾기’의 다른 한 기둥인 구인·구직 등 ‘고용서비스’ 부분도 갈 길이 멀다. 노동부는 2005년부터 심층상담, 청년·고령·여성·장기실업 등 특성별 구인·구직과 맞춤서비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 95개 고용지원센터 중 이런 프로그램이 시행되는 곳은 10곳 남짓이다. 나머지는 아직도 “이 일자리는 어떠냐”는 단순 정보제공에 그치고 있다.
구인·구직 업무를 맡고 있는 직업상담원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박영진 직업상담원노조위원장은 “상담원 수가 부족해 현재 구직자 한 사람과 불과 4~5분만 상담할 수 있을 정도”라며 “심층상담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용센터 직원 한 명이 담당하는 노동자 수를 보면 독일은 467명, 영국 819명, 미국 2023명, 일본이 4415명이지만, 한국은 9572명이다. 독일보다 20배 이상 많고 일본과도 갑절 이상 차이 난다. 고용서비스 선진화의 핵심인 심층상담에는 구직자 한 사람당 적어도 20분은 걸린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직업상담원 수가 지금보다 적어도 4~5배는 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취업·재취업 시스템 정비와 함께 무엇보다 노·사·정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한다.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영학과)는 “노·사·정은 국가, 지역, 업종, 개별기업 차원에서 산업구조·노동시장 변화에 따라 어떤 고용서비스와 훈련이 필요한지 의견을 나누고, 정부는 적절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파트너십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중층적인 고용서비스망을 구축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덴마크선 심층상담 체계화
고용센터, 건강·고민까지 챙겨
세명중 두명꼴 1년안에 취업
독일·미국선 민간과 긴밀연계 유럽 등 선진국들은 이미 1990년대 들어서면서 고용서비스와 직업훈련의 체계화를 통해 실업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특히 덴마크는 다른 나라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고용이 유연하면서도 고용서비스·직업훈련의 뒷받침으로 재취업이 쉽고 활발하며, 높은 실업급여까지 보장받는 등 노사 모두에게 ‘윈-윈’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연 안정성’(flexicurity)이다. 덴마크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은 고용서비스와 직업훈련이다. 특히 덴마크는 ‘심층 상담’을 실업자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공공고용센터는 구인·구직을 뛰어넘어 실업자의 가정환경, 건강, 개인적 고민까지 함께 풀고 있다. 수도 코펜하겐 공공고용센터 직원 350명 가운데 직업상담원이 71%(250명)나 되는 것도 이런 심층상담의 중요성 때문이다. 또 다양하고 체계적인 직업훈련으로 노동자의 숙련도를 향상시켜 전직이나 취업을 돕고 있다. 전 산업 부문에 걸쳐 2200여개나 되는 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런 촘촘한 시스템으로 실직자 3명 가운데 2명이 1년 안에 재취업에 성공한다고 한다. 2004년 기준 5.4%의 실업률은 유럽연합 15개국 평균인 8.1%의 절반 수준이다. ‘유연 안정성’ 모델의 성공에는 노사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덴마크 노동시장청은 “일자리가 필요한 산업이나 적합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조절하려면 노사의 참여는 필수”라고 밝혔다. 독일·미국·영국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공공부문 중심의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민간부문과 연계가 긴밀하다. 3개월의 실업기간이 지나면 구직자에게 민간과 공공 고용센터 중 원하는 곳을 선택해 무료서비스를 받게 한다. 공공과 민간 기관의 경쟁을 위해서다. 또 20~29살 청년층 가운데 직업교육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14% 정도다. 미국과 영국은 ‘취업정보제공-집중상담-직업훈련지원’ 등 실업자의 처지와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원서비스를 해준다. 김소연 기자
‘취업·재취업 시스템 정비’ 5대 제언
‘일자리 늘리기’와 ‘일자리 찾기’는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두 날개다. 또 구인·구직을 뒷받침하는 ‘고용서비스’와 취업능력을 키워주는 ‘직업훈련’은 ‘일자리 찾기’의 두 기둥이다.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고용의 공급과 수요를 정확하게 연결하는 것은 일자리 창출 못지않은 핵심 과제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 비해 우리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선 직업훈련의 경우 훈련기관은 공공 51개, 민간기관 3121개 등 모두 3172개다. 민간기관이 절대다수인데다 규모가 영세해 시설투자와 교육프로그램의 개발이 부족하고 정부의 관리감독도 어렵다. 때문에 공공·민간 훈련기관을 통틀어 취업률은 평균 40%대에 머물러 있다.
