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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한 단협규정 ‘자의적해석’…처음부터 제동
따로 설립땐 복수노조 시비…결성 자체 곤란
“기업별 교섭 탈피하고 노동기본권 보완 절실”
따로 설립땐 복수노조 시비…결성 자체 곤란
“기업별 교섭 탈피하고 노동기본권 보완 절실”
“노동조합에 가입원서를 냈는데, 막상 받아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땐 착잡했어요. 노조는 약자를 보호해주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지하철 ㅈ역 식당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일해온 ㅇ(45)씨는 지난해 10월 같은 계약직 동료 80여명과 함께 도시철도공사 노조에 가입원서를 냈다. 10년 넘게 연말이 되면 자동적으로 1년 단위 고용계약을 맺어왔는데, 회사가 앞으로 식당 업무를 외주화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 만인 같은해 11월 노조는 대의원대회를 열어 ㅇ씨 등의 노조 가입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노조 규약엔 조합원 범위가 ‘도시철도공사에 종사하는 자’로 폭넓게 규정돼 있었지만, 비정규직은 노조 가입 대상이 아니라는 규약 해석이 대의원 표결을 거쳐 통과한 것이다.
ㅇ씨는 결국 지난 3월 산별노조인 전국공공서비스노조의 도시철도공사 비정규직분회를 결성해 ‘노조원’이 됐다. 하지만 분회원은 12명뿐이다. 정규직 노조 가입이 좌절되자, 함께 가입원서를 냈던 계약직 동료 상당수는 아예 노조 활동을 포기해 버렸다.
■ ‘비정규직 가입 배제’ 단협 20%=고용 불안을 겪는 비정규직 규모가 급증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보호막이 돼줄 노동조합의 문턱은 너무 높다.
3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자료를 보면, 지난해 비정규직 노동자 841만명 가운데 노조원은 23만3천명으로 조직률이 2.8%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지난해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것으로, 정규직 조직률 21.6%(693만명 중 150만명)와 견줘 차이가 크다.
조직률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비정규직이 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돼 있는데다 고용이 불안정해 노사간에 대등한 관계를 맺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규직 조합원 중심인 기존 노조의 ‘이기주의’가 여기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3~9월 900개 기업의 정규직 노조를 대상으로 한 노사관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단체협약에서 비정규직을 가입 대상으로 명시한 경우는 전체의 7.1%에 그쳤다. 아예 비정규직을 제외하는 규정을 둔 경우도 20.4%에 이르렀다. ‘계약 만료로 조합원 자격 유지가 힘들다’(36.1%), ‘노조가 비정규직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31.1%)는 이유에서다.
■ 독자노조 설립도 험난=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이 노조 규약에서부터 제동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7~11월 상용노동자 30명 이상 1905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사관계를 조사한 결과에선, 계약직 등 기업에 직접 고용된 비정규직에게 노조 가입 자격이 주어지는 비율이 14.7%에 지나지 않았다. 정규직 노조 규약에는 대개 가입 자격이 ‘○○에 종사하는 자’로 폭넓게 규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결과는 정규직 노조들이 비정규직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 쪽으로 규약을 해석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비정규직들이 따로 노조를 설립하려고 하면 복수노조 시비까지 겪어야 해 합법적인 노조를 결성하기가 쉽지 않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일해온 비정규직들은 2003년 정규직 노조에 가입하려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따로 노조를 만들고 설립신고서를 냈다. 하지만 관할 구청에선 정규직 노조의 규약을 바꾸지 않으면 복수노조 금지 규정에 위반된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2001년 농협중앙회에서는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노조 가입 자격이 없는 3급 이상 관리자급 직원들과 함께 새 노조를 만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직 대상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든 154곳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정규직 노조가 있는 상태에서 따로 노조를 결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별 교섭 구조일수록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갈등이 많고, 이런 문제 해결에도 소극적”이라며 “교섭 체계가 초기업별 형태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김주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은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업체에 교섭 책임을 지우는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 조처가 마련돼야 조직화도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비정규직들이 따로 노조를 설립하려고 하면 복수노조 시비까지 겪어야 해 합법적인 노조를 결성하기가 쉽지 않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일해온 비정규직들은 2003년 정규직 노조에 가입하려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따로 노조를 만들고 설립신고서를 냈다. 하지만 관할 구청에선 정규직 노조의 규약을 바꾸지 않으면 복수노조 금지 규정에 위반된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2001년 농협중앙회에서는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노조 가입 자격이 없는 3급 이상 관리자급 직원들과 함께 새 노조를 만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직 대상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든 154곳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정규직 노조가 있는 상태에서 따로 노조를 결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별 교섭 구조일수록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갈등이 많고, 이런 문제 해결에도 소극적”이라며 “교섭 체계가 초기업별 형태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김주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은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업체에 교섭 책임을 지우는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 조처가 마련돼야 조직화도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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