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투쟁을 벌이고 있는 임정재(51·여)씨가 16일 서울 신천동 송파구청 2층 전화안내실 앞에 앉아 창문 너머로 동료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책상·전화도 치워졌지만 ‘꿋꿋’…“암투병 남편대신 일해야”
서울 송파구청 민원봉사과에서 5년이 넘도록 전화안내를 해온 임정재(51·여)씨는 지난달 30일 갑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았다. 구청은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어쩔 수 없다”며 “(임씨가 해온 일은) 사업 종료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화안내를 함께 해온 나머지 2명은 지금도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 중 한 명은 정규직 공무원이고, 나머지 한 명은 공공근로 종사자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돼도 차별시정이나 정규직 전환에 대한 부담이 없는 사람들이다.
지난 2일부터 임씨는 ‘부당 해고’에 맞서 ‘출근 투쟁’을 시작했다. ‘출근 투쟁’은 부당하게 해고당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표적 저항수단이었다. 재계약이 안 되면 ‘그것으로 끝’인 비정규직에게 출근 투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근 투쟁 첫날이었던 지난 2일, 구청은 임씨를 따돌리려 전화안내 업무를 총무과의 종합상황실로 이관해 버렸다. 다음날인 3일 임씨가 종합상황실로 출근하자, 이번엔 아예 임씨가 앉은 자리의 전화기 코드를 빼버렸다. “무단침입”이라며 “경찰을 부르겠다”고도 했다. 그사이 전화안내 업무는 슬그머니 다시 민원봉사과로 원위치됐다.
지난 5일 결국 구청은 그가 써온 책상과 의자, 사무용품 등은 물론이고, 행여 전화를 받을까봐 전화기까지 치워버렸다. 원래 전화안내실에선 3명의 직원이 4대의 전화기를 돌아가며 사용했지만, 구청은 남은 직원 2명에게 한 대씩 두 대의 전화기만 줬다. 임씨는 “개인 소지품까지 다 내동댕이쳐지자, 마음 한켠에서 울컥하는 심정이 차 올랐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빈자리 의자에 앉아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그 이후로도 임씨는 경비직원들에게 몇차례 출근을 저지당했지만, 16일 다시 3주차 출근투쟁을 시작했다. 하루 천 통 가량의 전화를 받으면서 한달 90만원 가량을 받아온 임씨는 그동안 월급명세서 한 차례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구청에 이유조차 물어보지 못했다. 이런저런 요구를 했다가, 행여 ‘따진다’는 핀잔을 들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숨죽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임씨는 말했다. 임씨는 “민간기업도 아닌 공공기관이 비정규직법 시행을 이유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모는 게 말이 되냐”며 “암 투병 중인 남편 대신 생계를 꾸려야 하기 때문에 오래 싸울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구청은 “임씨를 계속 고용하면 차별시정이나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예산이 없어 재계약을 중단했다”며 “사정이 딱해 구내식당이나 인근 대형마트 일자리를 추천했지만 본인이 거부했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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