공공직업훈련기관인 한국폴리텍대학에선 3개월, 1년, 2년 등의 과정으로 다양한 직업훈련이 이뤄진다. 폴리텍대학 학생들이 로봇자동화 실습 수업을 하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이를 극복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통한 ‘맞춤형 직업훈련’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고혜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원은 “정확하고 꼼꼼한 노동시장 정보를 바탕으로, 구인 수요가 있는 분야에서 직업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정보통신(IT) 업종이 인기가 치솟으며 실업자들이 대거 몰렸으나, 최근 아이티업계가 침체기를 맞으며 직업훈련을 받고도 취업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때문에 직업훈련기관이 취업을 전제로 특정 기업과 훈련과정, 인원 등에 대한 약정을 사전에 맺고 ‘맞춤훈련’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 연구원은 “실업자들이 직업훈련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취업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기업을 뛰어넘어 업종 차원에서 취업이 보장되는 ‘맞춤훈련’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 산하 ‘한국폴리텍I 서울정수대학’에서 나이든 노동자들이 기계 관련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취업능력을 키워주는 직업훈련은 실업자들에게는 ‘구원투수’의 구실을 한다.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구인·구직 업무를 맡고 있는 직업상담원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박영진 직업상담원노조위원장은 “상담원 수가 부족해 현재 구직자 한 사람과 불과 4~5분만 상담할 수 있을 정도”라며 “심층상담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용센터 직원 한 명이 담당하는 노동자 수를 보면 독일은 467명, 영국 819명, 미국 2023명, 일본이 4415명이지만, 한국은 9572명이다. 독일보다 20배 이상 많고 일본과도 갑절 이상 차이 난다. 고용서비스 선진화의 핵심인 심층상담에는 구직자 한 사람당 적어도 20분은 걸린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직업상담원 수가 지금보다 적어도 4~5배는 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취업·재취업 시스템 정비와 함께 무엇보다 노·사·정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한다.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영학과)는 “노·사·정은 국가, 지역, 업종, 개별기업 차원에서 산업구조·노동시장 변화에 따라 어떤 고용서비스와 훈련이 필요한지 의견을 나누고, 정부는 적절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파트너십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중층적인 고용서비스망을 구축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주요국 공공고용센터 인력 비교
덴마크선 심층상담 체계화
고용센터, 건강·고민까지 챙겨
세명중 두명꼴 1년안에 취업
독일·미국선 민간과 긴밀연계 유럽 등 선진국들은 이미 1990년대 들어서면서 고용서비스와 직업훈련의 체계화를 통해 실업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특히 덴마크는 다른 나라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고용이 유연하면서도 고용서비스·직업훈련의 뒷받침으로 재취업이 쉽고 활발하며, 높은 실업급여까지 보장받는 등 노사 모두에게 ‘윈-윈’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연 안정성’(flexicurity)이다. 덴마크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은 고용서비스와 직업훈련이다. 특히 덴마크는 ‘심층 상담’을 실업자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공공고용센터는 구인·구직을 뛰어넘어 실업자의 가정환경, 건강, 개인적 고민까지 함께 풀고 있다. 수도 코펜하겐 공공고용센터 직원 350명 가운데 직업상담원이 71%(250명)나 되는 것도 이런 심층상담의 중요성 때문이다. 또 다양하고 체계적인 직업훈련으로 노동자의 숙련도를 향상시켜 전직이나 취업을 돕고 있다. 전 산업 부문에 걸쳐 2200여개나 되는 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런 촘촘한 시스템으로 실직자 3명 가운데 2명이 1년 안에 재취업에 성공한다고 한다. 2004년 기준 5.4%의 실업률은 유럽연합 15개국 평균인 8.1%의 절반 수준이다. ‘유연 안정성’ 모델의 성공에는 노사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덴마크 노동시장청은 “일자리가 필요한 산업이나 적합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조절하려면 노사의 참여는 필수”라고 밝혔다. 독일·미국·영국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공공부문 중심의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민간부문과 연계가 긴밀하다. 3개월의 실업기간이 지나면 구직자에게 민간과 공공 고용센터 중 원하는 곳을 선택해 무료서비스를 받게 한다. 공공과 민간 기관의 경쟁을 위해서다. 또 20~29살 청년층 가운데 직업교육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14% 정도다. 미국과 영국은 ‘취업정보제공-집중상담-직업훈련지원’ 등 실업자의 처지와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원서비스를 해준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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