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한미 FTA 파업 결정 과정
산별교섭 ‘실리’ 버리고 정치파업 ‘명분’ 선택
노사협상 걸림돌·내부갈등 상존 ‘가시밭길’
노사협상 걸림돌·내부갈등 상존 ‘가시밭길’
“단체교섭 자리에서 사용자 쪽과 상견례도 거치지 않은 상황인데, 파업을 벌일 명분을 내세우기 힘들다.”(현대차 지부 간부)
“당위성에 의한 파업은 성과를 남기기 힘들다는 공감대가 확산돼 있지만, 계파 간 갈등이 의사결정을 왜곡시킨 셈이다.”(금속노조 고위 간부)
금속노조가 지난 13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를 위해 25~29일 파업을 강행할 것을 거듭 확인하면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정치파업 관행’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번 파업에 대해선 금속노조 지도부조차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25일 대의원대회에서 파업 돌입을 놓고 5시간 가까이 논란이 벌어졌던 것도 명분에 둘러싸인 정치파업에 대한 지도부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파업이 결정됐던 데는, 그동안 현실조건을 살피기 앞서 당위적으로 정치파업을 결정해온 노조의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당시 대회 참석자들은 전하고 있다. 금속노조의 한 고위간부는 “4월 초 자유무역협정 체결 협상이 타결된 직후에 대의원대회가 열리는 바람에, 노조가 파업을 벌여서라도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명분론’이 그대로 먹혀든 것”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금속노조가 ‘정치파업’에 대한 비난여론을 고려해 임단협과 연계한다거나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치도록 방침을 정했지만, 지난 8일엔 중앙위원들이 이런 결정을 부결시키고 말았다. 여기엔 현대차 등 기업별 지부 조합원들이 정치파업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찬반투표가 부결될지 모른다는 간부들의 부담도 있었지만, 뿌리깊은 조직 내부의 계파갈등도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파업은 노동계가 추진해온 산업별 노사교섭을 어렵게 하고, 노조 내부의 민주주의도 훼손시키고 있다는 안팎의 우려를 사고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 본부장은 “금속노조의 파업 강행 결정은 산별교섭 참여를 꺼리는 사용자들에게 교섭 불참의 명분을 주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기업 노조들이 대거 가입하면서, 금속노조는 조합원 14만4천명으로 명실상부한 산별노조의 틀을 갖췄다. 하지만 사용자협의회엔 아직도 조합원이 모두 2만여명인 89곳의 중소사업장만 참가하고 있다.
조합원의 뜻을 묻지 않은 채 지도부의 결정으로 진행되는 이번 파업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도 “앞으로 산별노조의 단결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명분’을 위한 정치파업과 산별교섭이라는 ‘실리’ 사이에서 금속노조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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