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용자” 판결에 앞서…비정규직 권리향상 전기될 듯
‘하청업체 노동자의 작업 전반을 지휘·감독한 원청업체가 실제 사용자’라는 판결(〈한겨레〉 12일치 1면)에 앞서,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대상자’라는 고법 판결이 나온 사실이 확인됐다. 이번 판결은 비정규직 노조의 단체교섭 권한을 강화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대구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강원)는 13일, 롯데건설 등 37개 건설 현장의 원청업체들에게 단체협약 체결을 강요하고 노조전임비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폭행과 공갈)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조기현(41) 위원장 등 대구경북건설노동조합원 4명에 대해 지난 5일 공갈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식 근로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지만, 원청업체들이 일용근로자들과 실질적인 종속관계를 맺고 있어 하청업체들과 함께 중첩적으로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고 인정된다”며 “특히 법률상 원청업체의 책임이 인정되는 임금 지급과, 산업안전 조처, 산재보험 적용, 퇴직공제 가입 등은 원청업체에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지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근로자가 사용자의 위법행위를 고발하겠다고 하는 것은 사용자와 상반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근로자로서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권리 행사”라며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체결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노동조합의 통상적인 업무 범위에 속한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법률원 김기덕 변호사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임금, 근로조건 등을 정하는데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원청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해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판결”이라고 말했다.
대구경북건설노조는 2003년 초부터 2005년 말까지 대구·경북지역 37개 건설현장의 현장소장들과 단체협약을 맺고 사업장별로 매월 25만~90만원씩 모두 2억2840만원을 노조 전임비 명목으로 받아 사무실 경비 등 운영비로 사용했다. 대구지검은 “단체교섭 대상자가 아닌 원청업체를 상대로 압박을 가해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은 공갈죄에 해당한다”며 조 위원장 등 노조 간부 4명을 구속기소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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