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노동절을 맞아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연 ‘국민과 함께,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2007 노동절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노동자와 가족 등 2만여명의 달림이들이 출발선을 넘어 뛰어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노동절 집회 차분…올 파업건수 지난해 61%
정규직 노조들 투쟁→교섭으로 무게 이동 중
정규직 노조들 투쟁→교섭으로 무게 이동 중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해고 사태가 예견되고 있지만, 올 봄 노사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다. 특히 정규직 중심의 양대 노총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노동 전문가들은 “노동운동의 방향전환 조짐”인 동시에 자본의 공세에 주눅든 노동계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양대 노총은 1일, 117돌 노동절을 맞아 서울 도심에서 각각 기념행사와 집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노동자 등 7천명(경찰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차분하게 기념집회를 치렀다. 한국노총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노동절 마라톤대회를 했다. 한국노총은 “집회와 시위로 상징되던 노동절 대회를 일반 시민, 이주노동자와 함께한 축제 한마당으로 치렀다”고 말했다.
노동절 집회 모습만 달라진 게 아니다. 노동부 통계를 보면, 올해 들어 4월30일까지 파업을 벌인 곳은 모두 16곳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26건의 61% 수준이다. 4월30일 현재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곳은 모두 8곳인데, 지난해부터 계속된 장기투쟁 사업장을 제외하면 독립신문사, 콜트악기, 한국특수가스, 안산한도병원 등 네 곳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조합원 수 200명을 넘지 않는 곳들이다. 근로손실 일수도 4만4080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만5631일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안경덕 노동부 노사관계조정팀장은 “지난해에 견줘 노사관계가 많이 안정되고 있는 분위기”라며 “그동안 미미해서 집계하지도 않았던 노사 화합선언이 올 들어선 132건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우선, 1월 뽑힌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파업을 위한 파업’을 자제하고 정부와 대화창구 복원에 애쓰는 데서 기인하는 바 크다. 특히, 민주노총은 여느 때와 달리,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 때도 총파업을 선언하지 않았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정규직 확대, 조직률 하락, 내부 갈등, 잇따른 비리 등으로 노동운동의 구조적 위기가 깊어진데다, ‘투쟁’ 중심의 활동에 한계를 느낀 정규직 노조들이 ‘교섭’의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노동계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의 악화’라는 구조적 원인에서 온 불가피한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의 현상이) 갑작스러운 게 아닌 최근 2~3년 동안의 추세로 봐야 할 것”이라며 “사용자 쪽에서 비정규직을 많이 쓰면서 정규직 노조가 그동안 노동시장에서 누려 왔던 독점력이 상당히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엔 ‘착시’ 요소가 끼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노사화합선언이 늘었다고, 노사관계가 크게 좋아질 것으로 낙관하긴 어렵다”며 “그동안 노조의 무리한 총파업으로 조직력이 많이 약화됐지만, 개별 사업장 단위의 국지전은 꽤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배규식 박사도 “향후 비정규직법 시행을 두고 양대 노총이 이를 둘러싼 갈등 요소들을 어떤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는지에 따라 하반기엔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며 “금속노조가 산별교섭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질 소지가 적지 않다”고 내다봤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